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거울 (Mirror), 2026
6월 4일
개미가 내 발 옆을 기어 다닌다.
소리 없이 다니는 그이지만,
무척이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노동을 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인간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런 개미를 상상으로만 짓밟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가 죽는다고 해도, 인간은 조금의 신경도 쓰지 않는다.
세상은 굴러간다.
아무렇지 않게.
메니큐어를 어떤 색으로 바를지에 훨씬 큰 고민을 하고
어떤 음식을 사먹을지가 훨씬 중대한 일이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순리적인 것,
마땅한 것이다.
톡 톡 톡!
오늘도 수많은 개미가 거리에서 밟히며 몸이 터지는 과정에서
조용히 소리를 낸다.
오늘도 수많은 인간이,
헤아릴수조차 없는 생명체들이,
죽는다.
각자의 고유한 소리를 내며.
6월 5일
다자이 오사무(1909~1948)는 삼십구 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애에서 다섯 번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다섯 번째 시도에 생을 마감하였다.
나는 사십 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애에서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는 6월 13일에 생을 마감하고,
나는 어느 봄과 여름 사이에 이야기를 마무리 한다.
따라 할 의도 따윈 전혀 없지만 생각해보면 신기하고 재밌다.
대상이 나 자신임에도,
팝콘을 까먹으며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이랄까.
그의 죽음에는 여러 이유가 섞여 있다.
대중은 단 하나의 정답을 찾기를 좋아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단 하나의 이유를 찾자면
운,
혹은 확률이라고 하겠다.
그가 섬세한 성격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타인을 면밀히 관찰하는 시선을 갖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복막염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파비날을 손쉽게 구할 수 없었더라면,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정신병동에 수감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자살하지 않았거나
혹은 훨씬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발생한다.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인간은 그중 가장 이해하기 쉬운 이유 하나를 골라낸다.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나 공산주의 사상을 접했기 때문이다.'
'의지가 박약하고 책임감이 없는 인간이라 그렇다.'
그렇게 단정하고 나면 편하다.
돈되는 것도 아닌 쓰잘데기 없는 복잡한 생각을 멈출 수 있으니까.
그나마 오사무는 타이틀이라도 있으니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과도하게 미화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사라진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장 납득하기 쉬운 이유 하나를 골라낼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그랬구나,
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실은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6월 6일
거울을 본다.
눈 코 입부터 보인다.
턱, 이마, 머리카락, 귀까지 보인다.
거울 가까이서 내 얼굴을 살펴볼 때
내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눈썹.
나는 눈썹이 진하다.
이마를 구긴 뒤 다시 펴본다.
턱 관절을 좌우로 움직여본다.
입을 벌렸다 닫기를 몇 번 반복한다.
기계 장치처럼 정교하게 움직이는 것이 사뭇 신기하다.
찰나의 순간이면
이 모든 정교한 얼굴도 형태를 잃을 것이다.
지면과 구분되지 않는 무언가가 된다.
3차원의 물체가 다른 상태로 변하는 상상을 한다.
별개의 색들이 하나의 색으로 뒤섞이는 장면도 떠오른다.
두려움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내 몸이지만,
이상하게도 통쾌하다고 해야하나.
약간의 재미라고 해야하나.
그런 것이 느껴진다.
복잡해도 이렇게 복잡할 수가 있을까 싶은
인간이란 생명체가
찰나의 순간에 파괴된다.
엔트로피의 증가라는 우주의 대원칙에
40년 동안이나 역행해왔으니
많이도 버티지 않았는가.
6월 7일
예정된 끝은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의해 보류되고,
다시 예정되고,
다시 보류되기를 반복한다.
1%의 의심도 하지 않았던 날조차
상상도 못한 이유로 미뤄졌다.
여행을 다녀오던 날의 새벽,
나는 결심했었다.
두려웠고,
가능한 한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더 주어졌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 다른 감정이 생겼다.
무시무시했던 그 끝이
이제는 집처럼 느껴진다.
나를 포근히 안아줄 집.
그토록 복잡하고 요동치던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씸플해진다.
S I M P L E !
S M I L E !
6월 8일
하을은 쾌청하다.
구름은 또렷하다.
바람이 불어댄다.
공원에서 아이와 나는 술래잡기를 하며 논다.
