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50. 아빠는 아빠가 되고 싶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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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세상에서 가장 힘든 첫 걸음
김 과장이 떠나고 좀 달라졌냐고?
"도리 재 결국 지 상사 잡아먹었네..."
"무서운 놈이야. 아니 들어온 지도 얼마 안 된 애가..."
"왜들 그래 살아남으려면 독해져야지 잘하고 있구먼"
"남 얘기니까 그렇지 대리님 이야기였어봐요."
달라졌지.. 자기 상사 잡아먹으려는 애다. 에서
잡아먹은 애로..
사람들의 좋지 않은 시선과 소문에. 아빠는 점점
직원들 사이에서 고립되어 갔고, 이내 아무도 아빠에게
말을 걸지도, 그리고 아빠가 걸 수도 없는.
유령으로 자리메김해 가고 있었지.
인사조차도 나누지 못한 채 말야.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원래 있던 개발 1팀 팀원들은
아빠의 전반적인 상황을 알아서였을까?
아무렇지 않은 척 아빠를 대해 줬었어.
"새로 간 부서는 괜찮냐? 형들 없으니까 일할 맛 나지?"
"부서 바뀌고 오늘 처음 출근이라.."
살살 웃으며 장난을 걸어오는 경태형.
늘 그렇듯 장난스런 웃음을 띄우며 다가오는 경태형
이었지만. 왠지 경태형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진
못했던 것 같아.
"야 인마 형이 뭐라고 가르쳤어. 첫날부터 어? 스캔
싹 해보고, 분위기 파악해서 물 흐르듯이 리듬을 타가면서
어? 꼭 내가 우리 버리고 다른 부서로 옮긴 너한테까지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야 되냐?"
우리 버리고.. 그 말이 아빠한텐 또 차갑게 다가온 것 같아.
'과장도 날려버리고, 부서도 배신한 사람..'
그게 아빠도 모르게 머릿속에 박혀버린 거지.
신나게 떠들던 경태형이 내 생각을 눈치챈 걸까?
잠시 말이 없더니 아빠 어깨를 툭치며 말을 이었어.
"이 새끼 인마 다시 돌아와 형한테 더 배우고 가."
그때였어.
"야! 니네집가 인마. 왜 남의 집에서 남의식구
괴롭히고 그러냐?"
귀찮은 듯 짜증 섞인 듯하면서도 단호한 말투로
경태형에게 잔소리하는 소리가 경태형 뒤에서
들려오는 거야.
"그리고 왜 내 자리에서 그래?... 내 책상에 앉았냐?"
"아이고 형.. 내가 그럴 리 있겠어요? 형이 싫어하는 거
다 아는데? 아직도 나를 몰라?"
"몰라는 반말이고. 곧 업무시작한다 자리로 돌아가."
권 과장. 늘 외근만 다니는 영업직이라. 얼굴 볼일이
한 달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사람이라. 그 당시까지만 해도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지.
"도리? 반갑다? 앞으로 잘해보자."
"자..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하는데 왜 쫄아? 쫄 거 없어 어차피 나
사무실에 잘 안 나와서 볼일도 거의 없어"
그럴 줄 알았지.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줄 알았지.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 몰랐으니까..
"야! 여기 튀어나온 거 뭐냐? 제대로 안보냐?"
"책상 정리 좀 잘하고 다녀라 더러워서 일을 못하겠다."
"아직 퇴근시간 1분 남았는데 컴퓨터를 끄네?"
"그럴 겁니다가 아니라 제대로 확인하라고!
누가 네 생각 물어봤어? 상황파악하라고 했지?"
흔히 말하는 FM 그 자체였던 거야.
뭔가 선을 딱 정해놓고 그 선을 넘으려고 하면
돌변하는.. 그런데도 일은 또 얼마나 꼼꼼하게 잘하는지
그 누구도 권 과장에게 태클을 걸거나 뭐라 할 수
없는 위치였어.
"어디 가니?"
업무시작 전 담배나 한 대 필까 하고 일어나는데
모니터에 일정표를 확인하느라 시선은 고정돼있는 채로
권 과장이 물어 왔어.
"다.. 담배.."
