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2024년 가족이 아닌 공동거주자
2024-03-08(금) 늦게 들어오는게 너~~무 좋다는 아내
2023년 11월 19일 아내가 성가대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나 역시 주말에 일부러 외출을 하며 집에 늦게 들어오곤 했다. 어느새 4개월 정도가 흘렀고, 문득 아내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내가 요즘 늦게 들어오니까… 어때?” 그 질문에 아내는 망설임 없이,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너~~무 좋아.” 그 말이 너무 가볍고 쉽게 튀어나온 듯해서,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그간 내가 가정을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가정을 지켜오려 했는지를 전혀 이해받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내 존재가 아내에겐 불편한 사람이었나’라는 자조 섞인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냥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부담일 수 있다는 걸… 그날 다시금 느꼈다.
2024-03-11(월) 아내의 생일 선물
과거 내가 생활비를 관리할 때 본가, 처가, 누나네까지 명절과 생일날 선물이나 용돈을 챙겨드렸다. 하지만 ‘금쪽같이 내 새끼’ 촬영 후 아내에게 생활비를 이체한 다음부터 선물이나 용돈도 아내에게 맡기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챙기던 때와 달리 아내는 스스로 챙기지 않았다.
남편 : 시누에게 선물 보냄?
아내 : 무슨 선물?
남편 : 3월15일 시누 생일
아내 : 내 생일에는 뭐 안받았는데^^ 내 생일날 시댁에서 뭐하나 받은거 없어요...
남편 : 당신은 당신이 뭘 받아야 주는거야? 전에 경조사 신경쓰지 말라고 해서 미리 이야기 안했드만...그리고 선물이라는건 받을거 생각해서 주는게 아니라 선물을 줌으로써 덕을 쌓는거지. 생활비에 경조사까지 포함되어 있고 당신이 못챙기면 내가 직접 챙길거고 생활비에서 제외할 거임
아내 : 알았어 보낼께
남편 : 보네지마 내가 보낼테니
아내 : 아니 내가 보낼꺼야 생활비 깎는다며
며칠 후 누님에게 전화가 왔다. 정확한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누님은 “주기 싫은 걸 네가 시켜서 억지로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앞으로 올케에게 그런 식으로는 받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참 복잡했다. 과거엔 아무 조건 없이 챙겼던 것들인데, 지금은 내가 주체가 아니니 그런 따뜻함이나 진심이 전달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내에게 생활비를 맡기고 생긴 변화였지만, 가족 간의 정까지 영향을 받는 느낌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어디서부터 엇갈린 건지 다시 돌아보게 됐다.
2024-03-13(수) 어린이집 안가면 보육원에 가야해
이날 아침, 셋째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다. 잠옷 차림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가기 싫다고 울먹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때 아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회사 다녀야 하니까 너는 어린이집 가야 해. 어린이집 안 가면 보육원에 가야 해.”
셋째는 아직 말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지만, ‘보육원’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정서적 충격은 분명했을 것이다. 아이에게 책임을 지우며 협박처럼 들릴 수 있는 말. 그 한마디가 아이에게 어떤 감정의 흔적을 남길까, 걱정이 앞섰다.
만약 내가 개입했다면 아내의 화살은 나에게 다가왔을것이. 그래서 나 역시 곧장 개입하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말보다 행동으로, 훈육보다 사랑으로 이끌어야 할 시기에… 아이에게 전해진 메시지가 두려움이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2024-03-17(일) 밥 맛 떨어져
14:30경, 교인 두 분이 우리 집을 방문해 예배를 드렸다. 15:30경 예배가 마무리되었다. 그날 저녁 아내는 나에게 첫째 아이 머리를 감겨주라고 말했고 나는 욕실에서 첫째의 머리를 감기고 있었다. 그 사이 셋째가 사용 중인 화장실 조명을껏고 안껏다고 거짓말을해서 혼냈더니 아내가 내게 차갑게 말했다. “밥 맛 떨어져.”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아이가 거짓말을 할때 타이르고 바르게 잡아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내 행동이 못마땅했는지, 아이를 두둔하고 내 반응을 문제 삼았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한없이 작아졌고, 무력한 감정이 몰려왔다. 아이의 거짓말보다, 그 상황에서 내가 오히려 잘못한 사람처럼 몰린 현실이 더 씁쓸하게 다가왔다. 가족 안에서 옳고 그름이 사라지고, 감정이 우선시될 때 그 안에서 건강한 대화는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내 앞에서 아이를 훈육하기 싫어졌다. 아니 훈육을 하는 내가 잘못이 되었다.
