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열등감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몇 년째 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일이 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해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글을 씁니다.
저는 비수도권 국립대 사범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한 뒤 과학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첫 발령을 받고 만난 같은 과목의 4살 연상 선배 선생님을 정말 존경했습니다. 교사로서도, 사람으로서도 배울 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마침 그분은 제가 졸업한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고, 저도 솔직히 그분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졸업 1년 만에 같은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렇게 5~6년을 함께 보냈습니다.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고, 대학원도 같이 다니고, 방학에도 세미나를 함께 다녔습니다. 공식적으로 사귀자는 말은 없었지만 둘이 영화 보고 밥 먹고 커피 마시는 일이 자연스러웠고, 주변 사람들도 당연히 연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생겼습니다.
박사과정 회식 자리에서 지도교수님이 제 이야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은퇴하기 전에 이OO만큼은 꼭 교수를 만들고 싶다."
저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말이 그 누나에게는 엄청난 상처였다고 합니다.
그 누나는 교수가 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실적을 쌓고 있었는데, 저는 사실 대학원도 그 사람 때문에 간 것이지 교수가 목표였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그런 저를 공개적으로 치켜세웠고, 그때부터 저를 경쟁 상대로 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졸업할 무렵 저는 용기를 내 고백했습니다.
"이제 제대로 만나 보자. 결혼도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난 너랑 사귄 적도 없고, 너를 좋아한 적도 없어."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너한테 열등감이 있었어. 나는 그렇게 노력했는데 교수님은 너만 바라봤잖아. 나한테는 간절한 기회를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버렸잖아."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이후 저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평범한 교사 생활을 했고, 그 누나는 교직을 그만두고 수도권에서 시간강사를 하며 교수의 길을 걸었습니다.
몇 년 뒤 코로나가 시작됐습니다.
교육 관련 연구과제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운 좋게 후배 교수님의 제안으로 여러 연구를 함께 하게 됐습니다. 연구를 하다 보니 대학원 강의도 맡게 됐고, 논문과 연구실적도 자연스럽게 쌓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곧 교수 채용이 있는데 한번 준비해 보지 않겠냐."
8개월 동안 연구와 강의를 정리하고 공개강의를 준비했습니다. 혹시 몰라 SCI 논문도 하나 더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저는 최종적으로 교수 임용에 합격했습니다.
학교에서 동문 전체에게 임용 소식이 전달됐고, 며칠 뒤 그 누나에게 장문의 카톡이 왔습니다.
첫 문장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너를 저주한다. 너의 인생을 저주한다. 그리고 나의 인생을 저주한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랬습니다.
자신은 지난 15년 동안 늘 저와 비교당했고, 지도교수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후배인 이OO보다 못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저를 멍하게 만들었습니다.
"너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너의 존재가 내 인생을 망쳤다."
저는 그날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차단되어 있었는지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2년이 흘렀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잘 적응하며 살고 있고, 그 누나의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아직 그 사람을 미워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한때는 결혼까지 생각했던, 정말 존경했던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픕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내 존재 자체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는 사실이요.
저도 미혼이고, 그분도 아직 미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끔은 모든 오해를 풀고, 적어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 관계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연락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까 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면 한 번쯤 연락해 보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열등감으로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주는 것이 마지막 배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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