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밴드들의 특이한 해체 사유들
(미션 오브 버마)
밴드들의 해체 혹은 은퇴 이유는 유형으로 나눠보면 의외로 큰 줄기들로 나뉜다.
토킹헤즈나 핑플처럼 불화로 갈라지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일 테고, 레이블문제가 엮였을 수도 있고, 건즈나 리버틴즈처럼 약물 문제가 심했을 수도 있고, 뉴트럴 밀크 호텔처럼 유명해지는 것 자체를 꺼려할수도, 시드 배럿처럼 정신병이 너무 심해졌을 수도, 해체는 끝끝내 가진 않았지만 제네시스처럼 방향성 차이가 커지는 경우도 있겠다.
그런데 몇몇 밴드들은 이러한 대분류에 해당하지 않고, 가지각색의 독특한 이유들로 활동을 종료한 경우들이 있다. 이번 글에선 대표적인 여덟 밴드에 대해 알아보자.
1. 미션 오브 버마
사유: 청력 저하
https://www.youtube.com/watch?v=63zf1WKx-jE
1980년대 대표적인 포스트 하드코어 밴드 미션 오브 버마는 라이브할때에 거의 하쉬 노이즈 월 수준으로 노이즈를 쏟아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들은 소리가 반사되는 작고 밀폐된 지하 클럽에서 앰프를 최대 출력으로 올려놓고 매번 연주했으며, 이때 측정되는 수준은 제트기가 이륙할때의 데시벨과 맞먹는 120데시벨이었다고 한다. 인간의 귀는 85데시벨 이상이면 청각세포가 파괴되기 시작하므로... 관객들도 아니고 밴드가 이어플러그도 없이 이런 연주를 매 공연마다 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긴 하다.
또 밴드는 일반적인 악기들말고도 실시간으로 테이프 조작을 하여 그들의 거친 녹음을 왜곡시키고 증폭해서 내보내기까지 했는데, 이미 연주로도 정신나갈 것 같은데 즉석으로 노이즈까지 제작해서 겹쳤다고 하면 그냥 귀 고문 수준.
밴드의 기타리스트 로저 밀러는 24시간동안 금속 소음이 느껴지는 심각한 이명 증상을 앓았으며, 이는 수면 장애와 물리적 통증까지 유발했다.
귀마개를 귀에 쑤셔넣고 산업용 이어플러그를 아무리 장착해도 물리적 진동이 지속되자, 밴드는 한 장의 EP와 한 장의 정규, 그리고 당시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라이브 앨범 한장만을 남기고 해체하게된다. 이 라이브 앨범은 매우 추천한다, 필자가 되게 좋아하는 음반 중 하나.
2. 디스 히트
사유: 인도 문화 배우려고
https://www.youtube.com/watch?v=MDq9YHcIip0
포펑을 조금이라도 팠다면 모를 수 없는 밴드 디스 히트.
밴드의 베이스 가레스 윌리엄스는 "Deceit" 를 발매할 무렵엔 인도 문화, 힌두교, 시타르를 이용한 전통 음악들에 매우 매료되어 있었는데, 결국 음악적 원천을 찾기 위해 홀연히 인도로 떠나버린다.
특히 인도의 전통 무용인 "카타칼리" 를 배우러 갔는데, 이게 중국 경극, 일본 가부키랑 함께 동양 3대 전통 연극으로 불리는 예술이라고 한다.
화려한 분장, 힌두교의 권선징악적인 서사시 구조가 품은 오리엔탈리즘에 몸을 맡기고 가레스가 떠나자 남은 멤버들은 비공식 멤버들로 투어를 돌고자 했으나, 가레스의 빈자리를 견디지 못하고 1982년 투어를 끝으로 해체한다.
참고로 2001년 원년멤버로 재결합 시도가 있었으나 가레스가 연습 한달만에 암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끝내 완전체 복귀는 이뤄지지 못한다.