어쩜 저렇게 화목해보일까 싶은 눈으로 우리 가족을 쳐다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나만큼 적극적으로 재밌게 놀아주는 사람은 이곳에 없다. 온동네 아이들이 나에게 달라붙으며 말한다.
"저도 같이 하면 안되나요?"
나는 자상하게 웃으며 같이 하자고 말한다.
내일 새벽이 되면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고작 그런 인간이고
나는 고작 그런 운명이다
숨을 헐떡이며 나는 벤치에 앉는다.
옆에서 두 아줌마가 말을 한다.
어찌나 큰 소리로 말하던지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소 보이던 누구 엄마 있잖아. 그 사람 돈도 많더니만 투자하다가 잘못되어서 자살했다잖아. 아니 그 사람도 그 사람이지만 애는 어떻게 하라고. 어쩜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지?! 난 그 사실을 알고나서 자나깨나 그 애만 생각난다니까!"
그들은 그렇게 고인을 비난하고 조롱을 한다.
조금 지나 그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그들 중 한 아줌마가 자식에게 말한다.
"엄마가 놀아주는 시간 아니라고 했지! 지금 네가 노는 시간이지 엄마가 노는 시간이야?!"
예의 교육깨나 받은 척하는 강남 어딘가의 아줌마들 말투였다.
이수지가 풍자한 그 말투.
아니다 그보단 더 앙칼졌다.
자신의 단호함과 말투에 취해있어 보였다.
자식 교육에 무한한 프라이드를 가진듯 보였다.
"너 알아서 놀아!"라는 말을 끝으로 아줌마는 재빨리 뒤돌아서,
다른 아줌마를 향해 활짝 웃으며 총총 걸음으로 걸어 갔다.
그들은 이내 다시 죽은 사람에 대해 신명나게 말을 주고 받는다.
나의 날서고 비판어린 눈이 반짝이려고 할 때쯤
그래서 난 뭐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힘들어서 뒤질려고 하는 주제에 말야.
'그러니까 결국 종류만 다를 뿐이라고..
모든 인간은 그저...'
앉아있던 나에게 아이들이 달려온다.
"아저씨! 저희랑 술래잡기 해요"
나는 한참 뒤에야 그 말을 들었다.
6월 9일
23층.
그곳에 서서 정면을 응시하면,
반대편의 아파트 꼭대기층이 보인다.
우리나라 답지 않게 왜 이렇게 하늘이 맑고 깨끗한지 모르겠다.
우리나라가 늘 이랬다면 사진 작업할 때 사진의 질이 달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어쩜 이렇게 이쁠 수가 있을까.
투명하지만 까만 밤하늘 사이로 반짝 반짝이는 조명들을 보고 있노라면,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주인공이 되어 예술과 낭만을 이야기 해야할 것만 같다.
인상주의 작품 속에 내가 들어가있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다.
생각보다 경계선이 또렷하다.
그런데도 이상할 만큼 몽환적이다.
이제 준비가 되었다.
JUMP!
하기 전 난 지금 이 순간에서조차 아름다움을 느낀다.
흡사 그랜드캐니언에 도착하여 장관을 보는 사람들의 감성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예정보다 빨랐던 출산이 아니었다면 신혼여행으로 갔을텐데.
이 와중에 아쉽나?
한번 생각해본다.
솔직히 아쉽다.
모든 예약을 다 해둔 상태였다.
그곳에서만, 그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겪지 못한 사실은
이 순간에서조차 아쉽게 만든다.
모든 것이 끝나기 전
그곳은 의외로 추울 것 같지 않다.
투명한 어둠은 내 피부가 닿는 느낌 없이
그저 내 온 몸을 포근히 안아 줄 것만 같다.
6월 10일
오늘은 실전의 날이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심장이 너무 두근댄다.
얼굴이 간지럽다.
피가 나게 긁어본다.
목이 너무 탄다.
물을 몇 초마다 계속 마셔도 목이 타들어 간다.
실행 시간을 따로 정해둔 건 아니다.
몇시간 째 눈을 부릅뜨고 있는지 모르겠다.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본다.
몸의 흥분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몸을 뒤틀고, 꼬집고, 때리며 수십 수백번을 시뮬레이션 돌려본다.
마지막의 순간에 다리가 후들거릴 것만 같다.
그러면 안된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쉬운 게 없다.
