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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문제는 BTS가 아니라 팝음악이야.
21:00 KST - The New York Times - 뉴욕타임즈에 기고 사설란에 뉴욕대학교 음악교수 및 클라이브 레코딩 연구소 선임연구원인 댄 챠니스 교수의 기고문을 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슈퍼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새로 신설된 그래미 어워즈의 ‘아시아 팝 음악 공연’ 부문에 항의하며, 대히트 앨범 ‘아리랑’을 후보심사제출에서 철회했다. 오랫동안 미국 주류 스타덤을 목표로 해온 이 그룹이 그래미 어워드를 상대로 행한 이 조치는 주목할 만한 행보이다. BTS는 성명을 통해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는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BTS와 많은 팬들은 그래미의 <아시아 팝 음악 공연 부문>신설을 K-POP 그룹들의 커지는 영향력과 인기를 그레미 어워즈 본상 - 제너럴 필즈(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 및 팝 퍼포먼스 상 -에서 제외하려는 레코딩 아카데미의 시도로 보고 있으며, 새로 생기는 상이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대중음악들의 성장을 인정하는 상이라는 그래미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BTS는 틀에 박힌 분류로 정의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당연히 거부했다.
그래미 어워즈는 수년 동안 새로운 상을 만들어왔다. 1959년 처음 그래미 시상식엔 28개 부문 시상이더니 지금은 무려 100여개에 달한다. 이는 R&B, 라틴, 가스펠, 포크, 뉴에이지 등 음악 산업의 성장 및 양상을 반영한 확장에 따른 것이다. 일부는 정말로 장르가 확장되어 별개의 부문으로 시상을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들이 새로 신설되어 시상되는 것은 대부분 음반 산업의 역사적 분리 정책에서 비롯된 잘못된 일이다. 이런 분리는 심지어 흑인 아티스트와 백인 아티스트가 음악적으로 유사한 노래를 불렀어도 서로 다른 장르와 시장으로 나뉘는 잘못된 결과를 가져왔다.
오늘날까지도 음반사 경영진들, 시상식 심사위원회, 라디오 편성 담당자들은 인종, 출신민족 배경, 특정 장르의 경계에 대해 업계의 선업견을 깨부수고 한계에 도전하는 아티스트들을 배제할 방법을 찾아내고 성공해 왔다. 그들의 노력은 그래미 어워즈가 허구언날 새로운 상을 툭하면 새로 신설하는 것을 보면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비욘세가 흑인 여성 최초로 <최우수 컨트리 앨범상>을 수상한 지 몇달뒤 그래미는 해당 부분을 <최우수 전통 컨트리 앨범상> 과 <최우수 현대 컨트리 앨범상> 두 개로 쪼갰다. 올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수상한 후 AMA, 빌보드, 그래미는 아시아팝 부분을 허겁지겁 신설했다.
그래미 시상식의 투표권자들이나 편성 담당자들이 특정 장르를 특정 상에 가둬버리는 인식을 가지도록 유도할 경우 해당 아티스트들이 주류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당연한 것 아닌가? 평범한 대중들도 아는 것을 왜 그래미는 모르는가? 오늘날 대중음악 시상식, 공연섭외, 광고 계약, 스트리밍, 방송 출연, 홍보 등에서 제일 목소리가 크고 성공한 주류 음악은 무엇인가? 바로 팝 음악이지 않은가?
이쯤되면 이제 한번 물어보자. 대체 팝이란 무엇인가? 이름 그대로의 의미에서 보듯이 팝은 "인기 있는 것들의 집합체"를 의미하지만 업계를 주무르는 권력자들은 그 집합체를 자기네 마음대로 주무르고 조립하고 해체하며 구성한다. 입맛대로 홍보할 대상을 선별하고 그들 멋대로 무엇이 팝이고 무엇이 팝이 아닌지를 규정한다. 솔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팝을 마치 실체가 있는 듯한 장르음악으로 취급하지만 사실 그 누가 팝을 정의하면서 지속적인 스타일적 특징을 명확히 제시해 본 적이 있는가?
그래미 레코딩 아카데미의 시상 규정중 댄스 음악을 규정하는 "리드미컬한 추진력, 역동적인 고조와 하강을 포함하는 댄스가 포함되어야 함" 과 같은 장르는 그나마 구체적으로 설명이 와닿는 부분이기라도 하다. 반면 팝 퍼포먼스 부분을 규정하는 자격 요건은 무엇인가? 그냥 한문장이다. 그 곡이 팝음악이어야 함.
음악산업의 근본적인 부조리, 모든 문제를 일으켜놓고는 자기는 마치 무고한 방관자인양 팔짱끼고 뒤에서 턱 허니 폼잡는 양 행동하는,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바로 "팝음악" 그 자체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지금 빌보드 핫100 차트 상위 5개 곡을 들어보고 그 곡들이 실제로 어떤 장르에 속하는 곡인지 한번 스스로 판단해 보라. 엘라 랭글리, 테일러 스위프트, 스텔라 레프티의 곡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만큼, 다양한 색채의 컨트리 음악, 컨트리 록이라 판단될 것이다. 그러나 몇년전만 해도 사브리나 카펜터가 80년대 초반 포스트 디스코 펑크 스타일을 재해석한 곡들이 차트를 휩쓸었다. 그보다 몇 년 전에는 트랩과 레게톤이 차트의 주류였다. 이제 아시겠는가?
모든 대중음악은 그 다른 어딘가, 무엇인가로부터 비롯되어왔다. 모든 음악에는 뿌리와 기원이 있었다. 한때 수많은 장르 음악 각각은 팝으로 관주되지 않았으나, 어느 시점이 되자 팝이 되어있었다.
