썰
46. 아빠는 아빠가 되고 싶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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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소문
사람과 사람의 입을 타고 퍼지면서 더해지고
수없이 바뀌다가 결국 사실과는 다른 말로 변질돼서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까지
힘들게 만들어 버리는 게 소문인 것 같아.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쉽게, 널리 퍼진 소문은
되돌려 놓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지.
그리고
책임 질 사람도 없이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이들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더라고.
"누가 그런 소릴해요?"
"회사에 소문 다 났던데? 너 지금 회사에서 말 많아."
도대체 왜 이런 소문이 퍼졌는지. 금요일 퇴근할 때
까지만 해도 웃으면서 인사하고 퇴근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 거야
그러다 문득 경태형이 의심이 되는거지.
"에이.. 또 형이 이상한 소문낸 거죠? 게시.."
"이 새끼가? 이번엔 나 아냐 인마. 그리고 너
내가 게시판 그거 하지 말랬지?"
평소 가볍고 장난 섞인 말투의 경태형과 대화할 때와는
다른 분위기. 살짝 짜증 섞인 표정과 진지한 목소리는
상황이 뭔가 잘못 돼 가고 있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어.
"입사한 지도 얼마 안 되는 게 건방지게
줄 타는 기술이나 배워가지고는..."
"아니 자꾸 누가 줄을 탄다 그래요?"
그때 밖으로 나갔던 김 과장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어. 경태형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나를 보더니
한숨을 팍쉬면서 말을 이었지.
"하아.. 야! 마이크 갖다 줘? 사내 방송하냐?
너 일 안 해? 내가 준거 다했어?"
"아.. 지금 하려고.."
"하려고 말고 하라고! 과장 말이 우습냐?"
김 과장의 다그침에 괜히 책상에 널부러져 있는
서류를 주섬주섬 주으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지.
'뭐야.. 주말에 나 빼고 다들 출근이라도 한 거야?
아니 무슨 얘기가 돌았길래..'
손은 키보드, 눈은 모니터에 고정된 상태로
한동안 멍하니 있었던 것 같아.
"커피 마셨어? 이거 베트남 커피라고 휴가자가
가져왔는데 좀 씁쓸한데 고소하면서 달달구리한 게
묘하게 매력이 있네? 너 마셔볼래?"
언제 왔는지 여느 때처럼 시끄럽게 떠들면서
인스턴트커피 봉지를 내미는 정현이.
"어.. 고마워"
"지금 안타? 선물은 받자마자 까는 게 국룰 아니야?"
커피를 건네받은 아빠를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며
빨리 타서 마셔보라고 얘기하는 정현이.
'그래 커피나 마시자.'
컵을 챙겨 탕비실로 가는 아빠를 졸졸 쫓아오던 정현이.
탕비실에 들어서자마자 밖을 한번 살펴보더니
문을 탁 닫아 버리더라고.
"뭐.. 뭐야? 강금이냐?"
장난스럽게 건네는 내 말에는 아랑곳 않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 정현이 였지.
"야.. 너도 알지? 지금 분위기 이상한 거?
오늘 아침까지 끝내야 될 일이 있어서
조금 일찍 출근했거든.."
뭔가 알고 있는 듯한 정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아침에 있었던 일을 나에게 얘기하고 있었어.
'아이고오.. 내가 이 시간에 출근을..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이고오...'
갑작스런 일정변경으로 오전 중에 끝내야 할 일이
생겨서 7시에 출근한 정현이.
월요일 아침부터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고 있으려니 그렇게 한숨이 나오더래.
"오 정현이 일찍 출근했네?"
얼마나 집중했을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다 보니
슬슬 출근하는 사람들.
평소와 같은 월요일 아침 그것과 전혀 다를 게 없었데.
적어도 그때까지는 말이지.
"하아 시X 내가 진짜 X 같아서 못 다니겠네."
업무시작 전 잡담타임. 너무 꿀 같은 소소한 행복이지.
한직원이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고 나오면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파고들며 대뜸 욕부터
박더란거야.
"왜 무슨 일 있어? 주말에 고객한테 전화받았냐?"
"아니 나 주말에 시연회 갔었잖아."
"아 맞네. 잘됐냐? 많이들 왔어?"