2024-03-21(목) 부엌칼을 둘째에게 주며 "엄마 찔러버려"
출근 준비로 분주하던 아침. 거실 한쪽에서 첫째가 둘째를 괴롭히고 있었고, 참다 못한 둘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아내가 주방 쪽에서 격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믿기지 않는 행동을 했다.
부엌칼을 둘째 손에 쥐여주며, “짜증나니까 그냥 엄마 찔러버려!”라고 말했다. 아직 어린아이에게, 감정적으로 휘몰아친 말투로, 그것도 흉기를 손에 쥐어주며 한 말은 그 자체로 너무도 위험하고, 충격적이었다.
그 순간 느낀 감정은 분노와 깊은 슬픔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아이들의 다툼에 감정이 격해져 나온 말이라기엔, 그 말속에 담긴 아내의 분노는 너무도 깊고 날카로웠다. 나는 그날 이후로, 이 가정의 안전과 건강한 분위기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 앞에서 감정을 이기지 못해 폭언이나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건 결국 아이들의 마음에도 깊은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날 아침, 부엌칼보다 더 날카로웠던 건 아내의 그 말이었다.
2024-03-26(화) 빨간펜 1박2일 연수
빨간펜 연수를 앞두고, 아내에게 “앞으로 빨간펜 일 때문에 아이들에게 신경을 덜 쓸거라 예상하고 아내에게 당신이 아이들한테 신경 좀 더 써줬으면 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 말을 곧바로 비난으로 받아들였다. “그동안 내가 애들한테 신경 안 써준게 뭐데?”라며 날카롭게 되물었다. 나는 공격하려던 게 아니었고, 그저 앞으로 아이들을 위해 서로 역할을 잘 조율하자는 뜻이었는데, 그 의도가 무색하게 대화는 또다시 감정의 골로 빠져들었다.
그동안 아내는 아이들을 처가에 맡기거나 아니면 그냥 집에 혼자 두고 출근하기도 했다. 그에 대해 내가 아이들이 불안해하고있다고 염려했지만, 아내는 그것이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아내는 먼저 연수 장소로 출발했고, 아이들 아침은 장모님이 우리집에 오셔서 짜증을 내며 챙겨주셨다. 분위기는 싸늘했고, 아이들도 눈치를 보는 듯 어깨가 움츠러들어 있었다.
나는 다시금 느꼈다. 아내는 자신이 하고자 마음먹은 일에 대해서는, 누가 뭐라 하든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이 실행에 옮긴다. 다른 사람의 반대나 불편함은 고려 대상이 아니며, 그로 인해 누군가가 희생되거나 피해를 입는 상황이 발생해도 그것이 ‘문제’라는 인식 자체가 아내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그런 아내의 모습은, 때로는 강단 있고 추진력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가정 안에서는 조율과 협력이 어려운 사람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자꾸 상기시킨다. 아내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은 어떻게든 하는 사람이다. 남이야 반대를 하든 피해를 보든 말든 그걸 피해라고 생각을 못한다.
2024-03-27(수) 빨간펜 책 3박스 입고
퇴근 후 집에 들어섰을 때,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거실 한켠에 놓인 낯선 박스 세 개. 또 다시 빨간펜에서 책이 도착한 것이었다. 이미 집안 곳곳에는 빨간펜 책들로 채워진 박스들이 쌓여 있고, 아이들 놀 공간도, 쉬어갈 여유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책 3박스 들어온 거 알겠어. 근데 이제 그만 쌓았으면 해. 기존에 있던 책 3박스 정도는 정리해서 처분해 줬으면 좋겠어.” 단순한 요청이었지만, 말끝에서조차 피곤함이 묻어났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 줄어들지 않는 책의 양, 그리고 대화를 할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벽 같은 아내의 태도. 내 말이 또 무시될지, 아니면 불필요한 말다툼으로 번질지 걱정이 앞섰지만 더는 침묵할 수 없었다. 이 공간은 우리 모두의 집이고, 아이들의 공간이기도 하니까. 무언가를 더 들이기 전에, 있는 것을 먼저 비워야 한다는 상식이 우리 사이에선 자꾸만 예외가 되어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요즘 시대에 아이들 책을 수천권씩 집에 쌓아두는곳이 몇이나 될까?
