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오랜만에 아버지와 정치 얘기를 나눴습니다.

ㅇㅅㅇ(116.212)· 2026.07.14 04:47· 조회 207
운동권 - 노사모 - 시민광장 회원 - 조국혁신당 당원 으로 이어지는 뼛속까지 진보이신 386세대 아버지와 연성 진보..라고 말하기엔 너무 중도스러운 30대 저, 20대 동생끼리 오랜만에 외식하면서 정치 얘기를 나눴습니다. 아버지가 대뜸 '정말 2030이 극우화 됐냐?'고 물어보셔서..하하 동생이 장난으로 형 윤어게인 인거 몰랐냐고 하니까 옆에 계시던 엄마 리터럴리 눈이 똥그래지면서 "미쳤나봐!!" 하고 놀라셔가지고 제가 더 놀랐습니다; 아무튼 저는 극우화된 게 아니라 탈이념화된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혹자는 리박스쿨, 일베 문화 등의 사례를 거론하며 교육이 문제다, 세뇌 당한거다 하지만 저만 봐도 학교 다닐 때 애들 잘 이해해주고 인기 많은 선생님들이 다 전교조셨고, 수업 들어오실 때마다 이명박 욕을 하며 들어오는 학원 선생님도 기억에 남아요. 집에서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진보 성향 주간지와 신문을 끼고 살았거든요. 이렇게 정통 진보 코스를 밟은 저도 민주당을 비롯한 현재 진보 진영에 대한 인식이 마냥 좋지는 않습니다. 태극기 부대 어르신들은 위화감이 들지 않지만, 윤어게인을 외치는 20대는 '시급 얼마 받고 하는거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 만큼 우리는 오랫동안 진보와 젊은 세대를 동일시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젊다는 이유만으로 진보적이어야 할 당연한 이유는 없습니다. 아버지 세대에게 정치는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군사정권과 지역주의처럼 실제로 겪은 역사적 경험의 연장선에 가까웠을 겁니다. 어느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하는지가 단순한 정책 선호를 넘어, 자신이 살아온 삶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일이었겠지요. 반면 저희 세대에게 정치는 조금 다릅니다. 민주화는 이미 교과서 속의 일이었고, 보수와 진보 모두 기성 권력이 된 이후에 정치를 접했습니다. 취업, 집값, 병역, 젠더 갈등처럼 당장 개인의 몫과 부담이 어떻게 나뉘는지가 훨씬 직접적인 정치적 경험이 됐습니다. 그래서 2030은 진보나 보수라는 이름보다, 지금 내 문제에 누가 더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느냐를 먼저 보는 것 같습니다. 어제 민주당을 찍었다가 오늘 국민의힘을 찍을 수도 있고, 다음 선거에는 둘 다 찍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당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필요에 따라 선택하고 교체하는 도구처럼 바라보는 것이지요. 여기서 '그래서 국민의힘은 답을 줬고?'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집값에 관련해선 보수 정권 당시 부동산 가격이 보다 안정적이었고, 양당제 구도 하에 1번 또는 2번이 반강제되는 상황 속에서 젠더 갈등과 관련해서 등을 돌린 2030 남자들이 다시 뒤돌만한 계기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내란은 한나절만에 끝난 해프닝이고 젠더 갈등은 한 정권 내내 차별 받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물론 '윤어게인을 외치는 20대'를 단순한 탈이념화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그런 극히 일부 사례를 근거로 2030 전체가 극우화됐다고 결론 내리면, 정작 왜 젊은 세대가 기존 진보 진영에서 이탈했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젊은 세대는 이념이 없어서라기보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이념의 서사에 자신을 끼워 맞출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요. 제 이야기를 들으시던 아버지는 한동안 별말이 없으셨습니다. 아마 아버지에게는 지금의 2030이 낯설고, 저희에게는 아버지 세대의 확고한 정치적 정체성이 낯선 것 같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께서 자신이 조국혁신당을 지지하고 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미래 세대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와 생각이 다른 지점이 많아졌고, 무엇이 ‘좋은 세상’인지에 대한 기준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아버지는 민주주의와 사회적 약자를 지키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저는 개인의 선택과 책임, 공정의 가치를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결국 다음 세대가 지금보다 덜 불안하고, 더 자유롭고,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입장이란 어쩌면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오면서 같은 목적지를 향해 선택한 서로 다른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2030이 극우화됐는지를 따지기 전에, 왜 이들이 더 이상 진보를 자신의 편이라고 느끼지 않게 됐는지부터 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날의 대화로 아버지의 생각이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 역시 크게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서로를 극우나 내로남불 같은 단어 하나로 규정하기 전에, 상대가 어떤 세상을 살아왔는지 한 번쯤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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