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재명 대통령의 '구조적 다수' 발언은 무엇을 드러냈나(다모앙 네디언님 글)5
처음엔 유시민 작가가 말한 ‘증축’과 ‘재건축’의 구분이 좀 추상적으로 들렸습니다. 민주당을 더 키우자는 건지, 지지층을 넓히자는 건지, 아니면 이 대통령의 중도 확장 노선을 겨냥한 일반론인지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직접 “구조적 다수”를 입에 올리면서 맥락이 달라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외연 확장 구호가 아닙니다. 지지율을 조금 더 끌어올리자거나, 국회에서 법안을 안정적으로 통과시키자는 수준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민주진영은 이미 국회 단독 과반을 넘어 강력한 입법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161석, 여기에 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범여권을 더하면 179석 안팎입니다. 패스트트랙이든 필리버스터 종결이든 주요 법안 처리든, 얼마든지 밀어붙일 수 있는 규모입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굳이 “구조적 다수”를 말했습니다. 151석짜리 과반도, 180석짜리 입법 다수도 겨냥한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 그가 바라보는 건 개헌선입니다.
헌법을 고치려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300석 기준으로 200석의 찬성이 있어야 하고, 그 뒤 국민투표까지 통과해야 합니다. 민주진영의 180석 안팎은 분명 세지만 개헌선에는 못 미칩니다. 그러니 “구조적 다수”는 국회 운영을 좀 편하게 하자는 말이 아니라, 개헌이 가능한 구도, 정확히는 개헌선을 넘길 집권연합을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읽어야 합니다.
저는 대통령의 정국 구상이 여기서 드러난다고 봅니다. 한국 정치는 아직 진보와 보수가 5:5에 가깝게 맞선 판입니다. 이 대통령은 2025년 대선에서 49.42%로 이겼지만, 김문수 후보가 41.15%, 이준석 후보가 8.34%를 가져갔습니다. 두 사람 표를 단순히 더하면 이 대통령 득표율과 거의 비슷합니다. 대선에서 이겼다고 해서 지형 전체가 진보로 확 기운 건 아니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판에서 진영 대 진영으로 정면 승부를 벌이면 개헌선은 요원합니다. 민주당이 아무리 잘하고 민주진보 진영이 아무리 똘똘 뭉쳐도, 보수가 40%대 기반을 지키는 한 200석은 까마득합니다. 5:5 구도를 그대로 두고서는 구조적 다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조적 다수의 핵심은 뚜렷합니다. 민주당만 키우는 게 아니라 국민의힘을 쪼개 그 일부를 끌어와, 민주당을 축으로 한 거대 집권여당을 세우겠다는 겁니다.
유 작가가 말한 ‘재건축론’의 실체가 바로 이겁니다. 지지층이 바란 건 민주당의 증축이었습니다. 정체성은 그대로 둔 채 더 강해지고, 개혁입법을 밀어붙이고, 윤석열 정부 이후의 국가적 퇴행을 되돌리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구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민주당의 벽을 허물어 국민의힘 일부와 중도보수 세력까지 품는 새 집권연합으로 향합니다. 유 작가는 대통령을 지키고 응원했던 사람들이 원한 건 “증축”이었는데 실제로는 “재건축”을 하려는 것 같다고 꼬집었습니다. 재건축을 하려면 기존 입주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정확한 비유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증축이 아닙니다. 증축이 기존 민주당을 더 크게 짓는 것이라면, 재건축은 그 구조를 허물고 새로 짓는 것입니다. 구조적 다수 구상은 후자에 해당합니다.
구상의 뼈대는 간단하다고 봅니다. 국민의힘 내부 균열을 파고들어 탈당파나 협력파를 만들고, 이들을 민주당 중심의 집권연합에 편입시켜 개헌선을 넘길 구조적 다수를 확보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게 실현되기가 몹시 어렵다는 겁니다. 이 구상에 있어 걸림돌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당 내부, 그리고 민주당 지지층입니다.
국민의힘 일부를 끌어오려면 민주당은 어쩔 수 없이 자기 색을 흐려야 합니다. 보수 일부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강한 개혁 의제를 밀어붙이기는 어렵습니다. 검찰개혁, 언론개혁, 사법개혁, 재벌개혁, 권력기관 개혁 같은 과제는 민주당 핵심 지지층에겐 절박하지만, 국민의힘 출신이나 중도보수 세력에겐 부담스럽습니다. 이들과 손잡고 개헌선을 넘으려면 민주당은 이 의제들을 뒤로 미루거나 톤을 낮추거나 협상 가능한 선까지 후퇴시켜야 합니다.