2024-03-27(수) 아내의 거짓말(새벽기도 대신 새벽수영)
22:00경 아내와 대화하던 중 아내의 답변이 앞뒤가 맞지 않았고, 대화들 사이에서 나는 낯선 이질감을 느꼈다. 왜 거짓말을 했냐고 하니 내가 (새벽)수영 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거짓말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는 투였다.
나는 "이제 애들이 커서 새벽에 엄마를 찾지 않으니 수영을 가도 괜찮다"며 덤덤하게 속내를 전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은 관대한 말과는 달리, 아내의 거짓말로인해 가슴 한구석은 싸늘하게 식어 내려갔다.
그동안 아내는 내가 아이들을 놔두고 새벽 수영 가는걸 싫어하는걸 알면서도 계속 갔었는데 왜 갑자기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무엇을 숨기고 있는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새벽수영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정작 나를 화나게한건 아내가 나를 속였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부부 사이의 신뢰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소소한 진실들로 유지되는 것인데, 그 믿음의 기둥에 실금이 가고 있었다. 사소한 일조차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내 탓으로 돌리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우리 관계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생각보다 깊고 어둡다는 현실이 못내 씁쓸한 밤이었다. 과연 아내는 무엇을 또 숨기고 있는걸까?
2024년 3월 29일(금) 우수사원이라는 명목 아래
이 날, 아내는 빨간펜에서 우수사원으로 선정되었다며 전기그릴을 집으로 들고 들어왔다. 그 즈음, 거실 벽 한쪽에는 빨간펜에서 받은 상장 하나가 걸렸다. 상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위 사람은 2024년 3월 개척구간 TOP3 선발에서 두서와 같이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기에 이에 상장을 수여합니다. 2024년 OO월 OO일 KYOWON교원 회장 장평순"
이 문구를 바라보며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이게 정말 실적일까, 아니면 과도한 소비의 결과일까.’ 나는 빨간펜의 우수사원이라는 말이, 실은 아내가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할부로 무리하게 물건을 결제한 결과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짐작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신이 되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건 상장보다, 정작 집안 곳곳에 쌓여 있는 박스들 속 과잉 소비의 흔적들이었다. 그 전기그릴 하나가 우리 가정에 주는 온기보다, 실적을 위한 무리한 결제가 남긴 부담이 훨씬 더 무겁게 느껴졌던 날이었다.
2024-03-30(토) 빨간펜 출근
오전 9시 40분경, 아내는 아이들을 집에 남겨둔 채 빨간펜으로 출근했다. 언제부턴가 주말에도 집에 있는 일이 드물어졌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아내의 '출근'이 대신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애들은 집에 두고 빨간펜 다니면서 실적을 쌓기위해 가족을 가입시키고, 지인도 가입시키고... 그 다음엔 누구를 설득할 수 있을까? 이후 남은 건 거리로 나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직접 영업을 하는 수밖에 없는데, 과연 가능하겠어?”
아내는 “아이들을 위해 돈벌러 나가는거고 지금 이거라도 안 하면 내가 어디 가서 돈을 벌겠어. 난 계속 다닐 거야.”라며 계속 다니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실적을 향한 무모한 질주가 정작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방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아내 귀에는 내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알고있다. 가까운 사람들을 끌어들여 채운 실적은 결국 한계가 올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고있다는 것을 나는 아내가 깨닫길 바랐다. 하지만 아내는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는거 자체를 짜증스러워했고 빨간펜은 그 탈출구였다.
