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52. 아빠는 아빠가 되고 싶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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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분.. 위기 메이커
"정현.. 아.. 쟤좀 말려야 되는 거 아니니..?"
"그러게.. 도리야.. 너 지금 미친것 같아..."
소주잔과 소주병을 들고 여기저기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니는 아빠를 말리는 정현이와 민차장이었지만
아빠 귀에는 들리지 않았어.
"헤헤.. 응? 왜? 나 아직 안 취했어."
"그러게.. 취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끝을 흐리는 정현이.
"오! 과장님 어디 가세요. 제술 한잔 받으셔야죠!"
"뭐야? 애 왜 이래? 취했냐?"
"에이.. 한잔 받으시고 저도 주세요 헤헤..
앉으시기 부담스러우면 제가 일어설게요!"
"야야 불편하게 왜 이래?"
화장실을 다녀온 건지 담배 피고 들어오는 길인지.
다른 부서 과장님을 발견한 아빠는 술기운에서였을까?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아니 생각도 못했을 행동들을
능글맞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하고 있는 아빠였지.
"어? 영훈이 형! 나 술 안 주고 어디 가요!"
"형?"
"에이~ 선배님은 너무 벽 있어 보이잖아요.
이참에 우리 말도 놓을까요?"
"..."
물론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지.
"도리! 이 술 잘 먹는 녀석! 너 주량이 얼마냐?"
"부장님이 주시는 술은 주시는 데로 마실 수 있습니다!"
"얘 사회생활 잘하네! 너 마음에 든다!"
극히 일부였지만 말야.
하지만 그 일부의 기쁨이 너무 커서
아빠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가려버리고
있다는 걸 아빠는 미처 모르고 있었어.
"도리씨.. 적당히 해."
"어? 원진씨도 한잔해요."
"아니 됐고. 아까부터 보자 보자 하니까
혼자 지금 뭐 하는 거야 정말."
아빠가 날뛰는 모습을 보다 못한 입사동기 원진씨가
아빠에게 쓴소리를 해댔어.
하지만 말야.
아빠의 머리는 그의 목소리를 단순히 사람들이
아빠를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 그들의 눈에 들어가는 것 같아
부러워서 그러는 거라 마음대로 해석해버리고 말았어.
"자 즐겁게들 마셨으면 2차 갑시다."
'아.. 아직 어필 많이 못했는데...'
이제 좀 분위기 좀 잡혀간다고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이사님께서 2차를 가자고 제안하자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을 보며 많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래 2차 가서 또 어필하면 되지'
그렇게 다짐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등짝을
훅 때리는 거야.
"흐억!"
"흐억은 무슨. 너도 2차 갈 거지?"
경태형이었어. 손가락으로 숫자 2를 뜻하는 브이를 만들어
보이며 아빠에게 물어왔지.
"가야죠! 형도 가세요?"
"..."
다시 한번 브이를 살짝 흔드는 경태형.
왜 이럴까 싶어 눈만 껌뻑이고 있는데 경태형이
한숨을 팍 쉬며 말을 이었어.
"하아.. 이 눈치 없는 새끼.. 손가락 딱 보면
모르냐? 담배 달라는 거잖아. 담배 꽂아봐."
"아! 담배. 여기요"
손가락에 담배를 끼워주자 그제서야 팔을 내리는가 싶더니
아빠에게 어깨동무를 하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지.
"불은? 이 새끼가 이렇게 눈치가 없다니까?"
"아! 불! 불 스텐바... 이?"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며 우연히 본 경태형의 얼굴
그때 본 것 같아. 뭔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아빠를
바라보고 있는 경태형을 말야.
"후우.. 눈치 없는 놈.. 에이 이 눈치 없는 놈.."
"왜 자꾸 그래요.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하아.. 야 인마. 잘 생각해 봐?"
더 이상 답답해서 안 되겠다는 듯이 입에 문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에 끼워 빼며 아빠에게 한걸음
가까이 다가오던 경태형.
"니가 X나 싫어하는 음식이 있어. 그래 오이라고 생각해 보자.
