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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매장을 어슬렁거리던 어느 공대생의 성공기(1)

Ook· 2026.07.19 17:22· 조회 977
요즘 AI 열풍덕에 이따금 지식정보도 교환하고 뭔가 학구적인 분위기가 되는 레겔을 보고 오늘 이글을 쓴다 얼마전 골프 게임 추억편 글도 사실 이야기를 위한 사전 글이였음 나는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 전성기 시절 신기술에 목말라있던 이들의 성지 였다는 내용의 영상을 본적이 있었다. 영상 내용중 나의 이목을 끌었던 부분은 70년대말 서울의 전자상가 게임샵 매장 뒷편 으슥한 골방에서는 대학생,고등학생 알바생들이 들락날락 하면서 게임 제작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더라. 게임샵에서 왜 겜을 만드냐 할거 같은데 정확하게는 게임샵 운영하던 업체가 게임 유통도 하고 복제팩 제작도 하고 게임제작(주로 짭 게임 가끔 오리지널 타이틀도 만듬)도 하고 인두기로 납떔작업하면서 하드웨어도 만들고 그랬다고 함. https://youtu.be/rdrgtZrRkqw '수상한 게임샵에서 게임을 구입했더니 찐이 아니고 이상한 똥겜'이더라 는 주제로 snl 코리아에서 그 시절을 풍자한게 이런게 아닌가 싶다 RETRO PC WORKSHOP 채널 영상중 내용인데 89년 컴퓨터 잡지에서 볼수 있었던 재미나 광고 당시 이러한 일을 하던 대표 주자격으로 세운상가에 자리잡고 있었던 재미나 라는 업체가 그랬었다 그런걸로 돈 제법 벌었을거 같은데 이것저것 게임관련사업에 손댔다가 망했다고 한다. 겜잘알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서 닌텐도 같은 회사로 성장시킨다는 대체 역사물 소재로 딱일거 같다. 비슷하게 게임샵 운영했던 회사인 만트라에서 정식 유통과 직접 한글화까지한 프린센스 메이커2, 이회사의 경우는 음지에 있다가 양지로 나왔음 >>1세대 개발자 출신들이 따로 회사를 차려 만든 겜인 컴온베이비 흑역사 였지만 그때 매장 뒤편 골방에서 코딩 하던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한국의 1세대 게임개발자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하더라 이것과 관련 흥미진진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진짜 많을거 같지 안나? 더 파고들고 싶은데 물밑 역사다 보니 온라인상으로 자료찾기에는 한계가 있었음 그래서 이제 일본으로 넘어가서 한국에 세운상가가 있었듯이 일본에서도 핫플레이스가 있었다. 1970년대 말 일본의 세이부 백화점 컴퓨터 매장에서는 일부 컴퓨터와 전자기기를 마음껏 쓸수 있도록 오픈되어 있었다고 한다. 비싸고 귀한 컴퓨터를 만질수 있다는 것때문에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컴잘알 들이 모여서 서로 정보교환을 하거나 기기지식과 코딩실력을 뽐내는 컴터 성지가 되었다. 백화점 직원이 제안하였고 그 컴잘알 그룹 멤버들과 같이 만든 회사가 >>HAL 연구소의 대표작 게임 커비 시리즈 HAL 연구소이다 왜 이름이 HAL인지는 2가지 설이 있는데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영화의 AI 이름인 HAL 에서 따왔다 혹은 알파벳 순서상 IBM의 앞글자들을 모으면 HAL이 되는데 여기서 만들었다 가 있다. 