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 임시반장직에서 내려왔던 썰

ㄷㄹㅎ(188.228)· 2026.07.29 00:31· 조회 240
내일 아침일찍 이사가는데 어제 술먹고 바로 뻗어서 짐 하나도 못정리한 죄인입니다. 새벽에 전쟁난듯 일어나 부랴부랴 짐정리하고있는데, 본격적으로 일 시작하기전에 배가 너무 고파서 짜파게티 두 봉 끓여 먹으면서 씁니다.. (빠른 진행을 위해 음슴체 씀) 어릴 때부터 일기 쓰는 습관이 있어서 초등학교 때부터 썼던 일기장들을 중학생, 고등학생이 될 때마다 두껍고 튼튼한 상자에다가 정리해 둠. 짐 정리하다가 갑자기 센치해져서 (사실은 속 쓰려 죽겠는데 이 새벽에 짐 정리하고 있는 내가 한심해서ㅋㅋ) '중학생 김OO'이라고 적힌 상자에서 일기장을 좀 뒤져봄. 과거의 나는 어떤 인간이었나, 이토록 한심해진 건 언제부터였는가. 뭐 이런 마음을 가지고 별생각 없이ㅋㅋㅋ ​근데, 중학생 때 썼던 일기장 사이에 종이 한 장이 툭 튀어나와있는 거임. 쓰다 울었는지 잉크도 번져있고 왜 안 버리고 넣어둔 건지 의아한 마음이 들어서, 별생각 없이 앉아서 읽어봄. 근데 그게 내가 중3 때 새학기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쓴 글이더라. ​때는 바야흐로 내가 중3이 되던 2005년 3월이었음. 나는 새학기 첫날부터 어영부영 임시반장직을 맡게 됐었음. 우리 반 담임이 될 뻔했던 선생님이 그날 아침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젊은 여자쌤이 임시 담임으로 와가지고 반 분위기가 완전 어수선했었거든. (그래서 정식 담임쌤 올 때까지 계속 좀 붕 뜬 상태였음) 첫 날 반이 너무 어수선하니까 지나가던 교감쌤이 복도 창가에 앉아있던 나한테 임시반장직을 줘버림. 뭐 반박할 새도 없이 "너가 32번이야? (명찰 봄) 일단 반장하자, 다들 동의하지?" 하고, 애들도 아무 생각 없이 "네~" 해서 3초 만에 결판남ㅡㅡ ​담임쌤이 새로 정해진 건 새학기 시작하고 한 달 반이나 지난 뒤였는데, 나는 임시반장직을 한 3주도 못 채웠던 것 같음. 왜냐면 내가 중도 포기 선언을 했거든ㅋㅋ 그때 내가 애들 앞에서 임시반장 그만하겠다면서 발표한 게 있는데, 그때 쓴 글이었음. 문장 말미만 좀 다듬어서 거의 그대로 올림. ​[중3 시절 내가 쓴 발표문] ​저는 오늘 임시반장직을 내려놓으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아무 말 없이 자연스럽게 지나가도 될 일이지만, 그동안 부족했던 저를 반장이라고 그래도 잘 따라주었던 반 친구들에게 끝까지 예의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짧게나마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생각을 정리할 겨를이 없어 말이 경황이 없고 부족해도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3월 2일, 저는 32번이라는 별거 아닌 이유로 입학 첫날부터 지금까지 임시반장직을 맡아왔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싫지도, 좋지도 않았습니다. 귀찮을 것 같기도 하고, 제게는 너무 낯선 역할이라 겉으로는 싫은 마음을 내비쳤으나 사실 조금은 들떴던 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단 몇 주간 제가 임시반장직을 맡으며 느꼈던 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반이 주어진 과제를 잘 해내지 못할 때나, 정돈되지 못한 모습으로 있을 때마다 그 상황이 전부 제 탓인 것 같아 갈수록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공지를 전하거나 자율학습을 감독할 때는 더더욱 적당한 방법을 몰라 친구들에게 많이 날카롭게 굴기도 했습니다. 유독 그런 날은 하교 길에서 후회가 밀려왔고, 마음 상한 친구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말들에 저 또한 속이 상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본의 아니게 임시반장직을 맡게 되었을 때, 검증되지 않은 저를 그때의 저만큼이나 가벼운 마음으로 동의했던 친구들을 조금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그 누구만의 잘못만은 아니란 것을 잘 압니다. 저는 경험이 없었고, 부담감과 책임감에 허둥댄 것이 맞으며, 고로 임시반장직을 모두가 만족할 만큼 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어울리지 않은 감투를 쓰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무례하게 반응했던 점을 이 자리를 빌려 꼭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단 몇 주간이었지만 반장이라는 자리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섰던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합니다. 그동안 친구들에게 향했던 무례한 언행들을 다시 한번 사과합니다. ​견디고 버틸 필요 없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임시 반장직이라 다행이었습니다. 다음 정식으로 반장이 되는 친구는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늘 응원하겠습니다. 끝까지 얘기 들어주어서 감사합니다. ​ㅋㅋㅋㅋ 그때는 막 내가 왜 굳이 이런 일을 맡아가지고, 새학기인데 친구도 제대로 못 사귀고 원망 듣고 있나 싶어서 좀 억울했던 것 같음. 그 와중에 그래도 끝까지 믿음직(?)해 보이고 싶었는지 이런 발표를 했던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어서 그냥 올려봄..ㅎㅎ ​이후에 반 분위기 어땠는지, 정식 반장 뽑을 때 어떻게 됐는지 궁금한 사람 있으면 후기도 올리겠음! 이제 진짜 짐 싸러 가야겠다... 하... 5시에 앉았는데 벌써 아침이네.. 다들 출근 잘해라 ㅠ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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