3. 빅 블랙
사유: 로스쿨 합격
https://www.youtube.com/watch?v=by2YSZ3lyiE
알비니를 필두로 만들어진 노이즈록 밴드 빅 블랙은 예나 지금이나 인디에서의 위상은 최상급으로 대접받는다. 공연을 열때마다 클럽들이 매번 매진되었고 당대 노이즈쪽 인디중 드물게도 순수익이 꽤 쏠쏠하던 정도였다고.
그런데 1987년 기타를 맡은 산티아고 두랑고가 서른살 나이로 로스쿨에 합격하는 바람에, 알비니는 바로 밴드를 해체하기로 결정한다.
해체를 미리 공표하고 만든 마지막 앨범이 바로 "Songs About Fucking" 앨범이며, 1987년 8월 11일 마지막 공연에서 악기들을 부수고 퇴장한다. 이때 관객석에는 그런지 식구들 - 커트 코베인, 머드허니의 마크 암, 사운드가든의 킴 타일이 있었다고.
산티아고는 이후에 실제로 전문 변호사가 되었고 취미로 종종 음악계에 복귀하곤 했다.
4. 크라스
사유: 시한부 1984 프로젝트
https://www.youtube.com/watch?v=o2qfiB69Fa8
아나코 펑크의 시조 크라스는 사실 결성때부터 1984년에 밴드를 종료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에서 따와, 거대 권력이 대중을 통제하는 빅 브라더의 세계가 실제 현실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우는 밴드라는 취지로, 운명의 해인 1984년이 되면 미련없이 떠난다는 것.
치밀하게도 앨범의 카탈로그 숫자들까지 자체적으로 암호를 숨겨두었는데, 1979년 "Stations of the Crass", 1981년 "Penis Envy", 1983년 "Yes Sir, I Will" 앨범은 각각 521984, 321984, 121984, 즉 1984년 까지(to(2)) 5년, 3년, 1년 남았다고 써놓았다.
막판에는 어차피 해체할 거, 포클랜드 전쟁을 정면으로 비판하다가 외설물 출판 위반 혐의로 고소 당하기도 했고, 1984년 마지막 공연까지 대처 정부에 맞선 광부 파업 지지 자선 공연으로 커리어를 마무리 지었다.
멤버들은 해체 후 다른 밴드로 가기도, 아방가르드 좌파 예술계에 몸을 담기도 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크라스의 마지막 정규 "Yes Sir, I Will" 는 마지막이라고 온갖 노이즈 실험을 때려박은 앨범으로 정말 들어볼 가치가 있다.
5. 카멜레온즈
사유: 매니저의 사망
https://www.youtube.com/watch?v=4q90QnDnacA
멤버가 사망하여 해체하는 밴드들은 많다. 그러나 매니저가 사망했다고 해체까지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고딕 록 밴드 카멜레온즈가 이런 케이스로, 그들의 매니저의 토니 플레처는 제 5의 멤버라고 봐도 될 정도로 밴드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다 해결해주고 비즈니스를 넘어 멤버들을 정신적으로 케어하고, 첫 계약을 따내기부터 투어 일정의 모든 조율까지 도움을 줬던 인물이었다.
그러던 1987년 신보를 녹음 중에, 토니 플레처는 갑작스런 심장 문제로 세상을 떠나고, 밴드를 유지할 동력도, 갈등을 중재해 줄 사람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멤버들은 녹음 세션이 끝나자마자 팀의 해체를 공식 선언한다.
1990년 그들의 마지막 앨범인 EP "Tony Fletcher Walked on Water" 은 앨범 제목에서도 직관적으로 보이듯 토니 플레처에 헌사하는 앨범이며, 예정된 미국 투어는 토니가 없는 투어는 상상할 수 없다며 전격 취소해버린다.
6. 모르핀
사유: 무대 도중 사망한 프론트맨
https://www.youtube.com/watch?v=_Blq8WQvHOM
2줄짜리 슬라이드 베이스, 바리톤 색소폰, 드럼이라는 독특한 악기 구성으로 진정한 "얼터너티브" 재즈록 정신을 보여준 모르핀은 1999년 7월 3일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이탈리아의 팔레스트리나에서 야외 공연을 가게된다.