오이 좋아하냐?"
"네.."
"그래? 그래도 오이야. 너 지금부터 오이 싫어하는 사람이야.
아무튼 그 오이가. 네가 가는 곳마다 있어."
"가는 곳마다?"
"어 가는 곳마다. 화장실에서 휴지도 건네주고,
잘 때 옆에서 자장가도 불러주고,
세수할 때 네 옆에 서서 수건도 건네줘.
그럼 넌 어떻겠냐? 오이가 고맙냐? 친근하냐?"
"무서워요.."
"그래 그거야! 아직 오이가 누군지도 모르고.
오이 맛도 모르고 오이로 뭘 할 수 있는지 오이가
왜 오이인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옆에 있는다고
그 오이가 갑자기 좋아진다? 아니지. 그거 X나 무섭고
끔찍한 거야. 오이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그럼 어떡해요?"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난 오이 좋아해. 2차나 가자.
2차에서 안주로 시켜볼까? 오이슬러시 같은 거 없나?"
그렇게 자리를 뜨던 경태형.
경태형의 조언은 짧지만 강렬했어.
아빠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거든.
'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어.
'아니야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잖아?
경태형이라고 뭐 다 옳은 말만 했겠어? 본인이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라며 혼자 말도 안 되는 위로를 하고 있을 때였지.
누군가 아빠가 물고 있던 담배를 휙 뺏어 바닥에 던져버리는 거야.
"담배! 나빠!"
"아오! 넌 또 왜 그러냐..."
바로 정현이었지.
민차장과 같이 나오던 정현이. 아빠 담배피는 모습을 보고는
달려와 담배를 뺏어 던진 거였어.
신나게 웃던 민차장과 정현이.
"왜~ 기억 안 나? 우리 첫 회식 때 내가 니 담배 뺏었었는데
왜 그때처럼 욕 좀 해봐 오랜만에 한번 들어보자!"
"야 그때는 돛대였으니까 그랬지. 그리고 담배 살 돈도
없을 때였단 말이야."
"히히 그러니까~ 상황이 변했으니까 태도도 변한다?"
"그건 아닌데. 하아 머리 복잡하다. 귀찮게 하지 말고
다른 데 가서 놀아."
살짝 인상을 쓰며 귀찮고 짜증 난다는 듯이 건넨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현이는 아빠에게 계속 말을 걸어왔어.
"그때 너랑 친구 하기로 한날. 왜 내가 먼저 너한테
그렇게 다가갔는 줄 알아?"
"나이가 같아서라매?"
"그래 뭐 그런 것도 있긴 한데. 너 되게 착해 보였거든.
책임감도 있어 보이고, 그냥 친구 하기 딱 좋겠다~
이 생각이었지."
"근데?"
"근데 친구로 지내면서 겪어보니까. 와 내 생각이 진짜
딱 맞는 거야. 너 되게 좋은 사람이더라고."
"..."
"그냥 너로 살면 안 돼? 너 지금 되게 힘들어 보여..."
살짝 흔들리는 정현이의 목소리.
잠시동안 아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그러기엔 너무 멀리 온 것 같아. 이러지 않으면
사람들이 내가 있다는 것조차도 아니 내가 누군지 조차도
알려고 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을 거야. 너처럼 다가오는
사람? 지금 상황에서 내가 장담해. 없을 거야."
뭔가 더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듯한 표정의
정현이와 민차장을 뒤로하고 2차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야! 도리! 막내가 한곡 뽑아야지 뭐 하는 거야?"
술냄새 풀풀 나는 노래주점의 큰 룸 안에서 시작된 2차.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2차를 오는 바람에 룸을 2개 잡아
인원을 나누고 시작되었어.
"발라드, 댄스, 락, 트로트, 원하시면 민요까지 가능합니다.
어떤 걸로 스타트할까요?"
"하하하 인마 이거 재밌는 놈이었네. 트로트 한번 가자
남행열차 가능하냐?"
다른 부서 부장님의 남행열차 선곡에 룸 안 사람들은
질색하며 야유를 퍼부었어.
