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친정과 인연을 끊은지.... 2년
외가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엄마 아빠는 결혼했다.나의 어렸을 적 기억은 딸 둘 나는 10살 7살때까지 기억이 난다.밥상이 날아가고 니기미,, ㅅ ㅂ 욕설과 함께 몸싸움을 하며 나와 동생앞에서 그렇게 싸워댔다.매일 같이...미친 것들 지금 내 나이 50인데도 그 트라우마는 지워지지 않는다 10살인 나는 방에 조용히 앉아 기도했다.우리엄마 아빠 싸우지 않게 해주세요..며칠 안싸우나 싶더니 또 매일같이 욕을 하며 싸운다.나와 동생이 듣는 앞에서 우리 엄마는 이혼하자 애들 내가 키운다라는 말을 밥먹듯이 했고 아빠는 이혼해 주지 않았다.나는 학교에 가도 저녁에 엄마 아빠가 싸울 걱정을 했고,공부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점점 내성적으로 변해갔다.. 정서적불안을 심하게 느꼈다. 11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갔다. 후에 보니 같은 동네 아저씨랑 바람이 났다.그렇게 3년을 끌며, 14살 되던 해에 이혼을 했다.두 딸을 버리고 그렇게 그렇게 갔다. (친엄마는 엄마자격이 없는 년이지만, 지 인생을 찾아서 잘 갔다.)이혼을 하며 나와 동생은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당시 중2였던 나는 할머니와 세대차이로 엄청 힘들었는데 이것도 얘기하자면 소설한편 나온다.--->쌀벌레 때문에 쌀에 바퀴살충제를 뿌리고 그 쌀로 밥을 해서 먹어라 한다 내가 안먹자 느거 애비 돈도 잘 못 버는데 가시가나 아무거나 주면 쳐먹어야지, 머시마라도 됐으면,, 남존여비사상이 뿌리깊에 박힌 할머니 셨음. . 1919년생 지금은 돌아가심 )나는 공부머리 없는거며, 게으른거며, 무능력한 부모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지만,그래도 먹고 살아야겠다 싶어 일찍 취직을 했다. 19살때부터 일을 했는데.,앙념통닭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일한 돈으로 양념통닭을 시켜서 동생이랑 한마리를 다 먹었다.너무너무 맛있었다. .사실 그전에 양념통닭도 맘껏 못먹고 살았었다.일을 시작하고 얼마 후 2~3개월에 한번씩 아빠가 20만원. 30만원 용돈 주라 해서 싫은티를 냈더니, 한동안 잠잠하다 또 돈을 조금 씩 요구하기를 반복 슬슬 지쳐가던 쯤에옆집 아저씨를 때려서 합의금이 필요하다며 100만원을 요구했다. 아니면 감방간다고 한다.그때 폭발해서 고래고래 소리치며 미쳤나라고 했고, 난 돈 없으니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1919년생 우리 할머니,, 느거 애비 느거 키운다고 고생했는데 100만원도 못해주나라고 해서 이 할마씨하고도 대판 싸웠다. (나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한테도 계속 20만원씩, 30만원씩 받아쓰고 돌려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스톱도 치고, 바다이야기(도박장)도 다니고, 그러니 돈이 늘 모자랐나 보다. 새엄마가 왔다. 새엄마는 좋은 사람이었다. 복이 없다. 아빠같은 사람을 만났으니.새엄마가 일해서 받은 월급 150만원 남짓 되는 돈으로 둘이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아빠는 일을 하긴 했는데, 프리랜서인지 일하는 달이 많지 않았고, 이제 60살 이후로는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아빠는 술을 좋아한다.사람은 착하다. 술을 마시면, 개가 된다.말끝마다 신발신발이 붙어있다. 어이 어이 하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 크다.어디 식당에라도 같이가면, 안보는척 하면서 쳐다 본다.. 아 정말 챙피하다. 어버이날 생일날 만나면 나는 제발 룸이 있는 집으로 가자고 한다. 왜냐하면 너무 눈에 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000씨 따님 되시죠? 00경찰서 경장 000입니다. 아버님이 술이 취해서 집까지 모셔왔는데, 비밀번호를 모르신다는 전화를 2번 받았다. 2번인 이유는 다음부터 낯선 번호는 받지 않았고, 동생한테 전화가 갔다고 한다.한번은 술쳐먹고 바닥에 머리를 찧어서 이마뼈가 살짝 함몰 됐는데 병원으로 빨리 와달라고 해서 갔더니, 수액 맞으면서 코골며 자면서 간호사가 옆으로 누워보라고 했느데 신발 이지랄를 하면서 잔다... 개 ㅅ ㄲ 50년간 단 한번도 딸들 생일날 빵한쪼가리 사준적이 없다. 지 딸을 학교진학이나 학업에 전혀 관심 없다. 우리 딸이 초등학교 들어갈때도 10원 하나 안주길래, 내가 봉투를 만들어서 새엄마에게 부탁했다. 우리 남편 보는데서 좀 우리한테 주는척이라도해달라고,, 돈은 내가 봉투에 담겠다며,,고아원에 보내지 않고, 그래도 거두어 주었다는 고마움?때문에여태껏 생일이며, 어버이날이며, 명절이며, 챙기면서 인연을 이어왔는데 찾아갈때마다 술취해서 _ㅣㅅ ㅂ ㅅ ㅂ 그렇게 내나이 50이 다 되도록 참다, 2년전 어버이날도 진상을 개 진상을 떨길래나도 모르게 이 신발, 지랄을 떨어도 적당히 해라!!!!!!!!!!를 마지막으로 친정에는 가지 않는다..초점없이 흐리멍텅한 눈에 얼굴이며 목소리며 정말 소름끼친다.느거 아버지 뭐하시냐라고 묻는다면 그냥 죽었다 하고 싶다.왜 하필 저 사람이 내 아빠일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워낙 세상만사 걱정이 없으니 무병장수중이다.이제와서 자주 연락하고 자주 보고 지내고 싶단다. ㅁㅊ 피해의식이 나쁜거지만, 나는 부모를 잘못 만나도 드럽게 잘못 만났다.부모만 좀 잘 만났으면 지금보다는 내가 더낫지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든다. 요즘은 내가 부족한 거 많은 사람이지만 나는 장애인이 아니고 멀쩡하고 아프지 않고, 우리 예쁜 딸 귀엽게 크고 있고, 내 복이 여기까지니까 더 욕심내지 말자며 살고 있지만,부모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가슴이 답답해 진다.여러분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ㅠㅠ!!
댓글 3
kfr6시간 전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ㅂㄱ6시간 전
에휴~ 고생많았네요. 힘내시고 잘 사세요. 저도 부모복은 없네요. 엄마 13살때 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 IMF로 대기업 명퇴당하고 가진재산 다 날리고집안풍비박산나고 그 이후로 맥없이 집에서 놀고계심~ 25년넘게~ 에휴~
ㅁㄴㅇ5시간 전
너무오래 애썼습니다 진작에 버렸어야할 부모인데.... 내가선택한 내 가정에만 집중하세요!! 행복해지세요 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