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49. 아빠는 아빠가 되고 싶었단다
----------------------------------------------------------------------
매주 월요일 브런치와 네이버 챌린지에서 연재 중 이에요
더 많은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어요.
★ 브런치
https://brunch.co.kr/brunchbook/ddolly02
★ 브런치 시즌2
https://brunch.co.kr/brunchbook/dorry2
★ 네이버 웹소설 챌린지
https://novel.naver.com/challenge/list?novelId=1193768
많은 관심 부탁 드려요^^
----------------------------------------------------------------------
49. 네 잘못이 아니야
'대박.. 이걸 해내네..'
그 후로 또 몇 달이 지났을까. 여전히 싸늘한 직원들의
시선도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을때 쯤 이었던것 같아.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던 아침 출근하자마자 아빠눈에
들어온 건 인사이동 공고였어.
맞아. 팀장님의 예언대로. 아빠는 부서이동을
하게 된 거였지.
"도리가 못난 형들 때문에 고생 많았다."
"아니에요.. 제가 모자라서.."
아쉬운 듯 손을 내밀며 악수를 건네는 기현이 형.
씁쓸하면서도 살짝 내비치는 미소에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바로 옆부서로 옮겨가는 것임에도
아쉬움이 남더라고.
"도리. 이 새끼 형 놔두고 어디가?
너가 가버려서 이 짬에 아직도 막내잖아 인마!"
"혀엉! 같은 막내끼리 왜 이래요~"
"이.. 이 새끼가?"
투닥거리며 아쉬움을 표출하는 경태형. 그리고..
"야! 안 가냐? 짐을 뭘 하루 종일 챙겨? 피난 가냐고"
"지금 갑니다."
"뭘 스무 걸음도 안 되는 곳으로 가면서 해외파견 가는
새X마냥 난리들이야. 야! 빨리빨리 하고 꺼져
우리 할 일 많아."
김 과장의 성질에 많진 않지만 아빠짐을 박스에 담아
안고는 새로운 자리로 발길을 옮겼지.
"여기가 이제 내자... 으악! 깜짝야,. 너 뭐 해?"
아빠 책상밑에 쪼그리고 들어가 앉아 뭔가를 하고 있던
정현이. 고개만 삐죽 내민 상태로 웃으며 아빠에게
말을 이었지.
"컴퓨터 설치랑 선 좀 빼는 거라고. 헤헤~ 그리고 야라니!
이제 내가 니 사수라고! 앞으로 잘해. 어려운 거 있으면
누나한태 얘기하구!"
"뭐.. 나도 회사에서는 선배님..이라고 불러야 되나.."
"뭐 그 정돈 내가 봐줄게 내가 생각보다 유도리.. 악!"
언제 오셨는지 여전히 쭈그리고 앉아 신나게 떠드는
정현이의 머리를 살짝 콩 쥐어박는 팀장님이었지.
"요이요이 단무지 새끼는 왜 여기 들어가서 재잘거려?
도리. 정리는 잘 돼 가냐?"
"네 이 짐만 풀면 됩니다. "
"짐도 짐인데.."
살짝 말끝을 흐리는 팀장님. 잠시 머뭇 거리더니
약간은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어.
"마음 정리 말야 인마. 기존의 팀에서 벗어나 새로운
팀 팀원으로 그리고..."
정신없이 책상밑에서 줄정리를 하는 정현이를
한번 스윽 보시더니 아빠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던 팀장님.
"김세찬이. 정리말야."
"아..."
"아~는.. 인마! 내가 전에 헛소리 한건줄 알아?
봐라 너 부서 옮겼냐 안 옮겼냐?"
"옮겼습니다."
"그럼 그다음은 내가 못할 것 같냐?"
"할 것 같습니다."
"그래. 필요한 사람들만 모아서 같이 가면 되는 거야.
괜히 가기 싫은 사람, 같이 못 갈 사람마저 챙기면서
가면 모두가 낙오하는 거야. 그냥 다 같이 뒤지는 거라고.
미안한 마음 가질 필요 없는 거야. 사회는 냉정한 거다?"
아빠가 잊고 있었지. 팀장님은 냉정한 사람이라는 거.
그리고 일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할 사람이란 거 말야.
"부장님 뭐 하세요? 도리? 앞으로 잘해보자?"
머그컵을 들고 나타난 민차장. 여전히 사무적인 태도로
말을 건네더라고. 너무 익숙해져서 의아하거나
서운하지도 않았어.
"넌 또 왜 자꾸 부장이라고 부르냐? 난 팀장이 좋다니까?"
"남들은 부장 못 달아서 난린데.. 참 어지간하셔요? 몇 년 동안?"
"뭐 인마. 대외적으로 내 직책이 뭐냐? 팀장이잖아?
그리고 팀장이어야 뭔가 일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
부장은 그냥 지시만 하는 뒷방늙은이 같잖냐? 난 싫어"
팀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점점 아빠의 생각은
명확해졌지.
