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수부타이가 회군하지 않았더면 서유럽을 정벌했을까에 대해
지나간 역사이기도 하고 확정된 과거이긴 하나
재미 삼아 역사의 가장 큰 가정 중에 하나인 수부타이.. 정확히는 수베데이의 회군 관련한 썰을 풀어 봅니다.
전 서유럽 정벌은 가능하고도 남았을 거라고 보는 쪽입니다.
# 전쟁 역시 상호 배움의 장
문화도 그렇지만 전쟁의 기술 또한 인류 역사에서 늘... 변함 없이
배움의 장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비교적 빠르게 이뤄지는가 반대로 느리게 진행 되는가의 차이는 있겠습니다.
과거 보다 21세기 들어 잘 알려진 수베데이의 압도적인 군 통제 능력에 더해
정벌한 지역으로부터 얻는 자원과 지혜를 받아들여
군대를 업그레이드 해 가며 진격하던 수베데이를
과연 서유럽이 막아낼 수 있었을까... 에서 전 수베데이 쪽의 손을 들어 봅니다.
# 착각의 한 지점
중세 유럽의 기사에 대한 환상은 과한 측면이 상당합니다.
사무라이에 대해서 그렇듯이 말입니다.
모든 것이 이상적으로 작동했을 때에 한정된...
기사의 이미지로만 보면 기사들로 이루어진 부대가 절대 무력을 가질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지만,
실제는 달랐습니다.
기사들을 농락하다시피한 수베데이의 전술 운용 능력은
단순히 이상적인 무장 상태인가 여부만으로는
비교할 수도 비빌 수도 없는 것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 수베데이의 서유럽 원정 성공 가능성
전 99%는 된다는 생각입니다.
수베데이의 전술 운용 능력은 지금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지만,
반대로 서유럽 기사들은 개개인의 무력과 차징에 의존하는 원시적인 문화적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정보전에 능통했던 수베데이와는 비교할 꺼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유럽은 달랐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전 회군하지 않았을 경우 약간의 고전은 할지언정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정벌을 완료 했을 것으로 보는 쪽입니다.
# 재침공 후의 패배에 대해
무려 40년의 세월이 지난 후입니다.
이것을 근거로 삼는 것은 과해도 좀 많이 과한 해석인 것 같습니다.
헝가리는 군사 개혁을 통해 100개가 넘는 석조 성채를 건설하고,
중장갑 기사들을 대거 육성합니다.
1295년 절치부심한 헝가리에게 킵차크 한국은 패배하고 맙니다.
그런데 40년의 기간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패배를 발판 삼아 과거 보다 더한 군사 강국이 되고자 했던
헝가리 벨레4세의 군사 개혁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몽골 군을 강하게 했던 것은 수베데이를 비롯한 당대의 명장들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재능을 발휘하여, 지나는 지역마다 스스로를 성장시켰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 중 일부는 그렇게 몽골군이 만들어 나가는
군사 문화를 받아 들이지 못하는 케이스도 있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수베데이 이전의 제베 때도 그리고 그 후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되면 더 이상 수베데이와 같은 탁월한 역량을 갖춘 이가
나타나지 못하게 될 경우 더 이상 혁신은 없고
몽골이 늘 승리 해왔던 방식에 머물러 버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40년 후 헝가리는 몽골과의 전투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
더 강한 군으로 거듭 났지만,
반대로 킵차크 한국은 이전의 방식에 머물러 있으면서
승패가 나뉜 것으로 보여집니다.
# 결론
수베데이가 그대로 진격을 계속 했다면,
전혀 다룬 군사 문화를 갖는 상대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던 서유럽의 함락은,
시간 문제였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당장 40년이 아니라 10년 후에 재 침공 했어도
수베데이 때와 양상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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