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전세 제도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 많이 계신데요
그 주장 자체는 타당하다고 봅니다
전세 제도로 인한 단점이 많은 게 사실이고
갭투자라는 이름으로 투기의 지렛대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고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린 전세사기의 토양이 된 것도 사실이고
한국 사회의 부동산 구조를 기형적으로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전세를 없애자고 외치는 분들의 분노와 논리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피해자들의 눈물을 생각하면
오히려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주장이지요
그러나 그 제도가 기형적이라는 것과
지금 존재하는 제도를 당장 없애려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좋든 싫든 지금 이 순간
전세 제도에 기대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서울, 수도권만 해도 수백만 가구입니다
그중 자기 돈 100%로 전세 보증금을 마련한 사람도 있겠으나
상당수는 대출을 받아 전세를 삽니다
그 이자를 국가가 각종 대출이니 청년 전세자금이니 하는
복지 제도의 형태로 낮춰주는 경우도 있고
오로지 개인이 부담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여기서 이렇게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월세로 살면 되지 않느냐, 월세 보조를 늘리면 되지 않느냐?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현실의 숫자를 한번 보십시오
같은 집을 전세 대출 이자로 사는 것과
월세로 사는 것을 비교하면
전월세 전환율이 대출 금리보다 높은 게 보통이라
월세 쪽이 매달 나가는 돈이 더 큽니다
게다가 전세 보증금은 어쨌든 돌려받는 내 돈,
말하자면 강제 저축이자 내 집 마련의 사다리 역할을 해왔는데
월세는 한 번 나가면 그걸로 끝인 돈입니다
그 차액을 국가가 보조하면 된다고 하시겠지만
수백만 가구의 월세를 재정으로 메꾸는 게
지속 가능한 규모인지도 의문이고
설령 시작한다 한들 그 복지가
정권이 바뀌어도 살아남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전세 제도가 사실상 사라진다면
일부는 내 집을 마련하여 또 다른 주거 형태로 정착하겠지만
목돈도 소득도 부족한 상당수는 월세로 전전하게 될 것이고
기존 전세 대출의 이자보다
기존 복지 형태의 부담보다
더한 부담이 그들에게 전가된다면
그 고통은 반드시 정치적 효능감으로 발휘될 겁니다
뭐겠습니까?
정권교체죠
이 말을 듣고서
정권교체 협박이냐라고 불쾌해하실 분도 계실 텐데
민심은 이념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매달 내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주거비 앞에서 움직입니다
이건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이고
역대 정권이 부동산에서 넘어진 역사가 그 증거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현재 보수, 진보 정치 구조상
조금만 파이가 뺏겨도
매우 불리한 구조로 간다는 건
지나가는 삼척동자도 아는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리고 정권교체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게 원위치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헌법 개정을 통해 개혁한 게 아닌 이상
정권이 교체되는 순간 모든 게 원위치될 수 있다는 것,
입법을 통해 한 것이라 하더라도
법률기술자를 동원하여
시행령 같은 것에 "등" 한 글자만 추가해도
뒤집을 수 있는 부분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개혁은 개혁대로 무산되고
그 과정에서 고통받은 세입자들의 상처만 남는 겁니다
없애자던 분들이 바라던 세상은 오지도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없애더라도 순서가 있다고요
전세사기를 원천 차단할 보증과 검증 장치를 먼저 갖추고
공공임대와 월세 지원을 먼저 두텁게 깔아놓고
시장이 스스로 월세로 옮겨갈 수 있게
연착륙시키는 것이 개혁이지
지금 그 제도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의 발밑을
갑자기 빼버리는 건 개혁이 아니라 충격요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충격의 청구서는 언제나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날아갑니다
시장의 동태를 살펴보십시오
지금 전세 사는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
전세 제도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걸 원할까요?
원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두려움을 느낄까요?
안도감을 느낄까요?
기대감을 품을까요?
제가 본 대다수 사람들은
제도의 문제점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두려움을 느끼고 걱정을 하더군요
느껴지시는 게 없으십니까?
정권교체의 그림자와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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