"어유.. 부장님 언제 적 남행열차예요?"
"맞아요. 요즘은 우리 아빠도 이거 안 불러요."
하지만 그들의 야유를 뒤로하고 리모컨으로 남행열차를
선곡하고 한 손으로 탬버린을 들어 올리는 아빠였어.
"불가능한 걸 물어보십쇼! 불가능한 거 빼고 다가능합니다!"
"그래그래~ 야 마이크 좀 줘봐라 나도 같이 부르게"
신나서 마이크를 들고 앞으로 나와 아빠에게 어깨동무를
하던 부장님. 그런 부장님의 모습은 아빠의 생각을
확고하게 하는데 충분했어.
'거봐.. 이렇게 좋아하잖아. 내 생각이 맞았어.'
그 후로도 방 두 개를 넘나들면서 얼마나 마시고, 얼마나 부르고
또 얼마나 흔들었는지.
양주와 소주를 번갈아가며 마셨음에도 취했다는 생각이
전혀 안들정도로 오히려 머리가 맑은 느낌이었던 것 같아.
'와.. 내가 술 센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스스로 감탄할 정도였으니 말이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슬슬 이탈하는 직원들 탓에
방을 하나로 줄여버렸음에도. 그나마 남아있는 직원들
중에서도 아빠를 포함에 4명만 빼고는 자리를 비우거나
술에 취해 테이블 엎드려, 쇼파에 누워 잠들어 버린 상황이었지.
"하.. 이노마들은 잘 거면 집에서 자지 왜 여기서 들 자고 있어?"
"하하하 피곤하신가 봅니다. 제가 보내드리고 올까요?"
"이야~ 이노마 사회생활 기깔나게 하네. 온냐 그래
택시 태아뿌고 오니라"
진짜 보내주라고 할 줄은 몰랐지... 하지만 사회생활 잘한다는
그 말이 아빠에게 발작버튼이 돼서 몸을 자동으로 움직이게
만들었어.
"형.. 형.. 일어나 봐요"
"부장님~ 댁이 어디세요?"
"기사님 차장님 잘 부탁드려요~"
"과장님 가시죠~"
"누나~ 정신 차려요! 도착하면 전화 주세요!"
"...."
그렇게 정신없이 사람들을 하나씩 택시에 태워 보냈고
겨우 마지막 한 사람 남았을 때.
아빠는 할 말을 잃어버렸어.
"경태형? 사진 찍어도 돼요?"
윗통까지 벗고 신발도 쇼파밑에 이쁘게 모아놓은 채로
자기 집인 줄 알고 자고 있는 경태형. 아빠가 부르자
눈을 부릅뜨며 아빠를 바라보더라.
"어? 어~ 도리 웬일이야 우리 집에?"
"... 어디 살아요? 택시 태워드릴게요."
그렇게 경태형을 마지막으로 택시에 태우고
멀어지는 택시를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어
'하아... 끝났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땀에 절어 축축해진 옷.
사람들을 부축해서 하도 계단을 하도 오르락내리락해서
후들거리는 다리.
하지만 말야.
잠깐의 휴식도, 심지어 담배 한 개비도 필 시간이 없었어..
얼른 올라가서 칭찬을 듣고 싶었거든.
'역시 도리밖에 없다.'
'네가 다 보냈어. 대단한데?'
'이노마 사회생활 잘하네.'
근데 말야.
룸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 택시 태워 보내라 했던 부장님을 포함해서
아무도 없더라.
난장판이 된 테이블, 의미 없는 화면만 계속 보여주고 있는
모니터, 바닥에 나뒹구는 마이크만이 여기가
회식장소였다는 걸 알려줄 뿐이었지.
'... 다 갔네.. 말도 없이..'
마치 쓰러지듯이 쇼파에 무너지듯이 앉아서 담배를 입에 물었지.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렇게 멀쩡하던 정신은
흐려져가고, 술기운이 확 오르는 것 같은 게 어지럽기까지
하더라고.
"엽세여? 마누롸~ 나 여기 OOO인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아빠는 아빠도 모르게
가장 익숙한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어.
