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약 4년간 성착취 당했어요..
안녕하세요.
이 글을 쓰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 일을 세상에 알릴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조용히 끝나기를 바랐고, 저 역시 이 일을 묻어둔 채 제 삶을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결국 가장 큰 비난과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도 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너무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저를 그 지옥 같은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계속해서 힘든 상황에 놓이는 모습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같은 직장에 다니던 그 사람은 저를 도와줬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했고, 이후에도 해당 원장의 지시하에 여러 법적 분쟁에 계속 휘말리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 때문에 제 주변 사람들이 계속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침묵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은 금전적인 보상이나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저를 도와준 사람들, 제 주변 사람들이 저 때문에 피해를 입거나 힘든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혼자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 용기를 내어 제가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이 글에 적는 내용은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을 최대한 사실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1. 지옥의 시작
저는 2026년 올 해 만으로 28세 여자입니다. 사는 곳은 충청북도 청주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스물세살의 제가 2021년 7월 30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 있는 한 의원에 입사하며 시작 됩니다.
입사 후 비만클리닉 팀에 배치되어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운동선수로 생활했고, 대학을 졸업한 뒤 처음 시작한 사회생활이었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배우고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입사 후 약 8개월 정도가 지난 2022년 3월경, 업무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이었습니다.
병원의 실질적인 운영을 맡고 있던 원장이 저에게 "언제 한번 밥을 먹자"며 청주에 있는 룸식당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같은 팀 선배들도 원장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저 역시 특별한 의심 없이 몇 군데를 알아봤습니다.
하지만 원장은 제가 찾아본 곳들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본인이 직접 예약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 토요일, 퇴근 후 저는 원장의 차량을 타고 대전으로 이동했습니다.
원장은 가족 명의로 청주의 병원을 운영하는 동시에 지인 명의의 대전 병원도 운영하고 있었고, (해당 원장은 제가 다닌 의원 말고도 청주에 한 곳을 더 운영해 총 3곳의 의원을 운영합니다.)
평일에 한 번 그곳으로 한 번씩 출근해 줄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병원을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자연스럽게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생각해 별다른 의심 없이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그 병원은 토요일에는 운영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청주에서 대전으로 이동하는 동안 원장은 제 가족 이야기와 어린 시절, 살아온 과정 등을 하나하나 물었습니다. 운동을 하며 어린 나이부터 가족과 떨어져 지냈던 저에게 원장의 따뜻한 말들은 당시에는 큰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 차 안에서 저는 제 성장 과정과 가족사, 힘들었던 일 등 제 약한 부분들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당시의 저는 그것이 저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어른의 따뜻한 관심이라고 믿었습니다.
결정적으로 해당 의원에 입사하기 전 저는 강렬한 인상 때문에 많은 곳에서 면접 후 탈락을 많이 했었는데, 해당 원장이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주변의 반대로 무릅쓰고 절 채용했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부분이 참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그 때 제가 털어 놓았던 저의 비밀들이 훗날 저의 발목을 붙잡을 것 이라고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대전에 도착한 뒤 원장은 교통이 막혀 식당 예약 시간까지 여유가 없다며 먼저 식사를 하자고 했고, 저는 그러자고 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며 술을 마셨고, 그 이후의 기억은 대부분 흐릿합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저는 이미 숙박업소에 있었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저는 원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원장은 미안하다고 말하며 "네가 너무 귀여워 보여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이어 10만원 3개의 상품권이 들어 있는 봉투를 건네며 "앞으로 유성점으로 주 1회 지원 업무할 때 기름값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다. 이 일 때문에 너도 나도 생계를 잃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 실수로 일어난 일이니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말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만으로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아픈 어머니와 가족들을 생각하면 당장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첫 직장이었고, 원장은 병원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있었던 일을 애써 외면하며, '이번 한 번만 참고 지나가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선택은, 제가 앞으로 몇 년 동안 겪게 될 긴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2. 장기간 이어진 관계와 반복된 요구 (22년 3월 ~ 25년 11월)
앞서 이야기한 일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힐 것이고, 모른 척하며 살아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착각이자 오만이었습니다.