시계를 한번 확인한던 권 과장. 고개를 한번 갸웃하더니
"업무도중에는 잠깐 나가서 피고 오는 거야 뭐라 할 수
없지만, 업무시간 다돼서 가는 건 보기 좀 안 좋다."
권 과장의 말에 스르륵 자리에 앉는 나.
그 모습을 보면서 권 과장은 계속 말을 이었지.
"오늘은 첫날이니 그렇다 치고,
나있을 때 만이라도 자제해라. "
그리곤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기며 아무렇지
않은 듯 덧 붙였어.
"갔다 와."
사무실을 나서던 아빠.
흡연실 문을 열자마자 크게 숨을 내뱉었어.
"후아~!"
진짜 숨도 못 쉬겠다는 말.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
권 과장이 아빠에게 말을 하는데. 숨이 안 쉬어지는 거야.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안 들리고. 어질어질한 게...
"하아.. 하아.. "
조금 안정이 된 걸까? 그제서야 터진 호흡.
조금 더 숨이 고르게 쉬어질 때쯤 돼서야 담배를 입에
물었어.
'와.. 진짜 무슨 사람이 위압감이...'
화를 내 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심지어 소리 지른 것도
없는데 말 한마디와 행동하나로 사람을 이렇게
압도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권 과장님.. 진짜 무서운 사람이네...'
라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어떡하지란 생각에
우울해지더라고.
담배를 다 피고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떼어가며 사무실로 돌아갔을 때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정현이가 눈에 들어왔어.
"어? 과장님은 방금까지 계셨는데?"
"권 과장님? 방금 나가셨는데 못 봤어?"
정현이의 말에 바라본 권 과장님 자리.
한쪽에 각 잡힌 채로 쌓여있는 서류들, 먼지하나 없는
깨끗한 책상. 깔끔하게 정리돼있는 필기도구들.
그 많은 자리들 중에서 권 과장님 자리만 빛이 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리가 잘 돼있고 깨끗하더라고.
"와..."
"응? 왜? 아.. 권 과장님이 좀 깔끔하시지?"
"어.. 나 그동안 여기 빈자리인 줄..."
자리이동 첫날. 권 과장의 첫 만남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렬하게 남아 있단다.
"다녀왔어."
"어.. 다녀.. 아이고.. 다시 하자 도윤아~ 다시~ 하자~"
거실에 앉아 고개만 돌려 아빠에게 인사하고는
다시 너를 붙잡아 세운채로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엄마였지.
"뭐 해?"
"응? 봐봐 아저씨! 도윤이가 아까 분명 걸었거든?
두 발자국 분명히 움직였는데.. "
계속 세워놓으면 혼자 깔깔대다 옆으로 쓰러지는 너.
"므어... 므므.."
"아니~ 도윤아 이렇게 걷는 거라니까? 한번 해보자
아까 했잖아~"
"므어.. (쿵) 으캬캬캬캬"
넘어지는 게 좋은 건지 이 상황이 재밌는 건지
조그만 게 마치 좀비처럼 으르렁대다가 넘어지면서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이 어찌나 코믹하던지
분명 너무 웃긴 상황인데. 이상하게 웃음이 흘러나오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지.
"어휴.. 다시 해보자 도윤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엄마. 넘어질걸 알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너.
그리고
(쿵)
"으캬캬캬캬캬"
이것쯤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신나게 웃어버리는 너.
몇 번이나 반복되는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다 보니.
처음에 우습단 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울컥하는
감정만 남더라.
가족을 위한다고, 열심히 산다고 살고 있는데
왜 자꾸 일은 꼬여만가고, 왜 항상 그 자리인지.
아프니까 청춘이다, 힘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인생이
힘든 거다...
누군가 만들어낸 이 멋있는 말들.
진짜.. 물어보고 싶었어.
이렇게 살아 봤느냐고. 숨 막히게, 두려움에 떨어가며,
내일의 해가 뜨지 않았으면, 차라리 눈 뜨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을 갖고 살아봤느냐고 말야.
그런데 말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태어난 것도, 걸음마를 배우는 것도 모두 네 의지가
아니었는데도. 새로운 시도에 계속 실패하면서도
웃어넘기는. 그리고 또 일어서는 네 모습이
어쩌면
'아빠! 나도 이렇게 하고 있어요!'