두 개의 곡이 마무리 되고 프론트맨 마크 샌드먼은 다정한 멘트를 관객들에게 건낸 후 세번째 곡을 시작하려는 찰나, 갑자기 뒤로 그대로 쓰러진다.
샌드먼은 평소에도 몽환적이고 독특한 액션을 자주 선보이던 아티스트였기에, 관객들은 그것이 곡의 몰입을 높이기 위한 강렬한 오프닝 퍼포먼스인 줄 알고 크게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그러나 드럼을 치던 빌리 콘웨이와 색소폰의 다나 콜리가 즉시 연주를 멈추고 그에게 달려가 상태를 확인하면서 공연장은 순식간에 충격에 휩싸인다.
향년 47세, 의료진이 급히 가서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그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생전 녹음들을 모아 만든 2000년 앨범 "The Night" 을 끝으로 밴드는 해체하게 된다.
이쪽도 마찬가지로 멤버가 사망해서 해체할 수는 있으나 말 그대로 무대에서 사망한 것이니, 예상치 못한 급작스럽고 특이한 해체인 셈.
밴드는 몇년 뒤 다시 이탈리아에 방문해, 미처 끝맺지 못한 공연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샌드먼을 추모하는 무대를 펼친다.
7. 섀그스
사유: 아버지의 사망
https://www.youtube.com/watch?v=XR9d4ESlpHY
일단은 아버지의 사망이긴 하지만, 익히 알려진 유명한 일화처럼 결성부터 해체까지 매우 이상한 밴드였다.
아버지 오스틴 위긴의 어머니, 그러니까 밴드의 할머니는 젊은 시절 손녀들의 미래에 대해서 점을 쳤는데, 오스틴은 딸기가 많은 곳에 사는 여인과 결혼할 것이다, 오스틴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두 아들을 얻을 것이다 라는 두 예언이 우연찮게 들어맞아 버리자 오스틴은 어머니의 말을 너무 맹신한 나머지, 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학교를 중퇴시키고 마지막 예언: "오스틴의 딸들은 미래에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유명한 록 밴드가 될 것이다" 는 말을 실현시키고자 한다.
매일매일 엄격한 연습을 거쳤음에도 밴드는 실력이 늘지 않았고, 오스틴이 사비까지 털어서 만든 "Philosophy of the World" 앨범을 유일하게 내고선 아버지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딱히 음악을 할 이유가 없어져서 그대로 해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앨범은 프랭크 자파의 극찬을 시작으로 아직까지도 컬트 클래식으로 당당히 대우 받긴 하니, 결과적으론 어느정도 예언이 들어맞긴 한 것.
8. 몽크스
사유: 위문공연을 피하려고
https://www.youtube.com/watch?v=AnSrw8rE-dU
최초의 펑크 밴드들 중 하나로 꼽히는 전설적인 프로토 펑크 밴드 몽크스는 원래 참전 용사 출신으로, 밴드 결성 즈음에는 주독미군 복무를 마치고 당시 월남전이 비판적이던 서독의 체류 비자를 따 독일에서 머물던 상황이었다.
군대 내부의 부조리한 생리와 징집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알던 몽크스는 월남전을 강하게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은 곡들을 발표하면서 활동했는데, 그들의 매니지먼트는 그들의 반전 의식을 이용해 이런 반전 노래를 전쟁 한복판에서 부르면 엄청난 흥행을 할거라고 예상하고 베트남 전장으로 위문 공연을 가라는 일정을 잡아버린다.
당시 위문 공연 갔다가 수류탄에 맞아 죽는 사건이 있던 직후였기에, 드러머 로저 존스톤은 베트콩한테 납치당하고 화형당한다는 망상까지 하게될 정도로 불안에 떨었고, 결국 일부 멤버들이 공연을 하루 남기고 미국으로 귀국하며 탈주 해버리면서 그대로 해체 해버린다.
이런거 보면, 참 싸우고 해체하고 법적 문제 얽히고 하는건 흔한 해체 사유라고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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