해당 원장은 제가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비밀과 당시 저의 상황을 이용해 저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가 일주일에 한 번 대전으로 함께 가는 것을 거부하면 저의 비밀을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말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또한 대전에서의 일이 끝난 뒤 함께 식사를 하지 않고 집에 가겠다고 하면 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는 처음 발생했던 일에 대해 “증거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증명할 것이냐. 사람들은 의사인 나를 믿는다. 너는 꽃뱀 취급만 당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저를 압박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말을 잘 들으면 가족들의 병원비를 일부 지원해 주고, 대전까지 출퇴근할 수 있도록 법인 차량도 제공해 주겠다고 회유했습니다.
실제로 해당 원장은 가족과 지인 명의로 의원뿐 아니라 여러 개의 법인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중 한 법인에 저를 직원으로 등록해법인 차량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만 본인 명의의 통장을 새로 만들어 오라고 요구했고, 그 통장을 통해 제 급여가 입금되면 매달 직접 돈을 인출해 갔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지만, 이후 저를 도와준 같은 회사 과장을 통해 매우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청주에서 저를 창녀로 몰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겠다고 협박했고, 제가 회사를 그만두거나 자신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면 저와 가까운 다른 직원들까지 모두 해고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의 저는 너무 어렸고 세상을 잘 몰랐기에, 그 사람에게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 사람의 성노예가 되어갔습니다.
그가 저에게 요구한 것은 다양했지만 매우 명확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자신의 집으로 와서 성관계를 가질 것,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를 실제 여자친구처럼 보이도록 보낼 것, 유학 중인 아들이 방학을 맞아 귀국하면 호텔에서 만날 것.
직원 휴무 일정을 본인의 일정과 맞출 것. (실제로 본인 일정이 바뀌면 제 근무 일정도 강제로 바꿨습니다.)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부르면 즉시 달려올 것 등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훗 날 회사에서 발생하는 회식, 야유회 등 어디서든 저를 밤에 다른 사람들 모르게 범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또한 자궁내장치(IUD) 시술을 받을 것을 강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완강히 거절하던 저는 여러 차례 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회사에서 엑스레이를 촬영하던 중 다른 직원들이 자궁내장치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에는, 제가 문란해서 스스로 시술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라고 지시하고 강요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직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조금이라도 본인관계를 티를 낸다던지, 다른 직원이 눈치를 채면 저를 죽이고 매장 시킨다고 여러번 협박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직원들 앞에서는 밝은척을 연기했고, 그 외에 시간은지옥같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죽고 싶다는 생각의 연속이었습니다. 자신의 요구가 조금이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저와 가까운 직원들을 업무적으로 괴롭히거나, 저를 직원들 앞에서 망신을 주며 모욕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미래를 미끼로 삼기도 했습니다. 제가 관계를 끊으려 할 때마다 앞서 언급한 법인 차량을 제공했고, 자신이 운영하는 다른 법인에 저를 추가 직원으로 등록하거나, 제가 근무하는 의원의 감사로 등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제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 집으로 어머니가 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선물과 물품을 보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부담스럽거나 거절하는 기색을 보이면,저는 그의 집으로 불려가 몇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반성해야 했습니다.
가족들이 그 선물의 이유를 물을 때마다 저는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했고, 이러한 삶이 반복될수록 저는 이 상황 자체를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저조차도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지속적인 협박과 회유 속에서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자 해당 원장의 요구는 점점 더 심해졌고, 저를 더욱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헨드폰을 들여다보며 저의 개인적인 카톡을 확인하거나, 제 신용카드 내역을 들고 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집으로 불러 “밥을 해주고 싶다.“고 말한 뒤에는 맛있게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을 했고,자신의 금고에 보관하고 있던 성적 학대 도구를 꺼내 제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반려견이 제 성기를 핥도록 강요하기도 했으며, 제 항문에 손가락과 성기를 삽입하거나, 제 질에 손가락과 발가락이 몇 개까지 들어가는지를 확인하며그것이 저의 흥분도를 테스트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흥분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을 땐 술을 강제로 먹이거나, 더 큰 고통의 시간이 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학대로 인해 질염이나 방광염 등으로 극심한 통증을 겪고 있을 때에도 일반적인 처방량보다 훨씬 많은 약을 강제로 복용하게 한 뒤 성관계를 요구했습니다.
