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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마지막 황제 일가는 성인(聖人)
로마노프 황실의 시성과 종교적 배경
로마노프 황실 일가는 두 차례에 걸쳐 성인(聖人)으로 시성(諡聖) 되었습니다. 1981년 해외러시아정교회가 이들을 '황실 순교자'로 선포한 데 이어, 소련 붕괴 후인 2000년 8월에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이 이들을 성인 반열에 올렸습니다.
이때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이 부여한 칭호는 '순교자(мученик)'가 아닌 러시아 정교회 고유의 성인 범주인 '수난자(страстотерпец)'였습니다. 신앙을 이유로 박해받은 순교자와 달리, 수난자는 부당한 죽음 앞에서도 저항하지 않고 기독교적 인내와 겸손으로 이를 수용한 인물에게 부여됩니다. 이는 11세기 권력 다툼 속에서 무저항으로 살해당한 보리스와 글렙 공의 사례와 신학적으로 궤를 같이합니다.
교단은 황실 일가가 유폐 기간에 보여준 신앙심과 처형 순간까지 유지한 종교적 자세를 시성의 핵심 근거로 삼았으며, 1991년 예카테린부르크 근교에서 발굴되어 DNA로 신원이 확인된 유해가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소련 해체 직후 구체제 지지 세력을 견제하고, 새 러시아의 정체성을 제정 러시아와 연결하려는 정치적 동기가 작용했다는 평가도 많습니다.
니콜라이 2세의 치세와 비판적 여론
시성과는 별개로 니콜라이 2세의 통치는 실정으로 점철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그는 전제정을 고수하며 온건한 입헌 요구를 거부했고, 1905년 '피의 일요일' 학살을 비롯해 유대인 등 소수민족과 비정교도를 조직적으로 박해했습니다.
또한 라스푸틴에게 국정을 방기하다시피 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무능한 지휘와 경제 파탄으로 결국 1917년 혁명을 자초해 왕조를 붕괴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시성 당시 러시아 여론 내에서도 "국가를 파탄 낸 인물을 왜 성인으로 추대하느냐"는 냉소가 상당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와 푸틴 체제의 밀착
현재 러시아 정교회는 푸틴 정권과 긴밀히 밀착되어 있습니다. 2009년 취임한 키릴 총대주교는 과거 KGB 협력 의혹을 받는 인물로, 푸틴 체제를 공개적으로 옹호해 왔습니다.
특히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이를 서구에 맞선 '성전'으로 규정하고 전사자의 죄 사함을 약속하는 설교를 하여 세계 기독교계의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 여파로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비롯한 산하 교구들의 이탈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로마노프 일가 숭배의 다각화
오늘날 로마노프 일가에 대한 숭배는 여러 형태로 조직화되어 있습니다.
황실 십자가 행렬: 처형일인 7월 17일 축일마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서는 처형 장소(이파티예프 저택 터)에서 시신 유기지(가니나 야마)까지 약 21km를 걷는 행렬이 열립니다. 매년 수만 명이 참여하는 러시아 정교회의 대표적인 대중 순례 행사입니다.
기념 성당과 안장지: 1977년 철거된 이파티예프 저택 터에는 2003년 대형 정교회 성당인 '피의 성당'이 건립되어 주요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첫 시신 유기지인 가니나 야마에는 목조 성당들로 이루어진 수도원이 조성되었으며, 발굴된 유해는 1998년 상트페테르부르크 페트로파블롭스크 대성당에 안장되었습니다.
이콘 보급: 니콜라이 2세 일가를 그린 '황실 수난자' 이콘이 정식 제작되어 러시아 전역의 성당에 보급되었습니다.
이러한 숭배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내부에서는 이들의 시성을 순수한 신앙적 숭배로 받아들이는 시각과 정치적 결정으로 바라보는 냉소적 시각이 여전히 공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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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대통령 권한대행에서 벗어나 정식 취임한 첫해인 2000년과 겹쳐 보이는 것은 단지 기분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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