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아빠는 아빠가 되고 싶었단다

ㅇㅂ(135.121)· 2026.07.13 13:59· 조회 0
---------------------------------------------------------------------- 매주 월요일 브런치와 네이버 챌린지에서 연재 중 이에요 더 많은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어요. ★ 브런치 https://brunch.co.kr/brunchbook/ddolly02 ★ 브런치 시즌2 https://brunch.co.kr/brunchbook/dorry2 ★ 네이버 웹소설 챌린지 https://novel.naver.com/challenge/list?novelId=1193768 많은 관심 부탁 드려요^^ ---------------------------------------------------------------------- 47. 모둠초밥 예상치도 못한 김 과장의 고함소리에 들고 있던 담뱃갑을 툭 떨구고 시선은 김 과장에 천천히 향했어. "네..?" 화를 참고 있는 듯 씩씩거리는 김 과장. 뭔가 끌어 오르는 걸 억누르듯이 눈을 질끈 감고는 다시 뜨며 한층 낮은, 그러나 조금 더 무게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지. "집에가라고." "저.. 아까 시키신 일이.." "야! 따라 나와 봐" 쾅 소리를 내며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향하는 김 과장. 그를 따라간 곳은 흡연실이었어. 아빠가 따라 들어가자 김 과장은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지. "야!" "네?" "야! 이 개XX야!" "..." "이제 대답도 안 하냐? 상사가 부르는데? 너 잘 나간다?" 다짜고짜 화만 내는 김 과장.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반응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그냥 하얘지면서 손톱만 매만지는 아빠에게 김 과장은 손끝으로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지. "어? 너 잘 나간다고. 이 새X가 이쁘다 이쁘다 하니까 상사고 뭐고 없어?" "제가 잘못한 거라도.." "잘못한 거? 참나 몰라서 묻냐? 멍청한 거냐? 멍청한 척하는 거냐?" 무거운 분위기에 숨을 쉬기조차 버거워지던 순간. 문득 몇 분 전 팀장님과의 일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제가.. 꼰지른거 아닙니다." 아빠의 대답에 한숨을 팍 쉬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김 과장. "꼰지른거 아니다? 이 새X봐라? 회사에 니 얘기 도는 거 못 들었냐? 귀가 없어?" "어떤..." "어떠언? 이 새X 이거 뻔뻔하기까지 하네?" 분위기는 점점 더 험악해지고 있었지만 김 과장의 비꼬는 듯 한 말투와 행동에 살짝 반감이 생겼던 걸까? "말씀을 해주셔야 설명이던 시정이던 하지 않겠습니까?" "시정? 니가? 야! 헛소리 말고 그럼 설명해 봐. 꼰지른게 아닌데 팀장님이 왜 갑자기 나한테 지X이냐?" "그건..." "말을 못 하시겠지. 내가 너 같은 뒤에서 호박씨 까는 새X들 한두 번 본 줄 알아?"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그랬냐고? 아빠가 살아보니까 말야. 뭔가를 확실하게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말을 해도 받아들이질 않더라. 어떤 말을 해도 의심하고, 이유를 설명해도 그 안에 있지도 않은 거짓을 만들어서라도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역시 넌 내 생각대로 라고 판단을 내려버리더라고.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어. 김 과장은 이미 나와 대화할 생각이 없어 보였거든. "대답 안 하냐?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아닙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X가 팀장님이 오냐오냐 하니까 뭐라도 된 거 같지? 이 중에서 너만큼 하는 사람 없을 것 같아?" "..." 도대체 이 애기를 왜 계속 듣고 있어야 하는지. 왜 자꾸 말이 삼천포로 빠지는지.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지. 처음에 두려움은 사라져 가고 그 자릴 점점 불만과 짜증으로 채워져갈때였어. "김 과장? 퇴근 안 해?" "아.. 차장님.. 도리. 애 업무 좀 알려주느라." 퇴근하던 민차장이 김 과장에게 말을 건넸지. "일을 제대로 안 하는구나? 저땐 다 혼나면서 하는 거지. 김 과장 능력 있는 사람이니까 하나도 허투루 듣지 말고 잘 배워. 그럼 수고해~" '어? 어?' 이상했어. 회사에서 그렇게 친한척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같이 술도 먹고 얘기도 많이 나누고.. 당연히 내편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김 과장 편을 들어주는 것 같았으니 말이야. "들었냐? 니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너는 신입이야. 어딜 비비려고 들어!" "네..." 