바로 여기서 탈이 납니다. 민주당 지지층은 눈치가 빠릅니다. 왜 개혁을 안 하느냐는 목소리를 눌러보려 해도 금세 알아챕니다. 개혁 과제를 자꾸 미루고 중도 확장이라는 명분으로 색을 흐리면, 외연이 넓어지기 전에 지지층 이탈이 먼저 터질 공산이 큽니다.
그리고 지금 실제로 그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청래를 비롯한 당내 개혁파가 이 구상에 호응하지 않고 개혁 성향이 강한 당원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대통령의 정계개편 구상은 외연 확장은커녕 내부 균열부터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유 작가의 재건축론이 파장을 부른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유시민의 발언 이후 전통 지지층과 이재명 지지층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갈등은 단순한 계파 싸움이 아닙니다. 민주당의 뿌리를 둘러싼 싸움입니다.
친노·친문과 전통적 지지층, 개혁파는 그저 흘러간 세력이 아닙니다. 민주당이 왜 국민의힘과 다른 정당인지를 설명해주는 역사적 토대입니다. 노무현과 문재인, 촛불, 검찰개혁, 민주주의 회복,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서사로 민주당의 정체성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건재한 한, 민주당이 국민의힘 일부를 받아 느슨한 중도보수 연합으로 갈아타기는 어렵습니다.
친노·친문을 향한 공격이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그냥 미워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정계개편 구상에서 이들이 방해물이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을 국민의힘 일부와 합칠 수 있는 정당으로 바꾸려면 그 역사와 정체성을 꽉 붙든 세력부터 약화시켜야 합니다. 민주당을 개혁정당으로 남겨두려는 사람들은 구조적 다수 구상에 걸림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이 구상은 위험해집니다. 민주당의 뿌리를 뽑고 그 자리에 국민의힘 일부를 심어 구조적 다수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원들의 성향을 크게 얕본 겁니다. 민주당 당원은 대통령 개인을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역사와 정체성을 지키려는 마음이 강합니다. 이들에게 국민의힘 일부와의 결합은 외연 확장이 아니라 민주당이 스스로를 포기하는 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전당대회가 결정적인 무대인 것도 그래서입니다. 이번 전당대회는 그저 당대표를 뽑는 행사가 아니라, 민주당이 대통령의 구조적 다수 구상에 힘을 실을지 아니면 기존 정체성을 지키며 제동을 걸지를 판가름하는 자리입니다.
정청래와 김민석의 차이도 여기서 갈립니다. 보도를 보면 재건축론이 나온 뒤 정청래 전 대표는 범진보 통합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외연 확장을 각각 강조했습니다. 말만 다른 게 아닙니다. 정청래식 노선은 민주진보 진영의 결집으로, 민주당의 뿌리와 개혁성을 지킨 채 조국혁신당과 진보정당, 개혁 지지층을 한데 묶자는 쪽입니다. 김민석식 노선은 판 자체를 키우자는 쪽이어서, 민주당을 더 넓은 집권정당으로 키우고 중도·보수까지 아우르는 정치연합으로 바꾸자고 합니다.
전당대회에서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따라 민주당의 앞날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대통령 구상에 가까운 외연확장파가 이기면 민주당은 본격적으로 재건축의 길에 들어섭니다. 그러면 당내 개혁파는 소수파로 밀리고, 친노·친문 기반의 전통 개혁세력은 계속 압박받다가 일부는 조국혁신당 같은 외부 진보정당으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당내 개혁파의 입지는 좁아지고, 개혁 의제는 조국혁신당 같은 바깥 세력의 몫으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그때 민주당은 완전히 다른 정당이 되어 있을 겁니다. 간판만 민주당이지 실제로는 중도보수까지 끌어안은 거대 집권정당, 개혁 의제엔 시큰둥한 정당입니다. 국민의힘 일부와 합쳐 개헌선을 넘길 수는 있어도, 그 개헌이 지지층이 바라던 개혁을 담아낼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반대로 당원들이 이 구상에 반발해 뿌리와 정체성을 지키는 노선이 이기면, 구조적 다수 구상은 크게 제동이 걸립니다. 국민의힘 일부를 끌어와 개헌선을 넘기는 정계개편은 당내 동의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세도 당이 받쳐주지 않으면 재건축은 못 합니다. 유시민이 말한 “기존 입주자의 동의”가 바로 이 대목입니다.