'아.. 일에 있어선 진심인 사람이구나. 믿고 따를 수
있겠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더라구.
'내가 필요 없어지면 언제 어떻게 버려질지 모르겠네..'
그건 하나의 두려움이자 공포였지. 사람일이란 게
그렇잖니? 지금이야 내가 팀장님일을 잘 도와주니까
챙겨준다지만. 언제까지 아빠가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가져다 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말야..
"오늘 저녁 다들 뭐 하냐? 도리도 왔는데 법카 한번 긁자!"
"오! (쾅) 악! 팀장님 저는 소고기요! 투플 소고기이!"
법카 긁자는 소리에 신나서 벌떡 일어나다가
책상에 머리를 부딪히는 정현이.
그런 정현이의 모습에 모두들 폭소를 터트리며 웃고
말았어.
단,
그때 아빠는 얼굴만 웃고 있었을 뿐. 마음까지
웃진 못했던 것 같아.
그날 회식?
개판이었지... 진짜 사람들이 이렇게 까지 미친 사람들처럼
놀 수 있나 싶을 정도였어.
개발 1팀에 있을 때보다 인원수도 배로 많아서
시끌시끌 한대다. 다들 영업 위주라 그런가 술도
잘 마시더라고.
"3차~ 3차! 부장님 봤어요? 오다 보니까
저쪽에 못 보던 바 있던데?"
"야~ 여직원도 있는데 무슨 바여? 맥주나 한잔 더 하자"
"... 내일 출근들 안 해?"
보다 못한 민차장이 한마디 건네자. 서로를 한 번씩
쳐다보는 것 같더니. 크게 웃던 부서 사람들과 팀장님.
"우리가 언제 그런 거 신경 쓰고 마셨냐? 안되면
8시에 딱 막잔하고 회사로 출근하면 되지"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웃으면서도 딱 잘라 말하는
팀장님. 부서사람들의 너무 정신없고 미친 텐션에
지쳐갈 때쯤이었어.
"도리야 뭐 먹고 싶냐? 어디 갈까? 오늘 인마 니가 주인공이야
니 환영식이잖냐?"
"아.. 저 이미 많이 먹어서.."
"그래? 그럼 우리 간단하게 육회 먹으러 갈까?
육회에 소주 일 잔 어떠냐?"
"그게.. 간단한 거.. 맞나요.."
"이새끼 이거... 야 김세찬이는 이렇게 안 하냐?
걔 아직도 회식하면 그냥 싸구려 고깃집 가서
기분내고 영수증 처리도 안 하고 그러냐?
그 새끼 현금으로 회식비 받아가는 거 그럴려고 하는 거
정말 우리가 모르는 줄 아나? "
아빠에게 어깨동무한 채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
팀장님. 화들짝 놀라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팀장님에 불을 붙여줬지.
깊게 담배연기를 들이마시고는 후 내뿜는 팀장님.
여전히 신나 보이는 표정을 하고 계셨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날카로운 눈빛과 분위기를
느꼈던 것 같아.
"사회생활 잘한단 소리야. 챙길 수 있는 건 챙겨야지.
그 새끼 지일도 막 남한테 넘겨주고 그러잖아?
맞아. 너도 많이 당하지 않았었냐? 야근하면서
일도 안 하고 뭐 하더냐? 영화? 게임?"
"..."
"이 새끼 이거.. 야 너 아직도 김세찬이 밑인 줄 알아?
너 인마 우리 부서야. 다 말해도 돼 이제. 김세찬이가 어?
어떻게 괴롭혔냐?"
"괴롭힌 적 없습니다."
아빠의 한마디에 잠시 멈칫하던 팀장님.
그렇게 1분 같은 3초 정도 흘렀을까?
웃으면서 아빠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잇는 팀장님이었지.
"새끼. 너 의리 있구나? 그래 이게 사회생활이지.
잘하고 있네. 근데 말이다."
다시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는 팀장님.
"의리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는 거다. 너만 알고 있어.
김세찬이 이번 달 안에 내보낼 거야."
김 과장이 회사에서 쫓겨난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상황이라 아무 느낌 없었던 것
같아.
'에이 사람이 그렇게 쉽게 잘리겠어? 근속연수도
긴 걸로 알고 있는데?'
나름의 논리도 있었고 말이야.
단순히 화가 나서 하는 소리겠지, 여느 술자리처럼
그냥 한번 해본, 딱 그 정도로만 생각했던 거지.
하지만 말야.
/////////////////////////////////////////
징계 위원회 회부 공고
ㅇㅇㅇㅇ년 ㅇㅇ 월 ㅇㅇ 일
ㅇㅇ시 ㅇㅇ분 직원회의실
개발 1팀 김세찬 과장
- 사유 -
ㅇ 근무태만
ㅇ 횡령
ㅇ 직장 내 괴롭힘
/////////////////////////////////////////
다음날 공고문 앞에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어.
몇 번을 읽어봐도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체감이 안 되는 건 말할 것 도 없고.
