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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저는 이 글이 마지막 글일 것 같네요.

Aabc· 2026.07.09 01:20· 조회 0
솔직히 저는 글은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처음부터 누굴 이기려고 쓴 글은 아니었습니다. 2030 입장에서 왜 지금의 정치 담론이 더 이상 예전처럼 설득되지 않는지, 왜 젊은 세대가 기존 진영논리에 피로감을 느끼는지, 왜 “그래도 우리 편이 낫다”는 말에 더 이상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지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방식이 토론도 아니고, 반박도 아니고, 빈 댓글이라면 솔직히 더 말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내용이 틀렸으면 반박하면 됩니다. 근거가 부족하면 근거를 요구하면 됩니다. 논리가 약하면 논리로 깨면 됩니다. 그런데 아무 말 없이 빈 댓글만 쌓아서 글을 밀어내는 방식은, 결국 “듣기 싫은 말은 없는 말로 만들겠다”는 뜻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말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실제 방식은 불편한 목소리를 다수의 침묵으로 눌러버리는 겁니다. 저는 이 지점이 가장 이상합니다. 권위주의를 그렇게 비판하던 분들이, 정작 자기들이 불편한 이야기를 들을 때는 굉장히 권위적으로 변합니다. 검열을 싫어한다면서, 마음에 안 드는 말은 빈 댓글로 묻어버립니다. 표현의 자유를 말하면서, 자기 진영에 거슬리는 표현은 토론 이전에 배척합니다. 이게 정말 건강한 토론 문화입니까? 표현이 거칠게 들릴 수는 있겠지만, 이런 모습은 북한 공산당식 폐쇄성과 본질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물론 여기가 북한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방식이 닮았다는 겁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불편한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리하는 태도. 위에서는 늘 정의와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내부의 다른 목소리는 허용하지 않는 구조. 체제에 불편한 질문은 토론하지 않고 지워버리는 방식. 그게 북한 고위부의 정보 폐쇄성과 얼마나 다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귀 닫고 눈 감고 아웅하는 방식은, 겉에 붙은 이름이 무엇이든 결국 폐쇄성입니다. 저는 기성세대 전부를 비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지금 2030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왜 예전처럼 진보, 보수라는 이름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지. 왜 내로남불과 위선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왜 “저쪽보다는 낫잖아”라는 말에 더 이상 설득되지 않는지. 그런데 역시 잘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젊은 세대가 말을 하면 “어리다”, “세상을 모른다”, “언론에 세뇌됐다”, “갈라치기다”라는 말로 정리됩니다. 반대로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향해 훈계하면 그것은 경험이고 지혜가 됩니다. 이 비대칭이 문제입니다. 본인들은 젊은 세대에게 끝없이 가르치려 하면서, 정작 젊은 세대가 무엇을 느끼는지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듣는 척은 하지만, 결국 이미 정해둔 결론 안에서만 해석합니다. 그러니 대화가 될 수가 없습니다. 2030이 기존 담론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보수화돼서가 아닙니다. 극우화돼서도 아닙니다. 그냥 너무 많이 본 겁니다. 입시 문제, 부동산 문제, 미투 문제, 음주 문제, 공정 문제, 권력형 위선. 말로는 정의를 외치면서, 자기 편 문제가 되면 갑자기 기준이 느슨해지는 장면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그걸 지적하면 항상 같은 말이 돌아옵니다. “그래도 저쪽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 말은 이제 설득이 아닙니다. 그냥 면죄부처럼 들립니다. 2030은 더 이상 그 문장 하나로 모든 모순을 덮어주지 않습니다. 빈 댓글도 같은 맥락입니다. 반박은 어렵고, 감정은 상하고, 그렇다고 인정은 하기 싫을 때 가장 쉬운 방식이 침묵으로 밀어내는 겁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압박은 합니다. 토론은 피하지만 다수의 힘은 행사합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은 상대를 설득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확신만 줍니다. “아, 이 사람들은 정말 듣기 싫은 말은 안 듣는구나.” “불편한 이야기는 토론이 아니라 삭제 대상으로 보는구나.” 그 확신이 쌓이면 세대 간 대화는 끝납니다. 그리고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앞으로 10년, 길어도 20년이면 사회의 중심은 지금의 2030 쪽으로 넘어옵니다. 투표권도, 노동시장도, 여론의 중심도, 소비력도 결국 세대교체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때 가서 왜 젊은 세대가 말을 듣지 않는지, 왜 기존 진영을 신뢰하지 않는지, 왜 기성세대의 도덕적 훈계에 냉소적인지 묻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화의 문을 먼저 닫은 쪽이 누구였는지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드러납니다. 지금은 빈 댓글로 글 하나를 밀어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대 전체의 감각까지 밀어낼 수는 없습니다. 지금 불편하다고 외면한 문제는 결국 더 큰 반작용으로 돌아올 겁니다. 저는 오늘 그걸 확인했습니다. 여기서는 어떤 말은 내용 이전에 이미 배척 대상이 됩니다. 불편한 문제 제기는 토론으로 가지 못하고, 감정적 방어와 집단 침묵으로 처리됩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여전히 민주적이고 깨어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 점이 가장 무섭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늙는 게 아닙니다. 다른 목소리를 들을 능력을 잃을 때 늙는 겁니다. 자기 세계관을 의심하지 못할 때, 사람도 집단도 늙습니다. 오늘 저는 그 늙어버린 구조를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설득하려 하지 않겠습니다. 각자 믿고 싶은 세계에서 살면 됩니다. 다만 나중에 2030이 왜 등을 돌렸는지, 왜 더 이상 기성세대의 말에 반응하지 않는지, 왜 기존 진영논리가 통하지 않는지 의아해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듣지 않은 건 젊은 세대가 아닙니다. 먼저 귀를 닫은 쪽이 누구였는지는, 결국 시간이 증명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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