제가 그 부분에 대해 걱정하기라도 하면 "내가 의사지, 너가 의사냐. 괜찮다." 라는 말을 하며 약을 기어히 복용하게 했습니다.
약 기운이 너무 강해 약을 먹지 않았을 때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그 아픈 고통을 참으며 억지로 그의 모든 것을 받아 들여야 했습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수면장애에 시달릴 때는 수면제를 처방해주었고, 수면제가 듣지 않자 술을 마시고 자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일로 점점 저는 알콜에 의존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점점 더 삶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면 왜 그렇게까지 순응할 수밖에 없었는지 스스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저는 그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거절하면 더 심한 폭행과 협박, 보복이 이어질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회사의 여직원 중 같이 관계를 할 사람이 없는지를 찾아보라고 했고, 제 친구 중 한 명을 데리고 오라고 여러번 요구했습니다. 제겐 정말 그 사람이 악마로 보였습니다.
직장에서도 그의 부당한 강요는 계속 되었습니다.
해당 의원의 대표로 등록된 그 원장의 부인이 가끔 피부 시술을 받으러 서울에서 내려 올 때는 해당 시술의 어시스트로 저를 지목한 뒤 눈 감고 있는 본인의 부인앞에서 저를 더듬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인 와이프와 통화를 하며 저를 범하고 있었을 때도 많았습니다.
해당 원장의 부모가 의원에 내원하면 제가 전담으로 모셔야 했고, 유학중에 한국에 온 원장 아들의 친구도 되어줘야 했습니다. 원장의 반려견의 미용 관리 예약 등 마치 하녀 처럼 그의 모든 일상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러던 24년 6월 해당 원장이 운영하던 대전에 있던 지점의 원장이 제가 다니는 의원으로 완전히 오게 되었고, 그 때 부터 해당원장은 의원 건물 3층의 사무실로 올라가고 특정일만 진료를 보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다른 법인들도 함께 주소로 등록되어 있는 본인 사무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점점 더 궁지로 몰아갔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업무 중에 저를 따로 불러 오랄섹스를 강요했으며, 3층 사무실 직원이 출장 갔을 때는 그곳에서 성관계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집으로 불려가면 그의 몸을 씻기고, 닦고 마사지를 해줘야 했으며 제 알몸을 찍은 사진을 매일 같이 울고 빌며 지워달라고 요구해야 했습니다. 그럴 때 마다 그는 못이기는 듯이 저의 사진 그리고 저와의 카톡 등 대화 내용을 지웠습니다. 물론 저의 헨드폰 내용도 다 지웠습니다.
또한 둘이 있을 때 혹은 카톡이나 문자를 연인처럼 행동하거나 보내지 않으면 정말 죽을만큼 괴로울 때까지 성적학대를 당했습니다.
가끔은 미리 말할 대사를 가르켜주고 그 대사를 내뱉으며 연기해야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저를 책임지셔야해요, 사랑해요, 오늘 한 번으로 끝내고 싶지 않아요.“ 등 마치 제가 그 원장을 갈구하는 것 같이 행동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제게 주는 손편지에 마치 그 일이 진짜 있었던 것인냥 적어서 주기도 했습니다.
제 근무 스케쥴을 조정하고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직장에서 단체 여행가는 것처럼 말하게 하고 저를 해외에 데리고 간 적도 있습니다.
거기서는 사람들에게 제가 해당 원장의 부인이라고 소개하지 않으면 그 날 밤은 가혹한 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도 제게 저는 자신의 것이라고 하며 다른 사람을 만나면 저를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모욕적인 욕과 단어들은 항상 당연한 것이 되어갔습니다.