청와대 반응도 오히려 이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재건축론을 두고 필요하면 재개발까지 할 수 있으며 결정은 정치권이 아니라 국민의 몫이라고 말했습니다. 겉으로는 유시민을 반박한 것이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청와대가 민주당의 변화와 재편을 상당히 크게 그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증축이냐 재건축이냐를 두고 “재개발도 가능하다”고 받은 것은, 기존 민주당의 틀을 고수할 생각이 없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그러니 지금의 갈등은 우연이 아닙니다. 구조적 다수 구상은 필연적으로 당내 저항을 부릅니다. 국민의힘 일부를 끌어오려면 민주당의 정체성을 느슨하게 풀어야 하고, 그러려면 친노·친문과 개혁파, 전통 지지층을 약화시켜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당원들이 반발하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결국 이 구상이 굴러가려면 두 가지가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하나는 국민의힘 비당권파가 실제로 탈당파나 협력파로 뭉치는 겁니다. 아직 확인된 일은 아닙니다. 당내에 불만 세력이 있다고 해서 이들이 민주당 중심의 집권연합으로 넘어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정치인은 명분보다 생존을 좇지만 보수 유권자의 눈치도 봐야 합니다. 민주당과 손잡는 순간 보수 진영에서 배신자로 찍힐 수 있으니, 국민의힘 일부가 정말 이 구상에 호응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다른 하나는 민주당 내부가 이 재건축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쪽이 더 어렵습니다. 당원들은 국민의힘 일부를 품자고 민주당의 개혁성을 희석하는 구상에 쉽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정계개편론자들은 아직 자기들의 새 구상을 공개적으로 설득한 적도, 그게 실제로 통한다는 증거를 내놓은 적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건 “구조적 다수”라는 방향뿐입니다. 어느 국민의힘 세력이 넘어올지, 어떤 개헌을 하겠다는 건지, 민주당의 개혁 의제는 어떻게 지킬 건지, 기존 지지층에겐 무엇을 약속할 건지가 죄다 흐릿합니다.
이대로 재건축을 밀어붙이면 결과는 외연 확장이 아니라 내부 붕괴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 일부를 끌어오기도 전에 지지층이 먼저 등을 돌리고, 개헌선을 만들기도 전에 개혁 에너지가 바닥날 수 있습니다. 구조적 다수를 만들려다 되레 진보진영을 구조적으로 고사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이 대통령의 ‘구조적 다수’ 발언이 중요한 건 이 때문입니다. 단순한 정치 수사가 아니라 민주당이 앞으로 어떤 정당이 될지를 가리키는 신호입니다. 민주당을 축으로 국민의힘 일부까지 끌어안는 거대 집권여당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개혁 정체성을 지키며 범진보 진영을 결집할 것이냐. 그 선택이 지금 전당대회라는 무대에서 실제 권력투쟁으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유시민의 재건축론이 뒤늦게 또렷해지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그는 대통령을 그냥 비판한 게 아니라, 대통령의 정계개편 구상이 민주당의 뿌리를 건드리고 있다는 점을 짚은 겁니다. 지지층이 원한 건 민주당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대통령은 민주당을 허물고 더 큰 집권연합으로 다시 지으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공하면 거대한 정치 재편이 됩니다. 민주당이 국민의힘 일부를 흡수해 개헌선에 다가서고, 5:5 구도를 깨며 장기 집권의 발판을 놓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실패하면 지지층을 잃고 개혁파를 밀어낸 끝에, 개혁 의제는 조국혁신당 같은 외부 진보정당에 넘겨주고 이름만 민주당인 중도보수 집권정당으로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당대회가 많은 걸 결정합니다. 누가 당대표가 되느냐가 아니라 민주당이 재건축에 동의하느냐가 걸린 문제입니다. 당원들이 자기 뿌리와 역사를 지킬지, 아니면 대통령의 구조적 다수 구상에 힘을 실을지가 여기서 갈립니다.
정리하자면, 이재명 대통령의 ‘구조적 다수’는 단순한 외연 확장이 아니라, 국민의힘 일부를 떼어내 흡수하고 개헌선을 넘기는 집권여당을 세우려는 정계개편 구상이라고 봅니다. 유시민의 재건축론은 그 핵심을 정확히 겨눈 말이었습니다. 다만 이 구상은 민주당의 개혁 의제와 지지층 정체성을 희생하지 않고는 굴러가기 어렵습니다. 전당대회는 이 구상이 당 안에서 승인될지, 아니면 당원들의 저항에 막힐지를 가르는 첫 번째 중대 분기점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