라고 자랑함과 동시에
'그러니까 아빠도 할 수 있어요. 넘어져도 괜찮아요.'
라고 건네는 위로는 아닐까라고 말야.
"고만 재워. 도윤이 온몸에 멍들겠네.."
"응? 도윤이 눈 땡글 한데?"
너를 두 손으로 들어 아빠에게 얼굴을 보이는 엄마.
"므~ 므~"
아빠를 알아보는 건지 안아 달라는 듯 양팔을 아빠에게
벌리며 바둥대는 너.
그대로 안아보려고 손을 내미는데
미처 너에게 닿기 전에 엄마가 손을 휙 뒤로 빼며
너를 안았어.
"안돼! 담배냄새! 씻고 와서 안아줘!"'
"한입만.."
"응? 한입.."
"아니.. 한 번만..."
"이제 니아들까지 드시려고?"
일부러 건넨 농담이었지.
아빠의 마음, 그리고 생각이 표정이나 목소리에
묻어 날까. 그래서 엄마가 또 걱정하게 될까 봐 말이지.
"안녕하세요!"
"어? 어..."
다음날 출근길.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른 부서
직원이 보이더라고. 안 받아주면 어쩌지?
만약 무시하면? 왜 인사하냐고 무안 주면?
이런 생각 들지 않았냐고? 아니야..
솔직히 말하면 정말 아무 생각 없었어.
그냥 무작정 인사부터 던졌던 것 같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대리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게 아빠가 할 수 있는 전부였어.
그건 말이지.
나 여기 있어요, 나도 당신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나 좀 봐주세요.라는 아빠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울부짖음이었던 거지.
업무시간이 가까워질 때까지 주차장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빠의 인사는 계속되었어.
"형 안녕하세요?"
"뭐야... 회사 지키는 장승인 줄 알았네..
천하대장군 뭐 이런 거야?"
"헤헤.."
"웃지 마 정들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 웃으면서 발길을 옮기는 경태형.
"기현이 형 안녕하세요?"
"야~ 너 또 누가 이런 거 시켰어? 거기서도 너 괴롭히냐?"
"어.. 아니에요.. 그냥.."
"하 진짜 사람들 못됐다. 그만하고 올라가.
엘리베이터걸이야 뭐야 이게.."
또 누군가 괴롭히는 줄 알고 맘에 안 들어하며 아빠 팔을
당겨 같이 타고 올라가자고 하는 걸 억지로 떼내자
한숨 쉬며 한소리 하던 기현이 형.
"난 8층. 식당에서 컵라면 하나 먹고 근무해야겠다."
"네?"
"뭐야? 층수는 안 눌러줘? 그럼 뭐 하러 여기 서있어?"
뚱한 표정으로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만 남기고
유유히 떠나시던 다른 부서 부장님.
"안녕하세요?"
"..."
그리고..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대부분의 직원들.
하지만 괜찮았어. 아니 괜찮다고 억지로라도 생각
하기로 했지. 이 또한 내가 이겨내고 반드시 거쳐야 할
걷기 전 과정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야.
"재 왜 저러냐.."
"그러게? 그냥 가만히 있지 부담되게"
"냅둬 지도 꿇리는 게 있으니 저러겠지."
물론 그 과정이 쉽진 않았지만 말야.
"와.. 모둠초밥이 되라고 했지. 단품메뉴가 되라고 한 적은
없는데..."
"어? 차장님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거기다 시그니처 메뉴까지 되려고 하네.."
엘리베이터 앞에서 계속 인사하고 있는 날 언제부터
본 건지 민차장이 다가와 한숨 쉬며 말하더라.
"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왜 이러는지도 알겠어."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에너지 음료를 건네는 민차장.
"마셔. 투플러스 원이라 너랑 정현이 주려고 챙긴 거니까"
계속 인사해 대느라 목이 마르던 참이라 건네받은 음료수를
한 번에 원샷해버렸지.
"다가가는 것도, 주는 것도 다 받을 준비, 맞을 준비가
돼있는 사람한테 해야 되는 거야."
민차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것 같았어. 하지만 중요한 거는
"그 사람들이 언제 준비가 다될지 모르잖아요.