전보다 화가 풀린 것 같은 목소리와 갑자기 바뀌어버린 분위기에 고개를 들어 바라본 김 과장의 얼굴은 표정까지도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어. "너는 자꾸 억울해만 하는 것 같은데. 오늘 집 가서 생각해 봐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겠냐? 회사에 네 이야기 도는 게 우연 같아?" 갑자기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을 잇는 김 과장 "새끼야 형들이 인마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같이 가야 될 거 아니냐 우리. 어?" '아...' 어깨를 몇 번 더 두드리고는 자리를 뜨는 김 과장. 그때 생각했지. '이 사람 참 단순하구나..' 그리고 '민차장 대단한 사람이네..' 김 과장이 떠나고 나서 의자에 앉아 아직 끄지 못한 모니터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어. '진짜 퇴근해?' '말만 그런 거 아냐? 진짜 퇴근하면 또 뭐라 하는 거 아냐?' '아씨.. 어쩌라고! 확실하게 말해주고 가야 할거 아냐!' '일단 담배나 하나...' 아까 떨어뜨린 담배를 주워 들고 모두가 퇴근한 불 꺼진 사무실을 나와 흡연실로 향했어. '괜히 팀장님 때문에 오해만 쌓여...' "이제 오는가.." "뭐.. 뭐야!" 아무 생각 없이 흡연실 문을 여는데 퇴근 시간부터 언제 올지모를 나를 계속 기다린 건지 상당히 지쳐 보이는 모습의 정현이가 흡연실안에서 불쑥 나타나 말을 걸었어. "흐아.. 잠깐만.. 담배냄새.. 토할 것 같아.. 왜 이렇게 늦게 와.." 십 년은 늙어 보이는 정현이. 그때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어. "그러게 밖에서 기다리면 되지 굳이 여기서?" "차장님.." 민차장이었지. 민차장과 정현이를 보니 설움이 복받친 건지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게 진짜 툭 건들면 눈물이 나올 것 같더라. "여기선 좀 그렇고. 시간 어때?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 초밥 좋아하니? 정현아 어... 때..?" "우욱 좋아.. 우욱.." 벽을 잡고 헛구역질을 하는 정현이.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기던지. 그제서야 아빠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지더라. 엄마에겐 이미 야근한다고 말해둔 터라 별다른 연락 없이 민차장과 정현이를 따라 회사 근처 조그만 일식 선술집으로 발길을 옮겼지. "자! 받아 내가 잊어버릴까 봐 먼저 줄게." "어? 이게 무슨.." 만 원짜리 두장을 내미는 민차장. 이건 또 웬 돈인가 싶어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민차장은 별거 아니란듯한 표정으로 내 앞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어. "원래 술 먹자고 한 사람이 대리비 내는 거 아니니? 다른 사람 시간을 빌리는 건데 보답은 해야지." "아 그래도 이건.." 내 앞에 놓여진 2만 원을 집어 들어 민차장에게 다시 내미려는 그때. 내손에서 돈을 휙 뺏어 내주머니에 넣는 정현이었지. "무슨 경우야. 어른이 주시는데.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당황해하는 날 보며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웃어대는 민차장과 정현이. 때마침 주문해 두었던 소주가 나오자 잔을 한데 모아 소주를 따르고는 각자 손에 쥐어 주는 거지. "자자~ 짠하자~ 짠! 도리 인생이 짠하고 짠내 나서 짠을 안 할 수가 없다 짠!" "자.. 잠깐 뭐가 미묘하게 바뀐 거 같은데?" "헤헤 티 났어? 생각보다 눈치가 좋은데?" 다시 배를 잡고는 숨넘어갈 듯이 웃는 정현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건배한 소주잔을 살짝 입에 갖다 대던 민차장은 가볍게 소주를 넘기고는 말을 이었어. "나 참치 초밥은 별로던데 정현이 너 먹을래?" "어우.. 언니 나도 참치는 비려서 싫어." "그래? 도리는 어때?" 시선을 돌려 아빠를 바라보며 묻는 민차장. "저는 다 잘 먹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아빠의 접시에 참치초밥을 옮겨 담는 민차장. 그녀의 시선은 젓가락 끝에 고정된 체 지나가는 말투로 조용히 얘기하기 시작했어. "모둠 초밥이 여러 명이 먹기엔 참 좋아? 열개에서 열두 개 정도로 양도 적당하고.." 젓가락을 테이블에 살짝 내려놓으며 이번엔 소주병을 들어 올리는 민차장. 아직은 어려운 민차장이기에 두 손으로 공손히 내민 소주잔에 잔을 채워주기 시작했지. "싫어하는 생선, 좋아하는 생선. 서로 나눠 먹을 수 도 있고. 정현이 계란 초밥 좋아하지? 광어랑 바꿀래?" "응! 광어 다 가져가도 돼!" "다는 너무 많아.." 계란 초밥 좋아한단 말에 내 것도 줄까 해서 접시에 있는 계란 초밥을 건네려 들어 올리는데 손사래를 치는 정현이. "고마운데 나 소식 중이라.." "그러기엔 저번에 감자탕 너무 잘 먹던데.." "무슨! 뼈라 실제로 양이 얼마 안된다구!" 정현이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한바탕 웃던 우리들. 웃음소리가 잦아들 때쯤 민차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어. "사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광어, 새우, 계란 각각 다른 생선들이 모여있는 게 사회라는 공간인데." 