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10년
저는 원래 늘 또래보다 조금은 앞서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공부도 잘했고, 좋은 대학에 갔고, 남들보다 가방끈도 깁니다. 조금은 게으른 편이었지만 결국에는 제가 앞설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으며, 노력을 굳이 하지않아도 내가 잘 살수있다는 착각으로 30년 이상의 인생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10년 전, 미국 생활을 급히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제게 남은 돈은 700만 원이었습니다. 곁에는 아내와 네 살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소리치고 떠났던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었고, 한국에 돌아와 기다리고 있는 자리도 없었습니다. 서른 중반에 연봉 5천만원 비정규직으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 무렵 친구들은 의사, 변호사, 교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저보다 뒤쳐져있던 친구들도 대기업에서 이미 7년 넘게 돈을 벌어 10억 정도 되는 아파트를 가지고 여유 있게 살고 있었습니다.
늘 조금씩 앞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제가 한참 뒤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뒤처졌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막막하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살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성실함보다 머리를 믿는 편이었고, 미루다가 마지막에 집중해서 따라잡는 데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는 그렇게 살 수 없었습니다. 부족한 것은 시간으로 메웠고, 기회가 없으면 직접 만들었습니다. 지난 10년은 처음으로 일중독자처럼 살아본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작은 성과가 하나씩 생겼고, 그 성과가 다음 기회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어느 지점을 지나자 속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나폴레온 힐의 말처럼 부는 한번 들어오기 시작하면 물밀듯이 들어온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돈 없이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몇 년의 변화가 지난 수십 년을 모두 압축해버렸습니다. 지금은 숫자로만 보면 거짓말처럼 극상위층에 들어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확히 어느 정도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지는 부모님도, 아내도 잘 모릅니다. 굳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세히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저를 알아주기를 바랐는데, 지금은 오히려 가진 것과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 편해졌습니다.
제 자리와 주변 환경만 보고 제가 당연히 국민의힘 지지자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는 굳이 그 오해를 바로잡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직업과 재산, 직업만으로 한 사람의 생각까지 쉽게 결정합니다. 때로는 그들이 예상하는 모습 뒤에 머무는 것이 더 자유롭습니다.
저는 저를 가리는 데 익숙합니다.
그래서 배트맨이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꿈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자가 좋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자신의 힘과 생각을 모두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실제 자신 사이에 거리를 둔 채 살아가는 인물들입니다.
물론 제 삶은 소설도 아니고, 누구에게 복수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700만 원밖에 없었던 시절의 저와 지금의 저를 모두 아는 사람은 결국 저 자신뿐입니다.
가끔 그때를 생각합니다.
7년 전에야 대출을 끌어모아 5억 원도 안 되는 아파트를 처음 샀고, 5년 전이 되어서야 처음 연봉 1억 원을 넘겼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삶은 저에게도 아직 현실감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늘 남들만큼은 사는 줄 알았던 사람이 가장 뒤처졌다고 느낀 순간, 처음으로 제대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멀리 뒤처졌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제 인생의 속도가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보는 저는 제가 허락한 만큼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 정도가 지금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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