해외여행까지 같이 왔으니 여태까지의 일이 밝혀지면 자기는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저는 상간녀까지 될 것이니 알아서 잘하라고 했습니다.
위에 언급했듯이 벗어나려는 시도는 매번 그 동안의 일을 밝힌다는 협박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무릎 꿇고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 때까지 폭행 및 폭언을 당해야 했습니다.
어머니, 오빠, 언니 등 가족들이 아픈 상황에서 크진 않지만 직장에서 버는 수입이 주로 저희 가족의 생활비였고, 저는 청주라는 지역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습니다.
또한 같은 지역 의료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에 퇴사 후 다른 병원으로 이직하는 과정에서도 불이익이나 소문이 생길까 두려웠습니다.
경제적인 이유와 현실적인 두려움 때문에 쉽게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저는 관계와 근무를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 저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느낌보다, 여러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벗어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며 생활했습니다.
3. 벗어나려는 시도 (25년 11월 ~ 26년 2월 19일)
해당 원장은 장난이라고 하지만 성관계를 할 때 마다 본인 흥분에 못이겨 저를 항상 때렸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우연치 않게 같이 회사의 한 과장이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직장의 다른 직원들도 저의 상처 입은 모습은 많이 봤지만, 그 때 마다 해당 원장의 지시로 술먹고 넘어졌다라고 말해왔었습니다.)
그는 해당 원장이 운영하는 다양한 법인에서의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의원 업무, 수입 및 수출 업무, 해당 원장이 운영하는 제약 도매상 업무 등 가리지 않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과장은 당시 해당 원장의 지시로 제약 도매상으로 사무실을 옮겨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해당 원장이 항상 언급하던 20대 여자에 대한 내용을 토대로 제 상처의 원인이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주변에 밝혀지길 원하지 않는 저의 성향을 확인하고는 이런 지옥 같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었습니다.
해당 원장의 법인들에서 퇴사를 하고, 법인차량을 반납하고, 마지막으로 실제로 근무하는 의원에서도 퇴사하는 순서를 말입니다.
다만 그 때의 저는 아직도 그 원장과 대화로 잘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해당 원장에게 퇴사와 관계의 종료를 알렸고, 그 원장은 26년 11월 15일 본인의 골프 약속이 있다며 운전을 지시했고, 그 날 이야기 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그 날 해당 원장이 처음으로 저와 진심으로 대화를 하려는 것처럼 느껴졌고,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어가는 저를 놓아줄려고 하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어김없이 그 날 저는 밤 저는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관계의 종료를 결정했기에 그 어느 때 보다 완강히 거부했지만, 제 힘으로 육중한 몸을 벗어나기엔 역부족 이었습니다.
관계가 끝나고 그는 어김없이 제 가족들과이 일이 밝혀지는 부분에 대한 협박을 했고, 저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그의 일정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청주로 내려오는 길에 제가 운전을 하며 “이 관계가 너무 힘들다. 나도 내 인생을 살고 싶다. 부모님 얼굴도 제대로 보기 어렵고, 너무 죄스럽고 부끄럽다. 병원에서 가족분들을 마주칠 때마다 너무 힘들고, 내가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해당 원장은 운전하고 있던 저의 팔과 얼굴을 때리면서 자궁 내 장치를 빼고 오라고, 자기 애를 낳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집을 계약해 줄테니 그 곳에서 살으라고 했습니다.
절대로 그럴 일 없을거다라고 하자, 그럼 그 동안의 일은 비밀로 해줄 것을 요구하며 인수인계 기간 한 달만 근무 해달라고 하며 그 날의 일은 끝이 났습니다.
