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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1942년 생 유력이라고10
김정일의 출생이 “1941년생이 가장 유력하다”고 단정한 것은 지나쳤다고 봄. 현재 확인되는 자료만 놓고 보면 1942년 2월 16일생설도 상당히 강하며, 단순히 북한이 만들어낸 연도라고 치부할 수 없음.
특히 주보중(저우바오중)의 부인 왕일지(王一知·본명 곽유헌/郭維軒)가 자기 딸의 출생과 비교했다는 증언은 중요하다고 함. 중국 측 당사 자료에는 주보중의 딸 주위(周偉)가 1942년 소련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김정일과 함께 생활하고 공부했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왕일지가 두 아이의 출생 시기를 직접 비교해 김정일도 1942년생이라고 증언했다면, 매우 가까운 생활권에 있던 사람의 구체적인 기억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상당히 크다고 판단한다고 함.
'이민' 역시 김정숙과 같은 항일연군 생활권에 있었던 인물인데.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의 출생 소식이 무전으로 야영지에 알려졌고, 김정숙과 아기는 그 이듬해에야 비야츠코예 쪽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는 백두산 출생설과 소련 극동지역 출생설을 떠나서 그의 출생연도는 1942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민이 실제 항일연군 출신으로 김일성 부대 사람들과 함께 활동했다는 점도 중국 측 보도에서 확인된다.
또 다른 여성 대원 '김선'의 증언도 주목할 만한데. 그녀는 남야영 여성 대원들의 출산 시기를 구체적으로 회상하면서 자신은 1941년 12월, 김정숙은 1942년 2월에 출산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자기 출산 시기와 김정숙의 출산을 비교한 기억은 단순한 후대의 연도 추정보다 훨씬 구체적이라고 학계에서는 판단.
그리고 ‘김유라’는 김정일과 별개의 사람이 아니고. ‘유라’는 소련 생활 당시 김정일을 부르던 러시아식 아명 또는 애칭이라고 함.
지금 다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출생일: 2월 16일은 양쪽 설에서 거의 일치
출생연도: 1941년설과 1942년설이 충돌하지만, 가까이 생활했던 여성 대원들의 구체적인 증언은 1942년설에 상당한 힘을 실어줌
핵심: 북한의 주장이 모두 한 덩어리로 거짓인 것은 아닐 수 있다고 함.
현재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에는 김정일의 소련 출생증명서 원본이나 명확한 소련 기록보관소 문서번호가 제시되지 않아. 따라서 1941년을 확정된 사실처럼 쓰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KBS 자료도 김정일을 1942년 2월 16일 소련 하바롭스크 출생으로 정리하고 있다고하는데.
어쨋든 결론은:
김정일의 출생연도를 두고는 1941년설과 1942년설이 엇갈린다. 그러나 김정숙과 함께 소련 극동지역에서 생활했던 이민과 김선, 주보중의 부인 왕일지 등 주변 인물들의 증언은 김정일이 1942년 2월 16일 새벽에 태어났다는 주장에 상당한 무게를 더한다. 특히 주보중의 딸 주위가 1942년 소련에서 태어나 어린 김정일과 함께 생활했다는 중국 측 기록은 이러한 증언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북한이 내세운 1942년 2월 16일이라는 날짜까지 반드시 조작되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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