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병에 걸리지 않는 무한 감자, 육종가들의 꿈 SCP-1689

Wwsg(104.141)· 2026.07.21 09:31· 조회 8931
[시리즈] 이것저것 미생물 이야기 · 실패로부터 시작된, 복어독(TTX) 생물학적 해독 연구사 30년 · 곰팡이의 자가 손상 제어 시스템, 보로닌체 Woronin body · 식물을 죽이는 작은 힘, 곰팡이의 감염전략 · 식물이 수억 년간 진화시켜온 면역 체계, PTI와 ETI · 곰팡이가 결정한 공룡의 퇴장과 포유류의 시작 — FIMS 가설 · 박테리아가 가진 플레어, OMV의 파지 교란 전략 · '아름다운' 바이러스, 튤립 파괴 바이러스 TBV · 두 얼굴을 가진 세균, Xanthomonas campestris · 곰팡이인듯, 그러나 곰팡이가 아닌 난균 Oomycete · 병원체 독성은 항상 감소하는가? 전염력-독성 상충 가설 · 플로리다 오렌지 제국의 종말, Candidatus Liberibacter ·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 생물방제균 Trichoderma SCP 재단은 다양한 유저들이 모여 도시전설을 보고서 형태로 창작하는 위키 사이트다. 어떤 문서는 평행우주를 다룰 정도로 광대한 스케일을 자랑하기도 하고, 어떤 문서는 우리 주변에 흔한 물건을 소재로 삼아 재치 있게 비틀어 풀어내기도 한다. 그 여러 문서 중 하나가 바로 SCP-1689, ‘감자 포대’다. 이 문서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40년 동안 외부와 연락이 끊긴 북시베리아의 한 작은 마을을 조사해 보니, 창고에 감자가 계속해서 생성되는 감자 포대가 있어 식량을 해결하고 있었고 재단은 이를 회수한다. 재단의 조사 결과, 포대 안쪽은 무한히 자가증식하는 감자에 파묻혀 멸망한 평행세계로 이어져 있었다는 결말이다. 다른 SCP처럼 거대한 뒷설정이 있다거나 소재가 특출난 것도 아니라 다소 심심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역병에 감염된 감자(좌)와 병에 걸리지 않은 저항성 감자(우) 그런데 이 SCP에 대해 잠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꽤 흥미로운 가설을 떠올릴 수 있다. 이 문서에 등장하는 감자는 병해에 상당한 저항성을 보이는 슈퍼 감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SCP-1689 문서 내에 첨부된 증식중인 감자 사진 작내 묘사를 보면, 감자가 증식하는 방식은 괴경(감자 알맹이)에서 혹이 형성되고 그 혹이 일정 크기가 되면 떨어져 나가 또 다른 괴경이 되는 구조다. 씨앗이 아닌 괴경 자체가 계속 분열하는 방식이라, 이 감자들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단일 품종 클론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또한 감자 포대는 최소 한 세기 이상 사용되었다는 묘사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포대에서 꺼낸 감자만으로 여러 세대를 버텼고, 그 사이 감자가 병에 감염되었다는 언급은 없다. -감자역병균Phytophthora infestans과 감염된 감자 -감자바이러스S에 감염된 잎과 바이러스 입자 실제 현실과 비교해 볼 때, 러시아의 지역별 감자 병해 조사에 따르면 시베리아 중북부에 걸쳐 있는 이르쿠츠크 지역의 감자들에서 감자역병균, 감자바이러스 S 등을 비롯한 다양한 병원체들이 검출된 바 있다[1].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지역의 위치 비바람, 곤충, 새 같은 매개체를 생각해 보면 북부 시베리아의 작은 마을에도 감자 병원균이 퍼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재단의 보고서에는 병든 감자, 썩은 괴경 같은 표현이 등장하지 않고, 탐사팀은 포대 안에서 감자를 채집해 먹기도 한다. 포대 자루 반대편 세계(SCP-1689-A)도 마찬가지다. 동식물은 감자의 폭증으로 물리적으로 압착되어 멸종했다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감자를 공격하는 병원균 입장에서 보면 천혜의 환경임에도 탐사 기록에는 썩은 감자나 병반 대신 평범한 감자만이 반복해서 언급된다. 재단 내 세계관의 농업 상황이 현실과 비슷하다면 이는 꽤 주목할 만한 발견이라 할 수 있다. 현실에서 감자는 벼, 밀,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주요 작물로 취급되며 130여 개 국가에서 연간 약 3억 톤이 생산된다. -조기사망병이 돌아 고사한 캐나다의 감자 재배지 그럼에도 연간 생산량의 10%가량을 병해로 잃고, 방제에 실패하면 재배지 전체가 고사하기도 한다. 그만큼 중요도와 병해 위험이 크기에, 국제생물무기협약에서도 지정된 13개 식물병원균 중 감자 병원균이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감염병이 돌 수 있는 환경인데도 단일 클론 감자가 수십 년 이상 버텼다는 설정은 감자 자체가 상당한 병 저항성을 가진다는 재밌는 가설을 세울 수 있게 해 준다. 이 SCP를 무한히 생성되는 감자 정도로만 볼 게 아니라, 어떤 병원균에도 저항성을 가지는 슈퍼 감자로 관점을 전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감자는 어떻게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 현실에서 병에 강한 품종을 육종할 때는 병원균의 물리적 침투를 어렵게 만들도록 표층을 두껍게 하거나 항균물질 생성 유전자를 도입하는 방식도 있지만, 기본 골자는 식물의 면역과 관련된 R gene(저항성 유전자, Resistant gene)을 도입하는 것이다. 병원체가 기주 식물을 감염하려 시도할 때는 식물의 병원체 인식과 신호 전달을 방해하는 이펙터(Effector)라는 물질을 분비한다. 감수성 식물은 이 이펙터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병원균이 쉽게 침입하지만, 저항성 식물은 이 이펙터를 역으로 감지해 더 강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저항성 단백질(R protein)을 가지고 있다. 이 R 단백질을 코딩하는 유전자가 바로 R gene이다[2]. -흰잎마름병과 도열병에 복합내병성을 보이는 벼 품종 참동진 현대 육종에서는 대부분 단일 R gene을 도입해 한 종류의 병에만 저항성을 가지는 품종이 많다. 