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한 번은 써야 할 글 같아서 남깁니다.
한참 지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현대사 왜곡논란 있었던 어느 드라마 관련해서 사람들이 열받아 난리였던 몇 년 전, 저 역시 열받아서 해당 드라마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남겼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다지 특별한 글도, 잘 쓴 글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그 글이 여기저기 퍼져서 읽히고 나중에는 여기저기서 기사까지 나오더군요. 당시 이 곳 클리앙에서도 우리 과 동기들은 제가 누구인지 찾는 중이라고도 했는데, 아마 찾지는 못했을 겁니다. 저는 해당 대학교 해당 학과의 97학번 '입학생'이지, 졸업생은 아니거든요. IMF 터지면서 집안 풍비박산 나서 입대하고, 제대 후 복학을 못했으니까요.
여튼, 그 글이 여러 사이트들에 퍼져서 달리던 댓글 중에서, 가슴 찡한 댓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마도 더쿠 회원이셨던 것 같은데, 자신은 자기 부모님을 미워했더랍니다. 나름 좋은 대학 나왔다면서, 다른 집 부모님들은 공부 열심히 해서 지금 좋은 직장 잡고 잘 살고 그래서 그 집 애들도 잘 나가는데, 왜 우리집은 엄마 아빠 운동권 활동 하다가 제대로 된 직장도 못 잡고 이렇게 가난하냐고. 하지만 그 부모님들이 사실은,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싸워본 적 있는 사람들'이란 걸 알고 자랑스럽게 여기게 됐다고. 대강 그런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요즘 2030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쩌면 이게 바로 2030의 보수화, 혹은 탈 이념화의 이유들 중 하나가 아닌가 싶더군요.
우리는 흔히 386, 지금의 586 세대를 이야기 할 때에 당대를 대표했던 학생운동가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금 민주당에서 당대표 경선하시는 김민석, 정청래 두분이 바로 586 출신들이죠.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 심지어 '변절자'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 국민의 힘 쪽에 가있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런 '지도부' 출신들 말고, 맨 아래에서, 맨앞에서 싸웠던 평범한 학생들, 평범한 젊은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 당연히 대학 졸업하고, 혹은 중퇴하고 남자라면 군복무 마치고, 사회에 나와 직장 잡고 살아가는 시민이 되었겠죠.
그런데, 바로 그분들이 사회 초년생으로 기반을 닦아가기 시작할 무렵, 1997년 말에 IMF가 터집니다. 저를 비롯한 70년대 생들은 아직 학생 신분이고 군대라는 도피처도 있었으며, 부모님에게 기댈 수 있어 그나마 나았죠. 또 자신들 586보다 조금 먼저 사회에 나와있던 1950년대 생들은 이미 기반을 잡은 중년층이었기에 그나마 충격이 덜했구요. 하지만, 사회에 나와 독립은 했어도 아직 기반이 약했던 586 세대들에게 IMF는 치명타였습니다. 물론, 그분들 중 일부는 다시 일어서서 기반을 닦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무너진 채 일어나지 못했죠. 특히나 학생운동에 집중한다고, 학과 공부를 등한시했던 사람들이라면 더욱 문제였을 테구요. 더구나 운동권 활동중에 전과라도 생겼다면 자영업 외에는 답이 없었을텐데, 자영업 역시 큰 타격을 받았죠.
지금의 2030은, 바로 그 시기에 태어난 586의 자녀들입니다. 586 세대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죠.
덧붙여서, 우리 4050세대가 어찌 보면 586에 비해 더 강경한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특히나 클리앙 유저분들께서 이런 경향이 심한데, 우리는 속칭 '강남좌파'입니다. 먹고 살 만 하지만 자신의 이익과는 무관하게, 그게 옳다고 생각하기에 왼편에 선 사람들. 그런데 과연 그게, 온전히 우리들의 판단만으로 그런 걸까요? 586 선배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아니구요?
당장 제 경우를 보면, 97학번인 저는 사실상 마지막으로 최루탄 냄새를 맡아본 세대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누구나 다 맡아본 게 아니죠. 톡까놓고 말해서 당시 각 지역 총학들은 대부분 NL 계열이 주도하고 있어서 PD계열 최대 행사인 노동절 등에는 관심 없고, 주체사상 계열의 통일 운동이나 대학 재정 확충이란 명목으로 등록금 관련 시위 정도나 벌이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죠?
당장 제가 대학 신입생 시절 최루탄 냄새를 맡아본 것도, 상대적으로 가까운 부안인가 고창에서 농활 일정이 잡히면서, 집안에 농사일 먼저 돕고 간다는 핑계 대고서 NL 계열 총학에서 반드시 5월 1일 노동절 끼워서 가던 97년 농활에 늦게 합류하고, PD계열 동아리로 제가 소속된 문리대 노래패 선배들과 함께 장충단 공원에서 있었던 노동절 집회를 참가했었기 때문에 경험해 본 겁니다. 당시 집회 끝나고 사람들 종묘 쪽으로 시가행진 나가려는 걸 경찰이 막아서고, 최루탄 쏘면서 진압봉으로 진압했으니까요. 이 때가 아니었다면, 저 역시 대부분의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민주화 운동의 수혜는 받았지만 참여는 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겠죠.
그래서인지, 우리 90년대 학번들은 마음 깊숙히 586 선배들에 대한 선망과 부채의식이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면 진리처럼 떠받들고, 자랑스럽게 꼬붕이 되었습니다. 비꼬아 하는 말이 아니에요. 저 역시 그랬고 지금도 그 마음이 한편에는 남아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제는, 그 마음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자립해야죠, 우리 90년대 학번들도요.
운동권 선배 정청래, 김민석을 의심없이 믿고 떠받들고, 모든 정치적 현안들에 대해서 유시민 선배의 해석을 받은 후에 그 내용을 따르는 짓은, 솔직히 이제 그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남 이야기에 휘둘릴 나이 지났잖아요. 스스로 판단하면 됩니다. 우리 불혹이에요. 흐르는 세월 속에서 색깔이 변한, 기득권이 된 낡아빠진 선배들의 교조주의 이론이 더이상 먹히는 세상 아니라는 거 알고 있잖습니까.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런 거는 물론이고 민주화 운동 자체를 몰라요. 관심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그건 이미 '당연한 일' 이니까요. 그런 걸 젊은 친구들 상대로 떠들어봐야 먹히지도 않습니다. 그게 먹힐 것 같으면, 그 친구 부모님들인 586 선배들이 벌서 바꿔뒀겠죠.
이제는 우리가 나설 때입니다.
군사독재 정부의 경제성장 정책과 학생운동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의 과실을 모두 누려본 세대, 그리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하는 일본 정치권을 미워할 줄 알면서도, 소니와 아이와, 파나소닉 제품들의 국산품보다 뛰어난 성능을 인정했던 세대. 이념과 실리, 양쪽 모두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 나서야 할 때라는 겁니다. 성장 논리에 매몰된 우리 부모님 세대도, 이념에 경도되었던 586 선배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90년대 학번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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