"잘됐어 너무 잘돼서 문제였지."
바빠 죽겠는데 시끌시끌한 사무실 분위기에
인상이 써졌지만 이상하게 귀는 그들 쪽으로
향해 있었데.
"도리 알지? 개발 1팀 신입"
"오.. 도리 알지 그 시연회도 도리가 만든 걸로 한 거 아냐?"
"그래 신입. 하아 신입이라는 새끼가.."
사람들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내 이름이 거론되자
정현이의 궁금증은 더 증폭되기 시작했어.
'도리? 시연회?'
그때 화를 내던 직원이 들고 있던 컵을 책상에
탁 내려치면서 말을 이었어.
"신입이라는 놈이 시연회 도중에 졸질 않나"
"야 무슨 할거 없으면 졸 수도 있는 거지
너는 안 졸았냐? 이새끼 신입때 침까지
흘리면서 졸았잖아~"
"그래 조는 거야 그럴 수 있어. 뒷정리하는데
팀장님하고 담배피러 가더라. 처 웃으면서."
"팀장님? 이야 라인 제대로 타나 보네?"
"입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형들은 짐 나르고 있는데..
지네 팀 과장도 밟더니 이제 라인까지 참나
이거 뭐 라인 없는 사람 서러워서 다니겠나."
가만히 듣고 있던 정현이 머릿속에 상황은 이미
정리가 되고 있었어.
'진행자도 아니고 쉴 수도 있지. 그리고 팀장님한테
끌려갔겠지 지가 데리고 갔겠나..'
그때였대
"누가 라인을 타? 누가 밟혀? 담배들 폈냐?
왜 신성한 흡연실 놔두고 하찮은 사무실에서 들
이러고 있어?"
어디부터 어디까지 들은 건지 사무실문을 열고 들어오던
김 과장이 그들의 대화 속에 끼어들기 시작한 거야.
"..."
김 과장의 등장에 시끄럽던 사무실 안은
물을 끼얹은 것처럼 일순간 조용해졌어.
"뭐여? 나 왕따야? 왜 말들을 하다말어.
그래서 누가 라인을 타는데?"
김 과장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다시 설명하는 그들.
'어.. 어... 이거 뭔가 밑그림이 좀 이상한데...'
전개되는 상황이 뭔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고
느끼는 정현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내 편을 들었다가는 상황이 더 악화될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데.
조용히 듣고 있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는 김 과장.
"후우.. 그러니까. 도리가 날 발판 삼아 올라가려고
하고 있다? 팀장님 동아줄 잡고?"
"그렇죠. 새파랗게 어린놈이. 어딜 감히 과장을.
이번에 프로젝트도 뺏겼잖아요."
"누가 그딴 소릴해! X발 뺏기긴 누가 뺏겨?"
고함에 가깝게 소리를 지르는 김 과장.
그리고 그의 눈치를 보는 직원들.
그들의 대화는 김 과장의 고함으로 일단락돼버렸어.
"도리 이 새끼가 지까짓게 지금 감히 내 목을 치려 하고 있다
이거지? 하~나 어이가 없네?"
흡연실로 향하는 김 과장의 의심에 불씨를
심어 둔 채로 말이지.
"이게 조금 애매한 게.. 너 출근하기 전까지 여기저기서
이 사람 저 사람 입에 오르는 바람에 쉽게
잡힐 것 같지 않아. 더 큰 문제는 김 과장이 가뜩이나
성격도 지랄 맞은데 지금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 같거든..."
"하아.. 이게 무슨.."
"일단 고민을 좀 해봐야.. 꺅! 엄마야!"
숨죽이며 대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벌컥 열려버린
탕비실 문. 놀라서 쳐다본 그곳엔 민차장이 서있었어.
"너네 둘이 연애하니? 무슨 문까지 닫고..
정현아 도리 유부남이야 정신 차려."
"아 언니! 진짜 놀랐잖아."
"너 내가 회사에서는.."
"차장님 놀랐잖아요.."
웃으면서 정현이의 머리를 콩 쥐어박는 민차장.
커피머신 버튼을 누르고 커피를 추출하면서
나에게 말을 건넸어.
"도리? 밧줄 좋은 걸로 구했다며?"
"아.. 차장님 그게.."