미국 팝은 포용과 통일이 아니라 배제를 통해 형성되어왔다. 가장 큰 피해자들은 흑인 아티스트들인데 이들은 라디오 방송국 편성과 공연 무대 출연에서 배제당했던 반면, 같은 스타일과 노래를 연주하는 백인 연주자들은 자유로웠다. 이유는 그들이 팝 음악을 한다는 것이었다. 배니 굿맨과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들의 재즈나 R&B에서 크로스오버로 평가받도록 요구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팝이 본래 그들의 음악에 출발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년동안 동일한 재즈나 R&B를 부른 흑인 아티스트들은, 명백히 팝 스타들인데도 팝 아티스트로 인정받지 못했다. 마이클 잭슨의 1980년 앨범 <Off The Wall>이 그래미에서 받았던 천대와 모욕이 그 명확한 예이다.
우리는 안다. MTV조차도 이런 더러운 술수의 선봉에 섰다는 것을. CBS 레코드가 길길이 날뛰며 소속 아티스트들을 MTV에서 전면 철수시키겠다고 강경하게 항의하기 전까지, MTV는 죽어도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앨범을 자사 채널에서 못틀어주겠다며 버텼다. 심지어 당시 빌보드 최다 판매 앨범이었는데도 말이다. 굿맨과 프레슬리에게는 앞다투어 스윙이나 로큰롤의 왕이라는 칭호를 헌사하며 무릎을 꿇고 경배했지만 마이클 잭슨에게는 조금의 존경심도 보이지 않았다. 팝 음악계가 자신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정확히 안 마이클 잭슨은 스스로를 "팝의 황제"라고 선언했다. 마이클 잭슨은 정확히 진실을 알고 업계의 부도덕을 꽤뚷고 있었다.
미국의 팝 음악은 백인성의 연장선에서, 그와 똑같이 작동한다. 오직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느때는 팽창했다 다른 어느때는 수축하고, 명확하게 기준과 경계를 나누기를 거부한다. 그러면서 지나치게 민족적인 요소가 담긴 음악은 보편적인 매력이 없다며 우리에게 근엄하게 설교한다. 모든 것이 교묘하다. 흑인 음악의 스타일을 지적하면서 문화적 맥락을 제거하면서 보편적인 것이 좋은 것이라며 찬양한다. 흑인 음악에서 문화적 맥락을 걷어내면 남는것이 무엇인가? 이게 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러면서 흑인 음악 창작자들에게는 음악 산업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분야에 공평하게 접근할 기회는 거부한다. 이건 또 무슨 위선이란 말인가?
K-POP의 놀라움은 R&B, 댄스, 힙합, 록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팬과 관객에게 소개함으로서 그 존재성을 보여주었으며 흑인 음악에 뿌리를 둔 수많은 장르 중 하나이다. 이번 BTS의 그래미 어워즈 출품거부는 미국 팝 음악의 중심성(그리고 그것에 내재된 인종차별)에 대한 도전으로도 읽힐 수 있겠지만 더 나은 성찰과 현실을 고치려는 목표를 생각한다면 많은 아시아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에게도 이러한 부당한 일이 닥치기 전까지는 아예 항의조차 시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후발주자, 홍보를 앞둔 신인 아티스트들을 잔뜩 짊어진 많은 대형 아시아 엔터 기업들은 이러한 체제에 맞선 싸움을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아티스트의 자리에 오른 BTS는 아마도 이러한 반성과 변화를 촉발시킬 수 있는 역량과 힘을 가진 유일한 한국 음악 그룹이다. 그렇다면 이번기회에 아티스트들과 그들 소속사 기업들이 힘을 합쳐 음악 업계를 대상으로 이런 교묘한 음악장르 니 소비자 통계명목 따위로 포장된 인종차별을 끊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BTS 이던, 배드 버니(Bad Bunny)든, 모든 아티스트는 어떤 필터링이나 자격 요건 없이 가장 큰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누릴 자격이 있다. 해결책은 특정 시장이나 장르를 없애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포크 음악은 분명히 존재하는 장르이며, 별도의 시상식이나 기관이 포크 음악계에 도움이 된다면 그건 좋은 일일 것이다. 문제는 바로 미국의 팝 음악이다. 팝 음악이 가장 큰 주류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장에 진입하는 기준은 여전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매니저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아티스트와 그들의 매니저들은 음반사들이 아티스트들을 팝 부문에서 배제하는 방식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음반사와 아티스트들은 스트리밍 서비스의 플레이리스트 담당자들과 라디오 방송국의 편성 담당자들에게, 왜 어떤 아티스트에게는 ‘팝’이라는 용어를 적용하고 다른 아티스트에게는 적용하지 않는지에 대해 따져 물어야 한다. 그래미 레코딩 아카데미는 아티스트들이 요구하지도 않는 새로운 시상 부문을, 특히 인종, 국적, 언어를 기준으로 한 부문을 더 이상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 모든 부문은 해당 부문의 수상자들을 더 크고 수익성이 높은 시장으로부터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 만든 ‘팝 퍼포먼스’ 상이나 팝 플레이리스트가 음악적·미학적 측면에서 정의될 수 없다면, 애초에 그런 상들은 존재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팝’은 기술계에서 사용하는 또 다른 혐오스러운 단어인 ‘콘텐츠’만큼이나 진부해진 용어다. 이러한 공허함은 음악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로지 ‘팝’이 되고자만 하며, 보편성을 겉치레로 삼고, ‘콘텐츠’가 되는 데 만족하는 아티스트들은 일종의 공허함을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팝 음악 대부분이 잘못된 선택처럼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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