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울 할매는 만신(무당),나의 수호신이 되다!

ㄱㄱ(116.3)· 2026.08.02 09:42· 조회 117
#_3 낯선 할매 할매는 참으로 신기했다. 점사를 볼 때면 내겐 너무 낯선 할매였다. 1990년도 초반 ( 난 초등학생 ) 그 시절엔 할매 신당과 방이 붙어있어서 보고 듣는 게 당연했다. 아이의 목소리가 나오고, (아이들 특유의 혀 짧은 목소리와 말투) 그리고 근엄한 할아버지의 목소리, 할매가 일 하는 모습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던 거 같다. 동자신은 좀 신기했다, 사탕을 아주 좋아했고, 지폐는 싫어했다. 돈인지 모르는 거 같았다. 손님들이 동자선녀 신이 용하시다고, 감사의 의미로 지폐를 꺼내면들, 짤랑짤랑 동전을 달라고 했다. 그것도 항상 3개, 3개면 충분하다고 했다. 나중에 할매한테 여쭤보니, 옛날 화폐인 엽전만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종이 화폐의 가치는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왜 동전은 3개만 받느냐고 물었더니, 신은 욕심이 없다고, 그래서 좋아하는 사탕 사먹을 돈만 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폐나 큰 돈을 요구하는 것은 그저 신을 모시는 인간의 욕심 일 뿐이라고, 신은 삶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 아픈 사람, 도와주라고 존재하는 것이지, 재물에 욕심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때의 나도 돈의 가치는 몰랐던 터라 그냥 고개만 주억거릴 뿐이었다. 할매는 항상 새벽 3시가 되면 기상을 하셨다. 옆에 곤히 잠들어있는 내가 깰 까봐 조용히 움직이셨지만, 나는 할매가 일어나는 순간 반사적으로 같이 일어났다. 잠이 많았지만, 잠 귀가 밝기도 했고, 소리에 민감한 귀를 가진 터라, 작은 소리에도 눈이 번쩍 떠지고, 잘 깨어났다. 할매는 놀란 눈으로 날 보면서 말했다. “ 할매땜에 깼나? 더 자라. ” 나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할매한테 답했다. “ 할매 도와주고 잘래. ” 시크한 할매 못지않게 더 시크한 손녀딸이었다. 할매는 항상 새벽 3시에 일어나 씻고 가볍게 화장을 하시고, 긴 머리에 동백 기름을 바르시고 단정히 빗어 비녀를 꽂으셨다. 깨끗한 옷과 양말 버선까지 신어야 모든 준비가 완료, 신을 뵙기전엔 한결같이 깨끗하고, 단정해야 한다고 하셨다. 신당을 깨끗이 닦고, 옥수를(신의 물잔) 갈고, 초를 키고, 신께 문안 인사를 올리시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셨다. 음력 초하루 날, 그리고 보름날, 항상 햅쌀과, 햇과일을 갈아드리기도 했다. 신당에 물을 갈고, 쌀을 갈고, 과일을 올리고, 모든 일은 다 도왔지만, 딱 하나는 절대 하지 않았다. 항상 신께 절 3번만 해라 아미야 하셨지만, 내 대답은 항상 싫어였다. 더군다나 설날에 할매나 친척들께 다들 새배 할 때도 하지 않았다. 그것조차도 싫었다. 새배 안하면 새배돈 안 준다 협박을 해도 난 하지 않았다. 내 대답은 늘 같았다. “ 안 받고, 새배도 안해 ” 친척들과 할매는 내 고집에 어쩔 수없이 그냥 새배 받기를 포기하고, 새배 돈만 쥐어주셨다. 내가 유일하게 절을 하는 건, 할배랑 아빠의 기일 땐 시키지 않아도 절을 잘 했다. 그게 신기했는지 삼촌이 물었다. “ 아미야 왜 기일 땐 절 해? ” ‘ 아빠자나, 할배고 그러니까 하지 ’ “ 그럼 할매랑 친척들한텐 왜 안 해? ” ‘ 살아있잖아. ’ 삼촌은 무슨 말이냐 이해가 안 간단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 아빠랑 할배는 매일매일 볼 수 없잖아. 매일매일 인사할 수 없잖아, 멀리 떠났잖아. ’ 내 대답에 모두가 숙연해졌다. 할매는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어린 나이에 난, 절 이란 돌아가신 분, 다신 볼 수 없는 사람에게만 하는 가장 정중한 인사라고 생각했다. 