'너만 알고 있어.
김세찬이 이번 달 안에 내보낼 거야.'
어제 팀장님이 했던 말이 단순히 술에 취해서,
분위기에 취해서 한말이 아닌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정도로 남모르게 천천히 그리고 치밀하게
준비되었단 사실이 아빠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지.
대기발령.
늘 그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게임에 빠져있던 김 과장.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의 자리는 비어 있었어. 마치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아빠는 바로 흡연실로 향했어.
왠지 모를 불안감과 두려움에 손을 덜덜 떨면서
담배를 꺼내는데 살짝 덜 닫힌 흡연실 문 사이로
대화소리가 들려왔어.
"거봐 도리가 신고한 거라니까?"
"에이 설마? 도리가 당한 게 많다지만 그 착한 애가?"
"착하기는? 김 과장 밟은 게 누구야? 도리야.
그리고, 최근에 괴롭힘 당하고, 근무 안 하고, 횡령? 이건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거 제일 옆에서 본 애가 누구야?
도리라니까?"
'아.. 진짜 알지도 못하면서...'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속을 긁어놓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 못해 일부러 흡연실문을 크게 열며 밖으로 향했어.
나 여깄다, 말 좀 가려서 해라, 다 듣고 있다.라고 티를
내고 싶었음에도 직접 말로 할 용기는 없어서 말이지.
"도리? 좋은 아침~ 안에 있었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직원.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게 그 상황에서 아빠가 내뱉은 너무도 비겁하고
초라한 아빠의 변명이었던 거야.
며칠 후.
징계위원회가 열리던 날.
아침에 회사 주차장에서 내리는데 멀리 김 과장이
보이는 거지.
'아는 척을 할까.. 어떡하지..?'
뒤에서 고민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느껴졌던 걸까?
갑자기 뒤를 돌아보는 김 과장.
아빠를 보더니 천천히 아빠에게로 다가오는 거야.
무표정으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랬는데.."
"..."
"니가 결국 나를 기어나가게 만들었네?'
"과장님.. 그게 아니고.."
"뭐 상관없어. 이딴 쓰레기 같은 회사에 나도 더 있고 싶지
않으니까. 근데 말이다. 내가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하나 있거든?"
"무슨.."
"형이 마지막으로 해주는 말이니까 잘 들어.
다 너 걱정돼서 하는 애정 어린 조언이니까."
비아냥대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아빠 귀에 귓속말을
하듯이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말하는 김 과장.
"지금처럼. 이 회사에 개로 평생을 충성해.
자존심도 뭣도 없는 개처럼. 평생."
그 말만 남기고 김 과장은 뒤도 안 보고
자리를 떠났어.
한 대 맞은 것도, 그렇다고 심한 욕을 먹은 것도,
엄청난 못된 짓을 당한 것도 아닌데.
한동아 아빠는 고인 눈물에 사물이 번져 보여
한걸음조차 내딛을 수가 없었어.
"뭐 봐? 거기 뭐 있어?"
얼마나 서있었을까? 눈물을 떨구지도, 삼키지도 못한 채
서있는 아빠를 보며 말을 건네는 정현이.
"뭐 보냐고... 아... 어..."
아빠의 얼굴을 본 정현이는 할 말을 찾는 것처럼 보였지.
"흐아암.. 하품했어."
"너.. 조울증 뭐 이런 거 아니지? 막 갑자기 이유 없이 슬프고
기쁘고 막 그래?"
"하품했다고~"
김 과장 때문에 울뻔했다고 말하기엔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하품이라고 핑계를 대봤지만 믿질 않았지.
"김 과장 그 인간 왔나? 못 봤지? 어? 차는 있네?"
검지손가락으로 주차돼있는 김 과장의 차를
가리키며 묻는 정현이.
"해고겠지?"
"응?"
"하아.. 당연히 해고겠지?"
"음.. 아마도? 연루된 게 너무 많아~ 근데 웬 걱정?
너 김 과장 싫어하지 않았어?"
"하아.. 잘살고 있던 사람 괜히...
그냥 다 나 때문인 것 같아서.."
울컥하는 느낌을 억누르며 억지로 내뱉은 말.
그런 아빠를 바라보던 정현이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안다는 눈빛으로 아빠를 쳐다보고
있었어.
"도리야.. 근데.. 그거 네 잘 못 아니야.. "
아빠를 위로하던 정현이. 정현이가 더 해준말은 없었어.
그런데 말야. 고작 그 한마디가, 네 잘 못 아니라는
그 한마디가 아빠를 오열하게 만들었어.
그 후로 김 과장을 볼순 없었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말이지.
그때,
공고문을 확인하던 그때,
징계위원회가 열리던 날 회의실로 들어가던 그때,
박스에 개인짐을 정리해 넣으며 수년간의 근무기간을
정리하던 그때.
그 순간에 김 과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정말로 아빠 원망을 하고 있었을까..?
혹여라도 만나게 되면 꼭 물어보고 싶은데 말이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