2024-04-05(금) 공황발작
새벽 5시, 눈을 떳을때 공황발작이 시작됐다.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두려움,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비현실감, 그리고 나 자신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무력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 모든 증상이 몇 분이면 지나간다는 걸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엔 그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숨을 쉬는 것도 버겁웠다.
발작이 지나간 후,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6시쯤 다시 잠을 청했다. 잠에서 덜 깬 채 7시 20분경 알람을 듣고 다시 일어났고, 냉장고를 열어 빵 한 조각으로 아침을 대신한 뒤 여느때처럼 8시에 출근길에 올랐다.
며칠 전, 아내는 아이들을 집에 남겨둔 채 빨간펜으로 출근했다. 그 일이 내 무의식 깊은 곳에서 불안을 틔운 듯했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지만, 잠든 사이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나를 덮쳐온다. 이런 날들이 반복될수록 내가 무너지는 소리가 점점 더 또렷하게 들리는 듯했다.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가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2024-04 어느날 막내의 질문
과거 2023년 11월 19일, 아내의 성가대 활동으로 언쟁을 한 이후부터 나는 일부러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갔다. 시간이 흘러 2024년 4월의 어느 늦은 저녁이었다. 여느 때처럼 늦은 저녁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나를 맞이한 건, 막내 아이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아빠, 새엄마는 언제 오는 거야?"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위해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질문 뒤에 숨겨진 진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느라 늦는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아빠의 부재를 '외도'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심어주고 있었던 거라 예상되었다.
당혹감을 누르며 아이의 눈을 맞추고 차분히 되물었다. "OO야, 엄마가 여기 있는데 새 엄마라니 그게 무슨 소리니?" 그리곤 막내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자기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혹은 나를 고립시키기 위해 아이들의 마음속에 거짓의 씨앗을 뿌렸을 아내를 생각하니 참담함이 밀려왔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그 아픈 질문은 내 가슴에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박혔다. 그동안 가정을 지키려 노력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나는 어느새 아이들에게 '새엄마를 데려올 사람'이 되어 있었다.
2024-04 어느날 할부결제
올해 1월부터 아내는 빨간펜을 하며 실적을 쌓기 위해 무리한 소비를 계속해왔다. 아내에게 소비 내역을 받아 정리해보니 대부분이 할부로 결제된 내역들이었다. 할부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아내에게 당부했다. "앞으로 할부 결제 하지마 할부는 미래의 돈을 미리 당겨서 쓰는거라고" 강하게 말했다.
말을 전한 바로 다음 날, 아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내게 물었다. “(애터미) 해모힘 할부로 사도 돼?" 마치 내가 어제 했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순간, 허탈했다. 말은 전해졌지만 마음엔 닿지 않았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내가 했던 말들은 아내에게 당부가 아니라 단순한 소음이었을까?
2024-04-10(수) 빨간펜에서
오전 9시 40분경,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빨간펜에 갔다. 평일 오전,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은 날이었고, 아내는 그 시간을 이용해 아이들을 데리고 본인의 일터로 함께 나간 것이다.
아내가 빨간펜에 집중하기 시작한 이후로, 아이들과 보내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 한켠이 씁쓸했다. 일과 육아 사이의 균형이 무너진 채, 아내는 자신이 하고 싶은 방향으로만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였고, 아이들은 그 안에서 조용히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도 그렇게,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자신이 있는 세계로 떠났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멀리서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2024-04-12(금) 드라마 관람
이날 이후, 아내는 본격적으로 드라마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노트북으로 보기 시작한 눈물의 여왕은 처음엔 단순한 취미처럼 보였지만, 어느새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집에 있는 시간만 나면 드라마에 몰입해 있었다.