"도리아저씨? 회식 끝났어? 목소리가 왜 그래?"
술에 취해 혀 꼬부라진 그리고 힘없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엄마.
"후우.. "
"저기 사장님? 회식 끝나신 건가요?"
"하아.. 아! 넵 죄송흡니드아 지금 나그께여"
문은 열려있지. 사람은 아빠밖에 없지 직원이 슬쩍 보더니
회식이 끝났냐고 물어오더라고. 나가란 소리지.
그래서 천천히 일어나는데 발을 잘못 딛었는지
넘어져버리고 만 거야.
"악!"
"뭐야? 도리아저씨 괜찮아?"
"후우~ 어? 헤헤 응. 아니? 응.."
괜찮냐는 말. 그 한마디만 들었던 것 같아.
아빠는 그 간단한 질문에도 정확한 대답을 못하고 있었고
말이지.
"나 여기이 OOO인데 벤치에 안즈아 이써업."
"거기서 기다려 내가 갈게."
"와! 진쯔아? 헤헤 고마어~"
차들이 쌩쌩 지나다니는 길거리
그날따라 차들이 왜 그렇게 가깝게 보이던지.
조금은 딱딱하지만 넓은 벤치. 거기에 아빠는 앉아있다가
누웠다가 하면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어.
이따금 담배도 한 대씩 피면서 말이지
"마느르아.. 어디야아.. 왜안와.."
"지금 택시 탔어. 금방 갈게."
온다고 한지 20분가량 지났건만 이제 택시 탔다는 말에
조금은 서운했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서도 누군가
나를 위해, 내가 걱정돼서 내게로 온다는 그 사실이
너무 행복했던 것 같아.
"어디야아.. 왜 안 와?"
"차가 좀 막히네 금방 갈게. 여보세요? 아저씨?"
그 전화를 마지막으로 잠이 들었던 것 같아.
찢어지는 듯한 큰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깰 때까지
기억이 없는 거 보면 말이지.
"야! 죽고 싶어서 이러고 있어?"
앞쪽으로 아기띠를 맨 상태로 눈물을 글썽거리며 소리치는
여자. 바로 엄마였지.
엄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니.
아빠가 벤치라고 착각했던 건 보도블록과 차선을 구분하는
턱이었던거야, 차들이 가까이 보이던 건 그냥 느낌이 아니었던 거지...
심지어.. 우회전 코너 모서리에 발은 차도 쪽으로 뻗은 상태로,
몸은 보도블록 쪽으로 반걸쳐서 뒤로 누워 있었던 거지.
"어? 왜 우러? 도윤이도 왔네?"
"왜 이러고 있어? 속상하게 진짜!"
"헤헤.. 마누라아~ 내가 오늘 얼마나 이쁨 받았는 줄 알아?"
땀에 젖었다 말랐다 하는 바람에 얼룩진 옷,
여기저기 묻은 흙모래들, 헝클어진 머리..
엄마는 아빠옷을 한번 툭툭 치는가 싶더니 있는 힘껏
손바닥으로 아빠 등을 때려버리더라구
"또 이래 봐 진짜 회식 못 가게 할 거야!"
"나 괜찮아. 내가 지건들 집에도 다보내꼬..
오늘 분위기 메이쿼 여따구"
"지는 집에도 못올정도면서 누굴 집에 보내! 속상해진짜!"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는데, 달래줘야 하는데...
아빠의 눈에도 눈물이 고이는 거야.
'그렇게 노력했는데 나 버리고 다들 가버렸어...'
엄마에게 하지 못한, 아니 할 수 없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오는 걸 있는 힘껏 저지하면서 말이지.
"사람들이 엄청 좋아했어! 내가 최고래!"
"진짜? (훌쩍) 근데 도리아저씬 왜 울어?"
"네가 우니까.. 그리고 감격스러워서..."
그 후 가끔 그 거릴 지날 때면 엄마가 아빠를 놀리곤 했지.
"왕따 아저씨. 왕따 당하고 질질 짜던 곳이다!"
라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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