삼촌이 또 물었다. “ 그럼 신당에는 왜 절 안 해? ” ‘ 우리 아빠는 안 도와 줬자나, 아빠를 데려 갔자나. ’ 그때의 나에게 신이란 믿음도, 의미도 없었다. 그저 우리 가족은 안 도와준 신, 우리 가족을 버린 신 일 뿐이었다. 할머니가 손님을 볼 땐, 난 항상 밖에 나가서 동네 친구들과 노느라, 점사를 볼 일이 딱히 없었다. 그다지 궁금하지 않기도 했다. 할매의 여러 모습이 낯설기도, 무섭기도 해서 그냥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딱 2개가 기억에 남아있다. 문전박대 당한 사람과, 수양 딸 삼으신 가족 일이 생각이 난다. 그때의 일이 생각이 나는 건, 초등학교때 일이기도 했고, 충격적 이기도 해서 계속 기억에 남아있는 거 같다. - 문전박대 손님 할머니랑 방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시더니 신당 방으로 건너가셔서 창호지 미닫이 문 앞에 앉으셨다. 이윽고 밖에 현관문이 열리더니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 사람이 창호지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 할머니는 매섭게 말했다. “ 돌아가! 네 점사는 안 본다. ” 그 사람은 황당하단 말투로 쏘아붙이듯 답했다. ‘ 아니! 제가 뭘 보러 온지 알고, 문전박대 하세요?! ’ 할매는 문을 쾅 치면서 대꾸했다 “ 어디 니가 감히, 첩 주제에 본 처를 떼 달라고 사주를 하러와? 여기가 어딘지 알고!!” 나는 놀라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순간 문 고리를 잡고 있는 그 여자의 손이 파르르르 떨리는게 보였다. 창호지 문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여자는 너무 놀랐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낮게 물었다. ‘ 그,,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 할매는 혀를 끌끌차며 답했다. “ 내가 모시는 신이 말씀해주셨다, 당장 내쫓으라고, 그러니 시끄럽고 당장 꺼져라.” 그 사람은 자신을 보기도 전에 훤히 내다보고 있는 할매가 용하다고 느껴서 인지, 돈은 얼마든 드리겠으니 제발 떼어 달라고 사정을 했고, 할매는 온갖 육두문자를 날리시면서 마지막 대답을 하셨다. “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난 그런 짓 안 한다. 그러니까 당장 꺼져라.” 그 사람은 그렇게 문밖에서 쫓겨났다. 나는 다시금 할매가 무서워지기 시작한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어찌 얼굴도 보지않고 알 수 있단 건지,,,, 충격이 컸다. - 수양 딸 주말 낮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날 따라 밖에 나가기 싫어서, 방에서 뒹굴고 있었다. 한 부부가 나란히 들어왔다. 엄청 귀티나 보였고, 예의도 깍듯했다. 곧 마흔이라고 했던 거 같다. 할매는 자리를 권하고는 신당에 향을 꽂으시곤 점상에 앉으셨다. 부부를 잠시 보시더니, 남자 분을 보곤, 대대로 손이 귀한 집안이다. 너도 3대 독자구나 하셨다. 그분은 놀랐는지 뒤에서 보니 어깨가 들석 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내 분이 다급하게 머리를 끄덕이며, 맞다고 3대 독자라고, 보살님 용하시단 소문 듣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간절한 마음에 달려왔다며, 제발 도와 달라고 하셨다. 할매는 아내 분을 보면서 물으셨다. “ 왜, 병원에서 불임이라고 애 못 낳는다고 하더나? ” 물으셨다. 아내 분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네.. 저희 불임이라고, 아이를 낳을 수 없데요. 저희 남편 3대 독자라 꼭 낳아야 하는데 정말 아이를 못 낳을까요?’ 