그럼 전 계속 기다리고만 있어야 되는데요?"
"맞아, 그런 경우는 답답하지. 엘베 왔다 안타?"
시계를 보니 근무시간까지 15분 정도 남았길래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어. 문이 닫힐 때까지
멍하니 정면을 주시하던 민차장. 문이 닫히자
조용히 입을 열었어.
"나.."
"네?
"크큭.. 너무 자연스럽지 않았니?"
"네? 무슨?"
"너 음료수 준 것도, 엘리베이터 태운 것도. 니가
그냥 가자했으면 그냥 갔을 것 같아?
안 돼요~ 해야 돼요~ 하면서 거부했겠지?"
"아.."
"그런 거야.. 자연스럽게 가야 돼... 너는 지금 너무
티 나. 나 잘못했으니까 나도 아니까 한 번만 봐주세요.
근데 사람들은 그렇게 나오면 오히려 더 거부감을
느끼더라고.."
민차장의 말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어.
아빠는 어떻게든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조급한 마음에 사람들에게 억지로 손을 내밀었고
사람들은 그런 아빠가 이상하게 보였던 거야.
아빠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말이지.
"하나씩 천천히. 인사는 좋아. 그런데 이렇게
한 놈만 와봐라 내가 평생 기억에 남을 격한 인생 인사
박아준다. 이런 인사 말고..."
"제가 그렇게 까지는.."
"아니야 너 눈빛이 그랬어. 아무튼.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담배 피우러 가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건네는
인사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보는데?"
"아.."
어느덧 도착한 사무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방금 전 엘리베이터에서 화기애애했던 말투와 표정은
어디 가고 다시 사무적인 모습으로 바뀌는 민차장이었어.
"그럼. 수고해요."
"네! 수고하세요!"
그날은 하루종일 민차장의 말에 머리가 복잡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아 하루 종일 어리버리하게
행동했던 것 같아. 그때나 지금이나 아빠가
한 번에 두 가지 일은 못해 그치?
"다녀왔어.... 어?"
"섰다! 자 한걸음 한걸음!"
문을 열자마자 바라본 곳엔 제 딴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부들거리며 서있는 너, 그리고 두근거리는 소리가
밖에까지 튀어나오는지 모르고 혹시나 네가 넘어질까
네 양옆에 손을 살짝 데고는 재촉하는 엄마.
(쿵)
"으캬캬캬캬캬"
하지만 그 기대는 네가 쓰러짐으로써 금방 무너져버렸지.
"천천히 하래더라~ 천천히 시켜봐~ 언젠간 걷겠지."
"응 누가?"
아침에 민차장의 말이 생각난 아빠. 고개를 젓고는
엄마에게 말을 건넸어
"아니 뭐.. 그냥~"
"자~ 한 번만 더해보자. 걷자 걷자! 우리 아들 걷자 짠!"
"아휴.. 천천히 하라니까.."
방금 전 넘어졌을 때의 미친 웃음소리와 얼굴의 웃음기는
사라지고 응가를 하는 듯한 뭔가 집중하는 표정을 보이던 너.
-탁-
한 발짝 내민 걸음.
"오!"
"와!"
-탁 탁 탁 -
그리고 이어서 연달아 내디딘 세 번의 발걸음.
"봤어? 봤냐고!"
"어 봤어! 봤다고!"
"어? 근데 아저씨 왜 울어?"
"누가 울어.."
세상에 처음 내디딘 너의 발걸음. 그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고통이었고, 얼마나 많은 시도가 필요했을지.
그게 마치 아빠의 지금 모습 같아서. 아빠에게 건네는
너도 할 수 있다는 격려 같아서 그날 그렇게 눈물이 흐르더라.
"아닌데 아저씨 우는데..?"
"울긴.. 이제 걸으니까 한 입만 먹어도 되지..?"
"미쳤어 진짜!"
한동안 그치지 않았던 것 같아.
그렇게 흘린 눈물은 말야.
"므아? 므아아? 으캬캬캬캬캬"
언제 넘어졌는지 바닥에 누운 너는
그런 아빠를 보며 놀리는 건지 웃고 있었지만 말이지.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아빠가 넘어지는 걸 덜 무서워하게 된 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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