참고로 영화속 HAL이 워낙 강력한 존재감을 남겼기에 각계 각층에서 HAL을 오마쥬한 케이스만 열거 해도 몇페이지 이상 나온다고 함 한편 백화점 컴잘알 그룹의 맴버들중 돋보이는 코딩 실력을 가진 공과대 청년이 있었다 그는 키보드 두들 기는 소리부터 남달랐는데 보통사람이 '타다닥 타다닥' 이런 수준이라면 이청년은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이였다 엄청난 발사속도로 소리가 마치 모터음처럼 들린다고 해서 히틀러의 전기톱이라는 별명을 가진 독일 기관총 MG42 이청년의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가 딱 그랬다 청년의 첫 컴퓨터 구입 기종은 코모도어 PET-2001(모스 6502)로 아직 MSX(Z80) 등장하기 이전이였다.이 청년이 이때 갈고 딱은 6502계열 컴터 노하우는 훗날 유용하게 쓰인다 이미 그쪽 마당에서 실력 좋기로 소문난 청년은 틈틈히 HAL 연구소에 알바로 일하면서 학업을 마치고 정식으로 HAL에 입사했다 한편 닌텐도에서는 이제 곧 출시할 패미컴 게임기로 북미시장에 진출할 각을 재고 있었다 "북미에 진출하고 싶은데 거기 이미 자리 잡고 있는 터줏대감이 있어서 그를 활용해야겠어" "누가 나 불렀나...근데 누구세요" "저기 선배님 저희가 새로운 게임기를 만들었거든요 이렇게 된김에 선배님께 인사도 드릴겸 그리고 우리 기기와 게임을 유통해야 하는데 형님께 도움좀 받고자 하고요" "처음보는 얼굴인데 게임기 성능은 글타 치고 믿을만한 능력 가진 회사인지 실력좀 봐야겠어.우리가 제시한 4가지 타이틀을 패미컴용으로 이식해서 제출해봐 그럼 생각해보마" 띠링~아타리로부터 '북미시장 진출의 길' 퀘스트가 발동했습니다 "ㅅㅂ 큰일났네 이걸 가을까지 다하라구?" "자자 이겜들 패미컴으로 이식 해줄 사람 구합니다" 그겜중 하나가 자우스트라는 게임이였음 "저기요 사장님 저라면 자우스트 이식 두달만에 끝낼수 있습니다" "누구세요? 협력업체 직원인가 새파란 자네가 한다고?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때가 아니지 일단 해봐" 때마침 패미컴의 CPU는 6502 였던것. 제대로 능력 발휘할 기회가 온것이다 그 청년은 장담한대로 두달만에 해결했다 "아니 이걸 이렇게 빨리 해내다니? 이보게 자네 이름이 뭔가 내 그 이름 똑똑이 기억함세" "HAL 연구소 직원 이와타 사토루 입니다" 야마우치 사장과 대면한 내용은 팩트가 아니라 드라마틱한 재미를 위해서 본인이 구성한 부분임을 알림 어쩧든 이렇게 성공적으로 닌텐도에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닌텐도에서는 이제 HAL연구소에도 일감을 맡기기 시작했다 "골프겜 제작이 이렇게 어렵나 이거 맡아줄곳 구하기가 쉽지 안네 믿었던 제작사들도 다 거절하고 말야" 그것은 패미컴 초기 타이틀 골프로 정밀한 물리 알고리즘과 18홀에도 용량제한이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기획이다 보니 당시의 난다 긴다 하는 게임 제작사들은 모두 고개를 돌렸었다 "저기요 저라면 가능하지 말입니다" 해결 완료 용량이 17kbyte ㄷㄷ 이와타 사토루가 코딩한 골프는 일본에서 제일 많이 팔린 스포츠 타이틀로 오랜기간 유지 했다고 한다. 제작이 쉬운건 아니였다.골프채의 힘과 바람이라는 변수가 적용되는 골프공의 탄도 물리 알고리즘 구현도 어렵지만 20kbyte 채 안되는 팩용량에 18홀 풀코스는 미친 요구사항 맞았다. 용량 문제는 이와타 사토루가 직접 창안한 데이터압축기법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17키로바이트 용량이 감이 안오는 분을 위해 적자면 1.44메가 디스겥 한장의 백분의 일 밖에 안되는 용량이다 이때의 게임기용 프로그래밍 작업은 용량과의 전쟁 그자체였다 그래픽을 표현하는데 픽셀 단위 색상을 숫자로 표기해서 수학공식을 적용하거나 기계어로 코딩해서 용량을 줄였었다. 골프의 성공으로 닌텐도에서의 그의 입지는 커졌다. 