만약 두 가지 이상의 병에 일정 이상의 저항성을 가질 수 있다면 이를 복합내병성(Multiple disease resistance, MDR)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품종을 만드는 건 많은 육종가들의 염원이다[3]. 문제는 이런 복합내병성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도 어렵고, 자연 상태에서 후보군을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저항성을 발달시키는 것 자체가 생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빼내 투입하는 셈이고, 병원체와 기주의 공진화 과정에서 저항성이 돌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간혹 한 병원체에 저항성을 부여하는 유전자가 다른 병원체에 대해서는 오히려 감수성을 높이는 식으로, 시소처럼 한쪽을 올리면 다른쪽이 내려가는 관계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보고된 복합내병성 품종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날 수 있다. 첫 번째는 한 품종 내에 여러 종류의 R gene들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다.(위 그림의 a,b) 이들이 각각 다른 병원체를 담당해 한 작물이 여러 병에 강해지는 구조다. 두 번째는 여러 종류의 병원체에 모두 저항성을 보이는 단일 R gene을 가지는 경우다.(위 그림의 c,d) -참동진 벼 품종 개발을 위한 교배 과정 전자 방식의 품종개발은 여러 R gene들을 모두 도입하기도 어렵거니와, 세대별 추적 관찰이 필요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또한 세대가 거듭되며 일부 R gene이 탈락하거나 기대만큼 함께 작동하지 않는 위험도 있다[4]. 하지만 여러 R gene을 가진 만큼, 한 R gene이 뚫려도 다른 병원체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방어가 가능해 저항력 지속성 면에서 장점을 가진다. -R gene인 Lr34를 보유해 녹병에 저항성을 보이는 밀(좌)과 미보유 감염 밀(우) Lr34는 흰가루병에도 저항성을 보이는 복합내병성 부여 R gene 후자를 이용한 육종은 얼핏 올인원 제품처럼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단일 병 저항성 R gene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항력이 낮으며, 그 R gene 하나가 무력화되면 여러 병원체에 동시에 구멍이 나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그 반면 유전자 도입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개발 효율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SCP-1689가 어떠한 병에도 걸렸다는 서술이 전무하다는 것을 보면, 현실을 초월해 이 두 유형의 장점만을 취합해 모든 병원체에 대해 강한 저항력을 보이는 단일 R gene을 가졌다는 상상을 해 볼 수 있다. 어쩌면 SCP-1689의 중요한 변칙성은 감자가 끝없이 증식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병원균도 뚫지 못하는 완벽한 저항성 유전자를 가졌다는 것일수도 있겠다. 만약 해당 SCP가 실재했다면 재단 내 육종학자들과 병리학자들의 실험 신청서가 빗발쳤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가상의 창작물에 불과할지라도, 조금 관점을 바꾸어 상상해 본다면 소소한 재미가 되기도 한다. *정확한 정보는 참고문헌 참조 *이펙터와 R gene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시리즈 4번째 PTI ETI글 참고 1.Malko, A., Frantsuzov, P., Nikitin, M., Statsyuk, N., Dzhavakhiya, V., & Golikov, A. (2019). Potato Pathogens in Russia’s Regions: An Instrumental Survey with the Use of Real-Time PCR/RT-PCR in Matrix Format. Pathogens, 8(1), 18. 2.Bent, A. F., & Mackey, D. (2007). Elicitors, effectors, and R genes: the new paradigm and a lifetime supply of questions. Annual review of phytopathology, 45, 399–436 3.Tyr Wiesner-Hanks, Rebecca Nelson. 2016. Multiple Disease Resistance in Plants. Annual Review Phytopathology. 54:229-252 4.Park, H. S., Baek, M. K., Kim, W. J., Suh, J. P., Lee, J. H., Jeung, J. U., Kim, C. S., Jeong, O. Y., Lee, D. R., Lee, C. M., Jeong, J. M., Mo, Y. J., Ha, S. K., Lee, D. K., Ji, H., Seo, J., Park, J. R., Lee, H. S., Park, S., Jin, M., Kim, K. Y. (2023). The Multiple Disease-resistant, Mid-late Maturing Rice Cultivar ‘Chamdongjin’, Carrying the Bacterial Blight Resistance Gene Xa21, with the Genetic Background of ‘Sindongjin’. Korean Journal of Breeding Science, 55(1), 86–102. 출처: 싱글벙글 지구촌 갤러리 [원본 보기]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뻐끔에 광고를 원하시나요?
전자담배·베이프 타깃 커뮤니티. 배너·제휴 문의를 받습니다.
광고 문의brand.partners.k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