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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혈우병의 역사
1. 빅토리아 여왕의 직계와 영국 왕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부모 가계에서는 혈우병 병력이 알려진 바 없습니다. 후대 연구에서는 부친인 에드워드 왕자가 50세의 고령일 때 여왕이 태어난 점과 관련하여, 정자에서 발생한 신규(de novo) 돌연변이가 원인이었을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보고 있습니다.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은 현대에 확인되는 유럽 왕실 혈우병 계통의 최초 보인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녀의 자녀들은 유럽 각국 왕실로 정략결혼을 하며 유전자를 퍼뜨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왕의 막내아들인 레오폴드 왕자가 혈우병을 물려받았으며, 그는 1884년 30세의 나이에 넘어져 발생한 뇌출혈로 사망했습니다.
2. 독일 왕실로의 전파
혈우병 유전자는 여왕의 딸들을 통해 독일 지역 왕가로 스며들었습니다. 여왕의 셋째 딸 앨리스 공주는 보인자로서 헤센 왕가로 유전자를 전했고, 이로 인해 그녀의 아들 프리드리히가 불과 2세의 나이에 창문에서 추락한 후 뇌출혈로 요절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한편 프로이센 왕가로 시집간 장녀 빅토리아 공주의 경우, 가계 내에서 혈우병 유전자가 전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실제 혈우병 환자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3. 스페인 왕실의 파탄과 비극
여왕의 막내딸 베아트리스의 딸인 빅토리아 에우헤니아가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와 결혼하면서 혈우병 유전자가 스페인 왕실로 유입되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알폰소와 막내 곤살로는 자동차 사고로 인한 출혈 합병증으로 각각 요절했습니다. 이 유전병은 후계 구도를 흔들어, 장남 알폰소는 건강 우려와 귀천상혼으로, 차남 하이메는 청각장애에 따른 압박으로 계승권을 포기하면서 왕위는 셋째 아들 후안 계통으로 넘어갔습니다. 나아가 부부 관계도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결혼 전부터 방탕했던 알폰소 13세는 발병 원인을 왕비 탓으로 돌리며 외도를 이어갔고, 이에 맞선 왕비와의 갈등은 회복 불능 상태가 되었습니다. 결국 1931년 왕정 폐지 후 망명하면서 두 사람은 별거에 들어갔고 각자 삶을 마감했습니다.
4. 러시아 왕조의 몰락과 유전자의 종말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인 알렉산드라 황후를 통해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로 유전자가 전달되었고, 외아들 알렉세이 황태자가 혈우병 환자로 태어났습니다. 황후는 아들의 출혈을 멎게 하기 위해 괴승 라스푸틴을 깊이 신뢰하게 되었는데, 라스푸틴의 정치 개입은 황실의 권위를 크게 훼손하며 제정 러시아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결국 제1차 세계 대전과 경제 붕괴 등의 상황 속에서 1918년 로마노프 일가족 전원이 처형되면서 러시아 왕가의 혈우병 유전자 계통은 강제로 끊어졌습니다. 후대의 DNA 유해 조사를 통해 당시 실종 루머가 돌던 자녀를 포함한 전원이 처형되었음이 최종 확인되었으며, 유해의 DNA 분석에서는 $F9$ 유전자 변이가 확인되어 이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질환이 B형 혈우병(9번 응고인자 결핍)이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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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새로운 돌연변이에서 시작된 혈우병 유전자는 하필이면 대영제국 최전성기의 여왕이 된 빅토리아의 몸을 통해 역사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이후 그녀의 후손들은 유럽 각국 왕실과 혼인하며 이 유전자를 여러 왕가로 퍼뜨렸고, 그 결과 하나의 유전적 변화는 왕위 계승, 국제 정략결혼, 왕실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이어진 비극적인 요절과 계승권 포기,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단절 등을 거치면서 빅토리아 여왕에서 시작된 혈우병 계통은 현재 확인 가능한 유럽 왕실 직계에서는 사실상 소멸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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