할매는 휘파람을 휘~ 불더니 답하셨다. “ 돈이 많아서 쓸 때가 그리 없더나? 그러게 뭣 하러 가만히 잘 계시는 조상님 선산을 이장해 너희 편하자고 함부로 대우도 없이, 고하지도 않고 건들이니, 탈이 나지 ” 남편 분은 헉 소리를 내시더니 엄청 놀라셔서 또 답하셨다. ‘ 네 이장 했습니다. 어른들이 하자고 하셔서 했습니다. 이장한 걸 어떻게 아셨어요? ’‘ “ 나는 보이고 들리니 알지, 네 뒤에 조상님을 다 모시고 와 놓고 뭘 어찌 아냐고 물어 ” 그리곤 이어 말하셨다. “ 불임 아니다. 자손 있다. 산탈 나고 묘 탈 나서 조상이 등을 돌리고 앉아있고, 자손이 올 길을 막고 있으니 임신이 안 될 수 밖에, 굿을 해야 된다. 일이 좀 크겠네…” 하시며 한숨을 쉬셨다. 산소에 가서 진행할 굿이 3일 정도를 걸릴 거 같다고, 쉽게 풀어지실 화가 아닌 거 같다고 하셨다. 대략 5일 정도 이어질 굿이 될 거 같다고 했고, 그 부부는 몇 일이 걸리고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다 해 달라고 하셨다. 할매는 그제서야 성씨와 생년월일 주소를 묻곤 잘 적어서 신당에 올리셨다. 시간이 지나고 굿 길 일이 되어, 할매는 굿을하러 떠나셨다. 나는 얌전히 집을 지키고 있었다. 할매는 굿을 떠난지 6일 째 되는 날 이른 아침에 돌아오셨다. 그 부부 내외도 뒷 따라 들어왔다. 할매는 신당에 신들께 잘 다녀왔다며 인사를 드리고, 점상에 앉으시더니 합방 길 일을 적어서 건내셨다. 그날 꼭 합방을 하라며, 그럼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의심치 말고 꼭 행하라고, 그럼 다음 달에 웃으며 다시 할매를 찾아오게 될 거라며, 담 달에 보자고 조심히 돌아가라며, 배웅을 해주셨다. 할매는 날이 참 좋았는데 그 산소에만 비가 3일 내내 내렸다고 했다. 그 빗속에서 비를 맞아가며 굿을 하시고, 겨우 산신 님과 조상님들의 화를 풀어드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달 뒤, 그 부부가 진짜 할매를 찾아왔다. 활짝 웃으면서 그것도, 양가 부모님을 다 모시고 찾아왔다. 할매의 조언대로 해서 임신이 되었다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놀라서 오히려 되물었다고, 임신이 안되는 몸인데, 불임이 확실한데 어찌 임신이 되었냐며,,,,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고 했다. 양가 부모님은 정말 감사하다며 연신 허리 숙여 인사를 했고, 두툼한 돈 봉투까지 내밀었지만, 할매는 다시 쥐어서 보냈다. 고아원이나 어려운 사람들 돕는 일에 쓰라며, 그래야 장차 태어날 자손도 복 받고 명 받고 건강하게 잘 클 거라며 아이를 위해서 좋은 곳에 꼭 쓰라며 말하셨다. 그 아내 분은 할매한테 자신을 양딸로 삼아주면 안되냐고 사정 하셨고, 할매는 그 부탁은 흔쾌히 받아주셨다. 그리고 그 따님은 정말 10개월 뒤 건강한 아들을 품에 안으셨다. 그리고 2년뒤 부부는 할매를 부르며 들어왔고, 할매는 인사 대신 “아들 키워보니 이제 또 딸이 키워 보고 싶제?” 하면서 호탕하게 웃으셨고, 부부는 흠칫 놀라더니 ‘ 역시 엄마는… 말 안해도 다 알아 신기해 ’ 라고 말하곤 웃었다. 그런 부부를 보며 할매는 말했다. “ 3개월 안에 생긴다. 딸이다. 딸아이 태어나면 이제 끝이데이~” 더 이상의 자식은 없다며 아들 딸 잘 키워라 말하셨고, 정말 무섭게도 그 부부는 1년뒤 딸 아이를 품에 안으셨다. 부부와 양가집 부모님들까지 아주 할매집에 문턱이 닳도록 찾아오시고, 쉬다가시고 했다. 할매가 어느날 약주를 하셔서 나에게도 말했다. 집안의 점사는 절대 말하지 않는 분이신데,, 날 가만히 보더니, 아미야 너는 자손이 많이 늦을거야. 그래도 그 자손이 효도하니까 걱정은 말라며, 단지 아이가 많이 늦게 올 테니 그것만 알아 라고 말했다….. PS. 제가 저의 가족 사를 쓰다 보니, 다시 상처가 떠올라서 한동안 방황을 좀 했어요…. 부족한 저의 얘기를 읽어주시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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