소주잔을 내미는 민차장. 아무 말 없이 우리는 잔을 부딪히곤 소주를 넘겼어. "하~ 좋다!" 시원한 소리를 내는 민차장. "이 중 하나가 너무 맛있다고, 사람들이 너무 찾는다고 해서 그 초밥의 갯수를 늘려버리면 모둠초밥이라는 사회가 깨져버려. 그 정체성이 없어지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듯 말 듯. 어려우면서도 이해가 될듯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민차장. "무슨 뜻인지 알겠니?" '좀 쉽게 얘기해주지..' 라는 불만도 있었지만. 이 또한 나를 위한 것임을 알기에 딱히 티를 낼 순 없었어. "제가 머리가 나빠서... " 아빠의 반응에 또 한 번 살짝 웃는 민차장. "회사엔 말이야. 정말 많은 사람이 모여있어. 개발 잘하는 사람, 영업 잘하는 사람, 고객응대 잘하는 사람, 디자인 잘하는 사람..." "모둠 초밥처럼요?" "응 맞아. 하나하나만 두고 보더라도 참 매력적인데. 각각의 능력이 모여서 더 큰 매력을 발휘하는 것 같아. " "언니 난 어떤 사람인데?" "넌 귀여운 사람이지~" 정현이를 바라보며 귀엽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는 민차장. "네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초밥인 건 알겠어. 특히 마케팅팀장이 말야. 문제는 네가 아니야. 팀장이라는 셰프가 지금 도리라는 초밥만 계속 만들고 있어서. 다른 초밥들이 불만이 많다는 거지."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요?" 물을 따르고 있던 민차장. 아빠의 질문에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마저 따르고는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신뒤 이야기는 계속 됐어. "잘못한 게 있긴 하던데? 형들 일할 때 팀장하고 놀았다며?" "그건 팀장님이.." "알 것 같아. 하지만 중요한 건 네 사정이 아냐. 아무도 궁금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을 거야. 불만이 쌓인 그들은 단순히 너를 미워할 이유만 필요한 상태거든. 너는 그 상황에서 이유를 던져준 거고.."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 직원들의 시선, 그리고 김 과장의 행동들. 민차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일이 왜 이렇게까지 흘러왔는지 약간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았어. "그럼 이제 어떡해요?" "퇴사해. 그게 제일 빨라." "네?" 살짝살짝 웃으며 말을 잇더니 결국 못 참겠다는 듯이 정현이와 함께 크게 웃어버리는 민차장. "아니면..." "아니면?" "니가 보여줘야지. 난 위험한 사람이 아니다. 너와 같이 갈 사람이고, 너를 도와줄 사람이다. 이 초밥의 메인은 너다. 라고 말야." "만약 그게 안 통하면요?" 아빠의 질문에 살짝 고민하는 듯 팔짱을 끼고 아빠를 쳐다보던 민차장. "안 통하면..." 말을 할 듯 말 듯 잠시 머뭇 거리는 민차장. 테이블 위 소주잔에 혼자 소주를 채우고는 털어 넘기며 말을 이었어. "메뉴판 봐봐. 모둠초밥은 열두 개인데 특선초밥은 10개다? 뭐가 다른 거 같아?" 민차장의 말에 메뉴판을 한번 훑어봤더니 특선초밥이 오히려 갯수가 적은데 가격이 만원이나 비싼 거야. "어.. 진짜요? 아~ 여긴 광어뱃살 초밥이 들어가고 계란 초밥이랑 새우 초밥이 없네요?" "광어뱃살이 더 인기 많고 비싼 건 알지?" "네.." "그거야. 대체할 수 있는, 가치를 넘어서는 초밥이 되면 자연스럽게 가치가 떨어지는 초밥은 접시에서 내려가게 되지 않겠어?" "아.. 제가 감히.. 어떻게.." "응? 뭐야? 알아들은 거야? 생각보다 똑똑하네?" 민차장의 이야기는 아빠의 상황을 명확하게 해석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은 더 복잡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지. 잠시 말없이 멍하니 있던 아빠를 말없이 기다려주던 민차장. "심각할게 뭐야? 네가 되고 싶은, 네가 될 수 있는 초밥이 되면 되는 거지. 그리고..." 아빠의 잔에 소주를 채워주는 민차장. "그리고 아직은 초밥이 되는 과정부터 배워야 하는 신입이잖아? 이런 걱정하는 거 자체가. 건방진 거야." 순간 경태형의 말이 생각났어. '건방진 놈...' 경태형의 건방지다는 말은 단순히 선배를 위험하게 만든 게 건방지다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아무런 변명도, 행동도 하지 않고 그냥 흘러가게, 뭐라도 되겠지라며 안일한 생각으로 방관만 하고 있던 내 모습 자체를 이야기한 게 아닌가 싶더라고. "언니.. 도리야.. 너무 무거워.. 우리 좀 천진난만하게 주(酒)님을 영접할 필요가 있어.. 이거 신성모독이야.." 정현이의 농담 섞인 말과 행동에 크게 웃으며 화제가 전환되었고. 여느 술자리처럼 일상 이야기, 사는 이야기 등으로 채워가며 흘러가고 있었어. 정말 힘든 하루였지.. 하지만 재밌는 게 뭔지 아니? 힘든 일은 항상 한 번에 몰려온단다. 이제 끝났다, 그 동안 잘 버텼다 싶을 때 더 큰 사건과 고통을 안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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