밤 10시, 무선 공유기의 전원이 꺼지면 그제야 아내는 노트북을 닫고 조용히 침대로 향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곧 하루의 끝은 아니었다. 다시 손에 쥔 스마트폰, 그리고 익숙한 카페로 이어지는 손길. 아내는 누운 채로도 화면을 스크롤하며, 하루 동안 새로 올라온 글과 댓글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직접적으로 카페에 글을 써서 드러내진 않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내는 남들의 반응을 세심하게 관찰했고, 댓글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 모습은 어쩌면, 겉으론 담담해 보이지만 내면 어딘가에 자리한 우월감을 조용히 채워가는 방식 같기도 했다. 혹은 지금의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골라내며, 삶의 무게를 지탱하려는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도 아내는 자주 상대방의 반응에 민감해 보였다. 메시지를 보낸 후, 누가 읽었는지, 누가 무시했는지, 누가 어떤 식으로 반응했는지를 유심히 살폈다. 내가 얼마나 관심을 끄는지, 그 관심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확인하는 모습에서 나는 문득, 그것이 일종의 중독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아내의 하루는 언제나 미디어로 시작해, SNS로 마무리되곤 했다. 화면 속 세상이 아내에게는 또 하나의 현실이 되어 있었고, 그 현실은 어느새 우리 가족의 삶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2025-04-13(일) 공황발작
오전 7시 30분경, 또다시 공황발작이 찾아왔다. 이유나 전조도 없었다. 마치 잊을만하면 찾아와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고 속삭이는 것처럼 나를 괴롭혔다. 몸은 반응했지만, 마음은 따라오지 않았다.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거칠게 뛰며, 생각은 엉켜버렸다. 그 순간에는 아무리 이성적으로 '이 또한 곧 지나갈 것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려 해도 그저 무력한 나만이 있었다.
몇분이 지나고 발작은 사라졌다. 이후 8시 30분에 겨우 몸을 일으켰고, 9시 15분경엔 아무 일 없다는 듯 출근길에 나섰다. 겉모습은 평온해 보였겠지만, 속은 텅 빈 껍데기처럼 허전했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발작이 계속 반복되니 삶은 점점 불안이라는 바닥 없는 구멍 앞에서 흔들리는 것 같다. 이젠 그 발작이 또 찾아올거란 생각에 삶이 무거워진다.
2024-04-15(월) 빨간펜 계약
오후 9시, 퇴근 후 집에 도착했다. 21시 13분, 아내가 집에 들어왔고,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빨간펜 혼자서 계약하고 왔어!” 그 신남과 자부심이 묻어나는 말투에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아내가 뭔가 성취했다는 기쁨이 전해졌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전에 예상했던데로 아내는 점점 더 빨간펜 일이 우리 가족 사이에 깊은 균열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결정하고 행동하는 아내의 모습들은 나와 아이들을 둔 채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듯 느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점점 멀어져가는 우리를 다시 한 번 실감했다.
2024-04-23(화) 아이들 방(3군대)에 침대 들어옴
아내는 오래전부터 화장실 두 개에 욕조가 있는 넓은 평수 아파트에서, 넓은 식탁과 소파, 침대가 갖춰진 집에서 좌식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2023년 9월 8일, 아내가 원하는대로 45평 아파트로 이사한 후, 먼저 넓은 식탁을 배치했고, 아이들 방에는 그동안 사용하던 폴더 매트를 깔고 안방에 접이식 침대를 배치했고 쇼파는 나중에 돈모으면 사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아내는 좌식생활을 하지 않아 무릎이 아프다며, 내가 소파와 침대를 사지 않았다고 나 때문에 무릎이 아프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나는 소파를 사면 접이식 침대를 깔아도 되냐고 다시 물었고, 아내가 동의하여 안방에는 접이식 침대를 놓고, 거실에는 5인용 소파를 배치했다. 이후 아내는 접이식 침대에 누울때면 계속 무릎 통증을 호소하며 좌식생활을 해야 한다며 안방에(높은)침대를 사자고 여러번 이야기했다.
당시 나는 계속 반대했지만, 아내는 결국 아이들 각방에 침대가 들어왔다. 침대가 들어오면서 아이들 방은 좁아졌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넓은 안방으로 와서 놀게 되었다. 결국, 안방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셈이었다.
이런 변화는 내게 편안함보다는 복잡한 감정과 걱정을 안겨주었다. 아이들 공간이 줄어든 것과 아내의 욕구 사이에서 나는 또 한 번 갈등을 느꼈다. 이후 아내는 둘째 자녀 방에 있는 침대에서 자게 되면서 또 다시 각방을 쓰게 되었다.