커피머신에서 컵을 들어 올리며 살짝 벽에 기대
말을 잇는 민차장
"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
소문이야 어차피 70%의 오해와 30%의 과장으로
이뤄지는 거니까. 그나저나 상황이 꽤 안 좋은 것 같던데?"
평소와 같은 표정과 말투로 반응하는 민차장.
이 말도 안 되는 소문 속에서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그래도 둘은 있다는 거에 안도했던 걸까?
"뭐.. 상관없습니다. 전 잘못한 게 없으니까요.."
커피 한 모금을 들이마시며 내 모습을 관찰하는 듯한
민차장.
"그래? 잘못한 게 없으면 떳떳하긴 하겠네... 만은.."
살짝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었어.
"내가 겪어본 사회라는 곳은 동화 같은 곳이 아니더라고.
보여줘야 알아주고, 소리내야 들어주고.
놔두면 되겠지 하고 넋 놓고 있다가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는 상태까지 가서야
진작에 할걸 하면서 후회하는 사람들."
"..."
"내가 본 너는 책임감도 있고 무슨 문제가 있을 때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도 보이고 좋아 좋은데"
민차장의 긴 말에도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는
나와 정현이. 술자리 이후 이렇게 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을까? 원래 저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 엇나?
싶을 정도로 낯선 모습에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듣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을 텐데도 민차장은
계속 말을 이었지.
"정작 너 자신일에는 관대한 것 같아? 조금 더
널 아껴보는 게 어때? 잔소리가 길었지? 나간다?
연애는 퇴근 후에 들 하고.
니들 잡혀가면 면회 갈 땐 뭐 사들고 가나?
먹고 싶은 거 있어?"
마치 놀리듯이 살짝 웃으며 농담을 건네고 자리로
돌아가는 민차장.
민차장이 해준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어.
문제는 내가 문제였지.
'헛소문이야 금방 꺼지겠지...'
그들 말대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에 관련된 소문이
얼마나 갈까 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내가 뭐라고... 관심이 오래나 가겠어?"
내 주제에 감히 과장님을 끌어내릴 거라고
생각이나 하겠어?
적당히 수군거리다가 없던 일처럼 조용해지겠지.
소문이란 게 다그런거니까 라는 안일한 생각만
하고 있었어.
"커피를 하루 종일 타냐? 회사커피 다마시계?
야 이 새끼 이제 커피 탈 때 돈 받아."
"죄.. 죄송.."
"죄송할 짓을 왜 하고 다니냐? 내가 시킨 일은 얼마나 했어?
하고 있긴 한 거냐? 아~ 너무 바쁘셔서 과장나부랭이가
시키는 일은 하기도 싫다? 이런 거냐?"
"아닙.."
"시끄럽고 일이나 해 너 그거 못하면 오늘 퇴근 못한다?"
대답이란 대답은 다 잘라가며 지할말만 하는 김 과장.
화가 났지만 정현이 이야기를 다 들어버린 상태에서
'그럴 수 있지.. 화 많이 났나 보네..'
나는 그 상황에서도 나보다는 김 과장의 감정을
더 신경 쓰고 있었어.
퇴근을 앞둔 시간.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일했는데도 김 과장이 준 일을 다 끝마치지 못했지.
'하아.. 담배가..'
문서들로 너저분한 책상에 숨어있던 담뱃갑을 찾아내서
흡연실로 향했어. 핸드폰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서 말이지.
"야근?"
"어? 어떻게 알았어?"
"아저씨가 퇴근하기 전에 전화하면 그거밖에 없다요!"
"... 괜찮아?"
"웅! 안 바쁠 때 또 나 휴가 주면 돼. 당신 바쁠 땐
내가 할게. 걱정 말고 일하고 와~ 단!
오늘 안에만 들어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은 엄마의 반응에 한시름
놓아지더라.
시계를 보니 5시 34분.
'한대 더피고 들어갈까 어차피 야근인데?'
담뱃갑을 열었다가. 다시 닫아버렸어.
'아빠가 집에 일찍 들어가야지..'
시간 가는 게 아쉬워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빨리 퇴근하자란 생각에 흡연실을 나서는데
팀장님이 걸어오는 게 보인 거야.
