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유시민 작가에게
유시민 작가님. 저는 당신이 오래 지켜 온 자리와 그 무게를 압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쓴소리를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며, 대통령이라 해서 예외일 수 없겠지요.
그러니 비판 자체를 두고 시비를 걸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지난 15일 이후 오늘까지 작가님이 내놓은 말들은 비판이라기보다 단정에 가까웠고, 저는 그 단정에 답하려 합니다.
먼저, 사실입니다
당신은 검찰개혁이 1년 넘게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두고 "대통령이 수사·기소 완전 분리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것 말고 다른 설명은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있을 수 없다.' 이 한마디로 다른 여러 가능성과 설명의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대통령이 공개된 자리에서 해 온 말은 작가님의 주장과 정면으로 어긋납니다.
대통령은 취임 30일 회견에서 "동일한 주체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가져서는 안 된다"고 했고,
취임 100일 회견에서는 "수사·기소 분리가 제일 중요한데 그건 하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보완수사권을 두고도 "원칙적으로 폐지하되 예외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지켜 왔습니다.
청와대 대변인마저 대통령의 수사·기소 분리 원칙은 흔들린 적이 없다고 공식으로 확인했습니다.
묻겠습니다. 대통령이 단 한 번이라도 "보완수사권을 검찰에 넘기자"고 말한 적이 있습니까?
저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대통령이 그것을 원한다고, 그것 말고는 설명이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사람이 공개적으로 해 온 말을 모두 젖혀 두고 그 속마음을 작가님이 대신 읽어 낸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동기에 대한 추정이며, 작가님은 그 추정을 사실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뿌리는 어디입니까
검찰개혁이 더딘 진짜 이유는 청와대가 아니라 당에 있다! 이게 제 판단입니다.
개혁을 내건 정부를 정작 당이 입법으로 받쳐 주지 못하는 데서 이 답답함이 나옵니다.
김민석 전 총리는 "지난 1년 동안 국정 지지를 정당 지지로 연결시키지 못한 건 사실"이라며,
국무회의에서 결정이 나와도 당이 신속하게 뒷받침했다는 느낌을 준 1년은 아니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원론으로 보면 당과 청와대는 분리되는 것이 옳지요. 동의합니다.
그러나 최근까지 벌어진 사태의 원인은 건강한 분리보다, 당이 정부와 발을 맞추지 못하고 따로 도는 어긋남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법안을 끌고 가야 할 당 지도부가 제 책임을 다했는지부터 묻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진정 검찰개혁을 바랐다면, 겨눠야 할 곳은 미흡한 법안을 대안이라고 가져 온 당과 의원들이어야 했습니다.
일단 검찰개혁부터 하고 보자. 그들에게서 모든것을 빼앗아 놓고 그 다음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가서 미흡한 점을 수정하자.
이게 민주당 법사위 강경파들의 주장입니다.
작가님은 과연 이 논리로 국민들을 설득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최근의 장윤기 사건은 굳이 사례로 들지 않겠습니다.
검찰개혁 좋습니다. 하지만 경찰 권력 또한 견제되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대책이라고 내세우는 것들이 부실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정도의 법안으로는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대안과 논리가 더 탄탄해야 진정 우리가 원하는 개혁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대통령도 비슷한 고민을 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국회에게 맡기겠다. 좀 더 좋은 안을 가져오라고 하신 말씀이 이런 고민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이만한 의석을 언제 다시 쥘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은 아마 지금을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있을 겁니다.
개혁을 완성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당은 따로 놀고,
그 절박함 속에서 총리였던 김민석을 당대표로 세워 당과 청와대가 한 몸으로 개혁을 마무리하기를 바랐던 것 아니겠습니까.
작가님은 이것을 '명픽'이라 부르며 사욕으로 읽었지만, 저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절박함으로 읽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작가님도 저도 확언할 수 없습니다.
저도 작가님처럼 추측을 해 보겠습니다
작가님이 대통령의 머릿속에 있지도 않은 '재건축 구상'과 그것을 받치는 '팀'을 상상해 그림을 그렸으니, 저에게도 그럴 자유가 있겠지요?
작가님은 조국혁신당과 민주당의 합당에 찬성하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당신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문조털래유' 같은 조롱이 돌았고, 당신을 겨눈 공격도 있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지금의 이 격한 비판이, 그때 긁힌 자리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까.
제 추측이 무례하게 들린다면, 남의 속마음을 확신에 차서 말하는 일이 상대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의 한마디에 민주진영은 두 쪽으로 갈라졌습니다.
이 균열이 대한민국에, 그리고 앞으로 진보진영에 무엇을 남길지 당신은 아마 다 헤아리지 못할 것입니다.
매불쇼에 나와, 마치 대통령의 속을 다 들여다본 사람처럼 인상을 팍 써가며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낼 때,
저는 그 모습이 낯설고 편치 않았습니다.
남의 마음속을 자기가 다 안다고 여기는 자리에서 나온 말은,
아무리 그럴싸한 논리의 옷을 입어도 끝내 독하게 들립니다.
저는 그날의 당신에게서, 논리보다 독기를 먼저 보았다고 하면 너무 무례한 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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