2024-04-25(목) 빨간펜 계약
오후 3시 40분경,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파주에 와 있는데, 지인을 빨간펜에 가입시키기 위해 방문했고, 그래서 퇴근 후 아이들을 좀 봐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렇게 또 한 번, 갑작스러운 양육의 몫이 내게로 넘어왔다. 그리고 밤 8시 40분경, 아내는 집으로 돌아왔다.
예상한대로 아내는 빨간펜 활동은 점점 더 적극적이 되어가고 있다. 외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계약을 따내기 위한 움직임도 잦아졌다. 그런 아내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뭔가를 해보려는 열의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 있는 현실은 나에게 더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매번 속으로 막내가 어느정도 클때까지는 아내가 집에 있길 바랫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2024-04-29(월) 아내가 이혼서류 가져오라고 했다.
출근 준비로 분주하던 아침, 아내가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첫째가 아빠랑 살고 싶대. 그러니까 이혼서류 작성해." 단호하고 감정이 실린 말투였다. 순간 이번엔 무슨 생각일까라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 아내가 첫째를 심하게 구박해서 그런 거라 생각이들었고 그로인해 앞으로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과 이후 모든 책임을 내게 떠넘기려는 듯한 느낌이였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아직 애야. 잘 타일러야지. 그렇게 몰아붙이면 애 마음은 더 멀어져." 하지만 아내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 순간의 아내의 마음속엔 이혼이라는 단어가 현실처럼 자리잡아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 옆에서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던 첫째. 그 작은 눈동자엔, 엄마와 아빠가 서로에게 어떤 말을 하는지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유심한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아이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탓하는 이 대화가, 너무나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2024-05-13(월) 빨간펜 이용중인 상품내역
브레이니아이 36박스 약 666만 원
아내가 빨간펜에서 일하기 시작(2024-01-02)한 이후, 할부로 물품을 과도하게 결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집안에 빨간펜에서 들어온 것들에대해 아내에게 하나하나 물어봤다. 아내는 처음엔 그때그때 기억나는 걸 말해주다가, 본인도 정리가 안 되는지 결국 빨간펜에서 이용 중인 상품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경로를 알려줬다.
그렇게 내가 확인한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2024년 1월 2일 ~ 2024년 6월 14일 총 금액)
아이캔두슬림 약 2,000만 원
키클랩 HT042 12개월분 약 267만 원
솔루토이 전집 13질 약 517만 원
브레이니아이 36박스 약 666만 원
이 외에도 자잘한 물품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빨간펜에서 근무한 지난 5개월 동안, 총 5,816만 원 정도를 할부로 결제한 상태였다. 며칠 후, 아내에게 물었다. “빨간펜 실적 때문에 이렇게 과하게 결제한 건 아니야?” 그러자 아내는 목소리를 높이며 되려 내게 화를 냈다. “내가 벌어서 내가 우리 아이들 위해 해주는 건데, 당신이 왜 상관이야?” 그 말에 가슴이 먹먹했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름 아래, 가정 경제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리하는 그 선택이 정말 옳은 것인지, 그리고 그런 상황조차 함께 논의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지금의 현실이 그날 따라 유독, 가슴을 짓눌렀다.
과거부터 아내는 자기가 번 돈은 자신이 마음대로 써도 되는 ‘자기 돈’, 내가 번 돈은 가족의 생활비로 함께 써야 하는 ‘우리 돈’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 생각은 단순한 기분이나 순간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이미 마음 깊은 곳에 굳게 자리 잡은 믿음처럼 보였다.
이런 구조 속에서, 우리는 가정을 함께 책임지는 ‘동반자’가 아닌, 서로의 영역을 따로 지닌 ‘공동 거주자’처럼 느껴졌다. 나에겐 늘 "우리"라는 개념이 중요했지만, 아내에게 "내 돈"과 "네 돈"은 확실히 구분되어 있었고, 그 기준은 돈을 누가 벌었는지가 아니라, 누가 벌었다고 '느끼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았다. 이런 인식의 차이가 쌓이면서 대화도, 협의도, 이해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함께 벌어도 함께 쓰지 못하고, 함께 살아도 함께 느끼지 못하는 거리감이 가슴 한켠을 오래도록 짓눌렀다.