약속한 한 달이 다가오고 해당 원장과 그의 아들, 그리고 다른 직원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저는 다시 한번 퇴사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 때부터 해당 원장은 오히려 제게 미안하다며 자기의 힘이 되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뜻을 굽히지 않자, 다시 그의 괴롭힘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퇴사처리는 절대로 해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의 의원은 많은 직원들이 그만둬서 직원들이 업무과다로 힘들어하고 있었고, 그 상황에서 제가 무단으로 퇴사하기엔 제 성격이 답답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의 개인적인 이유로 같은 회사 동료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직원들에게 제가 그만두는 이유가 너희들 때문이라며 저에게 사과하고 저를 설득시켜서 오라고 했고, 그렇지 못하면 다 해고시킨다고 했습니다.
몸이 아픈 것을 핑계로 저희 집앞 병원에 입원한 뒤 제게 이불을 빌려달라며 병실로 찾아오길 얘기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상황에서 위에 언급한 그 과장은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고, 모든 건 저의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제게 “너의 잘못이 아니다.”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의 말은 조금씩 제가 용기를 내서 조금 더 강하게 해당 원장에게 거절의 의사를 밝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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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6년 2월 13일 그에게 받았던 차량을 반납하고, 정식으로 다른 법인에서의 저의 대한 퇴사처리를 요구했으며, 다니던 의원에서도 퇴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원장의 지속적인 연락과 손편지, 집으로의 선물, 퇴사 선물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촉이 시도 되었습니다.
점점 정신이 맑아진 저는 해당 원장을 차단했고, 그 뒤에는 제 SNS를 확인하고, 제 게시물을 업로드하며, 남은 직원들에게 매일 같이 제 이야기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럼에도 전 그냥 그 원장을 벗어난 것에 만족하고 살고 싶었습니다.
4. 주변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괴롭힘 (26년 2월 13일 이후)
모른척 잊고 지내고 싶던 저를 그 사람은 절대로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우선 이중소속으로 발생한 세금에 대해서 처리를 해주기로 했음에도 아직까지도 처리해주지 않았서 제가 경제적으로 곤란할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저를 도와주던 과장을 본인과 사귀는 사이로 몰아가며 그 사람을 부당해고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원장 본이이 운영하는 제약도매상 및 의원 두 군데에서 (해당 과장은 본인 소속이던 의원 및 원장이 운영하는 제약 도매상 이 중 소속 직원) 해당 과장에게 고소 공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건 (원장이 이중소속으로 발생한 연말 정산때의 손실을 제약 도매상에서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그 부분을 부당하게 이득을 취했다라고 고소한 것)은불기소처분이 확정되었음에도 본인의 재력과 시간을 이용해 제 주변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회사에서 법인 차량을 사용했던 모든 기간 동안을 대상으로 법인차 무단 사용, 의원 내 전산 시스템 사용한 것에 대한 개인정보법 위반 등 다양하고 끈질기게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 과장이 임금미체불 건까지 보상해달라고 언급한 부분도 공갈미수라는 항목으로 고소장을 접수했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것만으로도 7건이 넘습니다. 시간 많고, 돈 많이 버는 의사가 한 사람의 인생을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괴롭히고 있습니다.제가 벗어날 수 있게 도움을 줬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약 4개월 째 지켜보고 있던 저는 조금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용기를 내보려고 합니다. 두려웠던 그 원장과의 시간을 공론화하고 그 사람에게 법이 허락하는 한에 벌을 받게 하고 싶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부족하디 부족한 제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사실이 저를 다시 한번 초라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염치불구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5
jd(226.238)1시간 전
앞으로 제일 중요한것은 판사를 잘 만나야합니다. 대한민국 현실이라 어쩔수 없네요!
wdc33분 전
엥... 이건 역대급 성착취인데? 언론사에 제보하시길 바랍니다
ㅊㅇㅊ30분 전
벗어나서 진짜다행이네여 저사람 범죄자에요 구속시킬수있으만큼요..근데 증거도 있어야하고.. 빵에서 나온다음 뒷문제가 두려우시겠네요... 증거있으면 빵에넣어버리고 폰번이랑 명의로된거 싹다시만들고 이사가지않으면 살인까지 할 남자일것같아요..
erar(136.182)15분 전
?????뭘본거야
냥(231.92)4분 전
털고 앞으로 가면 돼 무너지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