"오? 도리? 담배 핀거냐? 피러 가는 거냐?"
"방금 폈습니다."
"오늘 뭐 하냐? 소주나 한잔할까?"
"아.. 저 오늘 야근.."
"야근?"
아빠의 야근이란 말에 이건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표정으로 아빠에게 되묻는 팀장님.
"너 시연회 끝나서 급한 건 없지 않아?"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팀장님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서더니 목소리를 살짝 줄이며 물었어.
"야근비 때문에 그러냐?"
"아닙니다. 저희 팀 일 때문에.."
"아니 니네 팀일은 이미 분배가 다 돼있을 텐데 뭔 소리야?"
"오늘 급하게 전달받은 게 있어서."
"하나 웃긴 놈들이네? 몇 날 며칠을 새벽까지 야근하던 애
이제 좀 쉴까 하는데 그새를 못 참고 일을 줘?
누가 주냐? 경태? 기현이?"
어이없어하며 캐묻는 팀장님말에 아빠는 입은
또 생각 없이 열리고 말았어.
"김 과장님요..."
"... 누구? 김세찬이? 이 새끼들 웃긴 새끼들이네
야! 따라와 봐"
순간적으로 아차싶었지.
'아.. 괜히 말했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해도 늦는다고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더 이상 내가 상상하는
최악의 상황만은 가지 않길 기도하면서
팀장님 뒤를 따랐어.
"야! 김세찬이!"
"네! 팀장님."
김 과장 자리까지가 바로옆에서 멈춰 선 팀장님.
그런 팀장님의 부름에 벌떡 일어나는 김 과장이었지.
"너 얘 몇 주동안 계속 야근한 거 아냐 모르냐?"
"..."
"모르냐? 대답을 안 해?"
"압니다..."
"그런 애한테 또 야근하라고 일을 줘? 니들이 사람이냐?"
"그건 팀 일..."
"야!"
팀장님의 윽박에 고개를 숙인 채로 살짝살짝
아빠를 쳐다보는 김 과장.
'X 됐다... 하아 최악이다 진짜..'
변명을 하려는 김 과장의 말을 막고 소리를 지르는
팀장님.
"이 새끼가 지금 뭐 니네 팀 애 데려다가 일 시킨다고
나한테 시위하는 거야? 그리고 이거 누구 담당이냐?
야! 도리 서류 가져와봐"
팀장님의 말에 재빠르게 내 책상으로 뛰어가서
김 과장에 받은 서류를 들고 와서는 팀장님에게 내밀었어.
잠시 서류를 훑어보던 팀장님.
이내 김 과장 책상에 던지듯이 내려놓으시며
말을 이었어. 목소리는 더 화가 난 상태로 말이지.
"야이새끼야. 이거 니 일이잖아. 니일을 왜 얘한테 주냐."
아무 말도 못 하는 김 과장, 얼굴까지 벌게져서
화를 내고 있는 팀장님, 그리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사무실. 가만히 서있는 것조차 점점 숨이 차고
현기증이 나기 시작하더라.
"나와바 새끼야."
그렇게 김 과장을 끌고 나가시는 팀장님.
무슨 얘기를 나눌까? 또 이상한 오해가 생기진 않을까?
여러 걱정들로 사무실 문만 쳐다보고 있는데
경태형이 내 옆구리를 툭 치더니 말을 걸었어.
"야.. 이새끼 무서운 새끼네..
야 인마 그걸 가서 꼰지르면 어떡해..
니가 회사 오래 다닐 생각이 없구나?"
"제가 꼰지른게 아니고.."
"아닌가? 너 설마 진짜 세찬이 형 밟으려고 하는 거야?"
"아 무슨 소리예요 진짜. X도 모르면서.."
"X! 너 X이라고 했냐?"
"말 잘 못 나왔어요.."
5시 58분.
사무실 문이 열리고 성큼성큼 자리로 돌아오는
김 과장. 화를 낸다던가, 이유를 묻던가,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무 말이 없었어.
6시.
'하아.. 담배 한 대 피고와서 마저 해볼까?'
퇴근을 하기 위해 슬슬 일어나기 시작하는 직원들.
그때 고막을 찢는듯한 김 과장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퇴근해! 집에 가 이 개 X 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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