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박정희의 생애를 보면 극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s://namu.wiki/w/%EB%B0%95%EC%A0%95%ED%9D%AC/%EC%9D%BC%EC%83%9D
일제 강점기 - 일본이 잘나갈때
20~21세였던 1938년 11월, 만주국육군군관학교(신경군관학교) 1기에 1차로 지원했다.
처음엔 나이 제한으로 거절당했지만, 동료 유증선 선생의 권유로 탈락을 재고시키기 위해 면도칼로 새끼손가락에 피를 내 '혈서'를 학생시험 용지에 써서 보낸다.(동료 선생 유증선의 증언)
이 혈서는 1939년 3월 만주신문에 게재되었고, 이후 고향 선배이자 당시 시험관이었던 조선인 출신 만주군 간도특설대 대위 강재호가 신문을 보고 후원자가 되었다.
이때 사용한 이름이 창씨개명한 이름인 타카기 마사오. 수석 졸업생으로 "대동아 공영권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라고 선서하며, 만주국 황제 푸이에게 은사품으로 금장시계를 받고 일본육사 유학생대 편입 특전을 받았다.
일본군 패망 후 - 국군 창설과 동시에 육사 입학
귀국한 박정희는 곧바로 조선경비사관학교(정부 수립 후인 1948년 9월 5일 국군 창설과 동시에 육군사관학교로 개칭)에 입학했다. 사관학교에 20대 초반 정도가 많았던 반면에 당시의 나이가 만 29세로 만주군관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다소 늦은 편이었다. 입학 후에 3개월 단기 과정을 마치고 12월 14일 전체 3등의 성적으로 2기로 졸업하고, 남조선국방경비대에 들어가서 포병 소위 계급을 부여 받는다. 군번은 10166.
복무 도중에 셋째 형이자 공산주의자였던 박상희가 대구 10.1 사건으로 경찰에게 사살되었다.
남조선로동당에 들어가서 대한민국 국군 내 남로당 프락치들의 군사총책으로 활동하였다. 박정희가 남로당에 들어갈 때, 셋째 형 박상희의 친구 황태성이 신원 보증을 서줬다.
결국 11월 11일 박정희는 체포된다. 같은 만주국 출신이자 당시 육본정보국장으로 김창룡의 직속상관 백선엽 대령[23]과 정일권, 김정렬, 장도영, 원용덕, 채병덕, 강문봉, 송요찬 등의 육군군관학교 출신 군인들의 구명으로, 처벌을 면하고 예편되었으며 전향하게 된다. 수사 과정에서 사실을 순순히 시인하면서 군내 남로당 조직원 명단을 제공하고 그 공로로 숙군사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점을 인정받아 1949년 2월 13일 1심에서 사형을 면하고 “파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2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되었다.
- 대한민국 국군 내 남로당 프락치들의 군사총책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었으나 같은 만주국 출신 등의 구명 + 군내 남로당 조직원 명단을 제공하여 사형을 면하고 파면 무기징역 선고. 2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
동거녀(약혼녀) 이현란은 공산주의가 싫어서 월남한 사람이었고 아들마저 죽자 박정희에게 실망했다. 게다가 박정희가 아내와 딸내미까지 둔 유부남이라는 사실도 이현란에게 들통났다. 3남 박상희가 경찰에게 총살당하고, 막내아들 박정희마저 무기징역 선고를 받자, 그 충격으로 어머니 백남의는 세상을 떠났다.
6.25 전쟁은 박정희는 원래 남로당 좌익 출신으로 사실상 출세의 길이 불가능했던 상황속에서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을 제공하여, 사상의 전향을 인정받게 하였으며 아르바이트성 비공식 직함인 정보과 상황실장에서 다시 국군 소령으로 복귀하여 이후 1953년 11월 준장까지 진급하게 되는 출세의 길을 열어 주었다.
6.25 전쟁 당시 박정희의 경력은 반공 국가에 남로당 좌익 출신이라는 엄청난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방파제가 되어주며 박정희를 향후 대통령으로 만드는 기반이 되었고,[24] 70년대부터 20여 년간 박정희의 삶의 궤적을 당시 생존해 있던 관련자들을 통해 취재하고 연구하였던 조갑제는 1998년 조선일보에 기고한 박정희의 전기인 박정희의 생애에서 인민군의 남침이 박정희를 구한 셈이며 결과적으로는 김일성이 박정희를 살려내 자신의 적수로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정희는 나이 만 43세에 군사정변 세력의 지도자가 되었다. 군은 1961년 5월 16일 해병대 병력 일부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제2야전군 상당수와 제1야전군의 일부가 유엔군사령부에서 이탈하여 대한민국 정부 주요 기관 및 시설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실체를 드러냈다. 이는 박정희를 구심점으로 하는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장교들에 의해 계획적으로 이루어졌다. 육군 중장 장도영 관할 밖의 제1해병여단과 공수단을 비롯해서 서울 인근으로는 서울 동부의 제6군단 포병단, 서울 서부의 제30사단, 서울 남부의 제33사단, 서울 북부의 5사단 그리고 춘천, 대구, 광주, 부산에 주둔 중이던 군대들이 궐기하여 이른바 5.16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이후는 아시다시피 독재
황당한 이야기인데 10년 전에는 중국 오성홍기에
당시 대표적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 등이 모여 절하고 난리도 아니었죠.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 대통령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관하는 신기한 역사를 썼구요.
최고의 레드팀 모임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2/0000712665?sid=100
전승절 사진인데 박근혜 대통령 오른쪽은 다 아실테고
왼쪽 첫번째, 이슬람 카리모프
1990년 3월 24일 우즈베크 SSR의 대통령에 재임한 이래 이듬해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하자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2016년까지 총 26년간 장기 집권을 이어나갔으며 집권기 동안 반대파에 대한 고문과 경찰력을 이용한 권위주의 정치를 일삼았고 2005년 안디잔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위에 대한 학살로도 국제적인 악명을 얻었다.
왼쪽 두번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재자. 무려 6선을 지낸 독재자이며 소련 해체 직전인 1990년부터 2019년까지 29년이 넘는 세월을 장기집권했다. 그러다 2019년 3월 20일 고령 등의 이유로 대통령직에서 사임한다고 발표...
필요하면 이스라엘 국기도 흔듭니다.
미국이 세계최강이니 성조기는 필수고요.
극우의 정체성이요??
꺼삐딴 리 같은 기회주의자라 정체성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래 보수와 우파에 관한 정의의 사전적 의미도 퍼왔는데
읽어보면 우리나라 보수 우파와는 엄청난 괴리가 있죠.
남의 나라 국기를 이것저것 흔드는 것부터가 제정신은 아닙니다.
보수주의(保守主義/Conservatism)는 급격한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의 옹호와 현상을 유지하고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사고방식, 또는 그런 경향이나 태도이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가 가지는 의미는 현 사회체제에서 변화를 최소한으로 하여 안정성을 우선시하고, 기존 사회에서 근본으로 여기는 기본적인 틀 내에서 점진적인 개혁과 변화를 허용하는 것이다. 변화된 사회문화나 체제를 거부하고 과거의 것으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반동주의와는 다르다.
우파(右派, the right) 또는 우익(右翼, right wing)의 현대적 의미는 기존의 사회 질서나 계층, 권위를 옹호하는 등의 성향,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 세력을 의미한다. 또는 보수주의적이거나 온건주의적 경향을 말하거나 국수적인 경향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며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우파는 대체로 계층과 불평등을 경쟁에서 비롯된 불가피하거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설명한다. 좌파와 반의어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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