닌텐도입장에서는 외주업체 직원인데도 그를 위해 별도로 개인 전용 작업실까지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조금 미래의 시점에서 이와타 사토루의 데이터 압축 실력을 본 케이스가 하나더 있다 한번은 이와타 사토루가 포켓몬 금 은 버전을 제작중인 프리크에 방문한적 있었다. 당시 제작팀은 용량 부족으로 게임내 특정 지역을 포기해야 하네 마네 기로에 고심하고 있었다 이에 사토루는 압축기법으로 일주일만에 프로그램 내에 불필요 해진 부분을 줄여서 게임내 해당 지역이 들어갈 용량을 확보하게 된다. 다들 아는 우정파괴겜 벌룬 파이터 제작은 아케이드 버전과 패미컴 버전 각자 동시에 진행되었는데 그가 개발하던 패미컴 버전이 하드웨어 스팩이 더 우세한 아케이드 버전보다 움직임이 부드러워서 아케이드 버전을 맡은 SRD에서 오히려 배우고 갔다고 한다. SRD는 슈퍼마리오랑 젤다시리즈 개발에 참여시킬 만큼 닌텐도로부터 신뢰받는 협력업체였다 벌룬파이터에 들어간 여러 요소들 주인공과 적 공중부양 하단의 물고기 움직임까지 적용되는 물리효과 그리고 풍선 출현확률 모두 수학공식화 해서 적용했다 여기서 그의 천재성을 알수 있는데 당시의 6502 CPU는 곱셈 나눗셈도 안되고 정수 연산밖에 안되는 등 한계가 명확한 CPU였다. 따라서 당시의 프로그래머는 수학을 적용하기 위해 여러 편법을 사용해야 했었다 이와타 사토루는 제한된 CPU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CPU연산량을 줄이고 메모리 사용량을 치밀하게 해서 용량 사용도 줄이고 프로그램 최적화에 아주 도가 텄었다 벌룬 파이터 제작때 처음으로 요코이 군페이와 대면할수 있었는데 첫만남 자체가 기묘했음 어떤 아재가 이와타 사토루의 사무실에 들어오더니 아무말 없이 게임만 잠시 하고 일어나면서 그 짧은 시간동안 문제점을 파악했는지 "음 이점은 고쳐야 겠군요" 라는 말을 남긴채 조용이 그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첫만남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요코이 군페이는 소문속의 그 청년을 직접 보고 싶어했던거 같다. 군페이는 이후 단기형 퀘스트도 주면서 그의 실력을 직접 보았고 훗날 그의 지지자가 되었다는 말이 있다 요코이 군페이 말고도 그를 지켜보던 이가 하나 더 있었으니 다름아닌 야마우치 사장이였다. 그는 엔지니어로서의 이와타 사토루보다는 그의 다른 면모에 관심을 가졌다. 한편 HAL 연구소는 거품경제 불경기와 이렇다 할만한 히트작을 내놓지 못하고 망하기 일보직전이였다 이때 기다렸다는듯이 구원의 손길을 뻗은 이가 있었으니 닌텐도였다 대신 조건을 걸었는데 이와타 사토루를 HAL 연구소의 사장으로 앉힌다는 조건이였다. "판은 내가 깔아줬어 젊은이 잘해보게 " 남들이 꺼려 하는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내는 그의 의지력과 해결능력에 높은 점수를 준걸로 보인다. 또 그의 개발철학을 보면 닌텐도가 추구하는 바와 공통된 점이 많았다. 야마우치 사장의 의도는 두가지가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경영자로서 이와타 사토루라는 사람을 가늠해볼 기회였고 개발환경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개발자가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가하면 어떨지 시험적인 성격도 있었던거 같다 닌텐도에는 유능한 개발자들이 바글바글 했으니 말이다. 이상으로 이와타 사토루 1편글을 마친다 다음은 경영자로서의 그의 행적을 보자 출처: 레트로게임기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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