생활비를 아내가 관리(2023-02-28)하면서부터 나는 점심값과 교통비 등 일상적인 소비를 제외하고, 가족을 위한 물건을 살 때마다 몇천 원짜리라도 반드시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승인을 받아 구매했다.
예를 들어, 휴지걸이나 충전식 전등처럼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조차, "이거 사도 될까" 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본 뒤 아내가 "마음대로 해"라고 승인해야 결제 버튼을 눌렀다. 굳이 허락까지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 물건조차, 받은 뒤에 “이 제품 어때?” 하고 다시금 아내의 반응을 살폈고,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아무 망설임 없이 반품했다. 그 모든 것들이 대부분 몇천 원짜리 가끔씩은 몇만 원짜리지만 나는 그 작은 소비 하나도 ‘가족의 돈을 쓴다’는 마음으로 항상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에 비해, 수천만 원에 달하는 할부 결제조차 미리 말해주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화를 내는 아내의 태도는 나를 더 이상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는 듯한 거리감으로 다가왔다. 작은 지출에 신중했던 나와 큰 지출에도 독단적이었던 아내의 태도 사이에는 단순한 소비 방식의 차이가 아닌, 가정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가 있었다.
2024-05-16(목) 아내에게 추가로 구매한 책들 처분 요청
며칠 전 또다시 빨간펜 책이 추가로 입고되었다. 3월에도 이미 많은 양의 책이 집에 들어왔고, 그 이후로도 계속 물건들이 쌓여가는 게 눈에 띄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3월에 당신이 보낸 사진보다 지금 책이 더 많아졌네. 그때 보냈던 사진만큼 정리해 줬으면 해.” 자녀들이 뛰어놀 공간, 가족이 함께 숨 쉴 공간이 점점 책 박스로 채워지는 모습이 답답했다. 무엇보다, 계속되는 구매와 부족한 정리는 어떤 면에서는 책임감 없는 소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때는 아이들을 위한 투자라 나 자신을 합리화 했지만, 과도하게 집을 채워가는 지금은 그 무게가 가정 안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돌덩이처럼 느껴졌다.
2024-05-19(일) 빨간펜 전단지
저녁 6시 15분경, 아내는 집이 갑갑하다는 듯 가방을 챙기더니 “(빨간페) 전단지 좀 돌리고 올게”라며 외출했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조차 아내는 집보다 밖에 있는 걸 택했다. 그 모습은 마치, 집이라는 공간에서 숨이 막히는 사람처럼, 아니면, 지금의 가족보다 밖에서의 성취와 연결감이 더 소중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가족이, 아내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나는 이 가정 안에서, 여전히 남편으로서 내 의견을 존중받고 있나…’
2024-05-25(토) 빨간펜 출근
2024년 5월 25일 토요일, 아내는 오늘도 빨간펜으로 출근했다. 아침 9시경 셋째는 외갓집으로 향했고, 9시 30분 무렵 아내는 첫째와 둘째를 시설에 맡긴 뒤 서둘러 출근길에 올랐다.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은 주말이지만, 아내는 이번에도 가족보다 일을 선택했다.
아이들이 각자 뿔뿔이 흩어지는 이 장면을 보며, 나는 문득 우리 가족이 '가족'이라는 본연의 의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믿어온 가족이란 한 공간에서 온기를 나누고 서로를 돌보는 관계다. 하지만 '가족보다 일이 우선'인 아내의 선택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진다. 지금의 우리는 가족이라기보다, 그저 한 지붕 아래 머무는 공동 거주자처럼 느껴져 안타까울 따름이다.









댓글 2
ㅅㅅ37분 전
이글이 사실이면 정신병이 심각한 아내랑 왜 이제까지 참고 사는거에요? 지금까지도 뉴스에 안나오고 살았다는게 기적인데?
ㄷㄹㅊㅎ29분 전
니 아내 문제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