지긋지긋하다.
목은 여전히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분명 며칠 전만 해도 망설임 없이 실행할 것이라 말했지만,
새벽 3시경 아내는 구토를 대여섯 번 한다.
입을 헹군 뒤 아내는 잠시만 침대에 누운 채 쉬고싶다 말한다.
여자치고 잘 울지 않는 아내가 안아달라고 한다.
그녀는 내 품에서 운다.
진정이 된 이후에도 그녀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아내는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서 처음으로 먼저 사과를 한다.
하고 싶은 걸 하려면 하기 싫은 걸 해야하는 게 맞는데,
자신은 그동안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며 너무 징징댄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녀는 자신을 책망하는 몇 번의 말을 한다.
결국 아내는 4일만 더 연기하자고 한다.
그 모든 정신적인 고통을 다 느끼고 이 짓을 또 겪어야 한다 생각하니 징글징글하다.
온 몸에 땀이 젖어 움직일 때마다 살가죽과 살가죽이 끈적댄다.
새벽 4시 30분에 샤워를 한다.
나는 온 몸을 구석구석 씻는다.
상쾌함을 느낀다.
개운하단 생각을 하며 잠에 든다.
6월 11일
밤이 되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무척 크다.
이 주변에 숲이나 나무가 많은 것도 아닌데 대체 어디서 이런 소리가 이렇게 크고 많이 들리는 걸까.
어제 아침 등교길에 아이가 엄마에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손잡고 가자"
"엄마는 너무 좋은 엄마야"
강한 햇빛을 온 몸으로 받으며 아이는 나뭇가지를 갖고 장난친다.
아이의 살결이 뽀얗고 살이 보기좋게 포동포동하다.
웃을 때 접히는 살들은 곡선의 형태를 띈다.
그는 노트북을 덮었다.
창밖으로 기울어진 햇빛이 거실 바닥을 길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계절은 이미 겨울을 향해 가고 있었으나 오후의 공기에는 아직 얼마간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냉장고 문을 열어 전날 갈아두었던 야채와 과일 음료를 꺼냈다. 컵에 얼음을 몇 개 떨어뜨린 뒤 천천히 흔들었다. 투명한 물방울들이 유리 표면을 따라 흘러내렸다. 한동안 창가에 서서 그것을 마셨다. 잠시 후 그는 거실 한가운데 요가매트를 펼쳤다. 장경인대염으로 꼬박 일 년을 허비한 뒤부터는 운동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몸을 풀었다. 그 시간은 이제 훈련이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웠다. 폼롤러를 허벅지 아래에 두고 체중을 실었다. 이번 겨울에는 다시 다치지 않으리라. 그는 그것만은 다짐했다. 스트레칭을 마친 뒤 통창 앞으로 걸어간 그는 한동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멀리까지 이어진 도시는 평온해 보였다.
오늘은 평지를 길게 달릴까. 아니면 업힐 코스를 선택할까. 겨울이 가까워질수록 업힐은 위험했다. 노면은 미끄러워지고 몸은 쉽게 굳었다. 그러나 내년 투르 드 코리아 아마추어 이벤트 참가를 목표로 하는 이상 지금 하루라도 더 달려야 한다는 생각 역시 변함없었다. 그는 거치대에 걸린 자전거를 꺼냈다. 타이어를 눌러 공기압을 확인하고, 헬멧의 턱끈을 다시 조였다. 그 과정은 너무 오래 반복한 나머지 거의 의식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문득 현관 옆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글을 이마 위로 올린 채 잠시 바라보았다. 얼굴이 다소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수면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거울 속 조명의 문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곧 시선을 거두었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가기 직전, 바퀴 아래에서 무언가 스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개미였을지도 모른다.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으나 이미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일은 그 자체로 끝난 듯 보였다. 페달에 클릿을 끼웠다. 짧은 소리가 났다. 그는 자전거를 앞으로 밀어냈다. 그러다 문득 오늘 적어둔 글을 떠올렸다.
죽음에 관한 짧은 일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거울 (Mirror)
2026
텍스트, 사진, 영상
모든 기록은 기록된 대상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을 읽는 사람의 구조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oros
구조를 다양한 매체로 작업합니다.
글과 사진, 영상 그리고 설치까지.
아래 signature에 남겨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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